상류권 도로변 연안을 따라 울산에서 온 꾼들과 송귀섭 고문이 자리를 잡았다.
월척붕어 입질은 주로 아침시간에 이어졌다. 아침에 31cm 월척을 올린 필자.
울산에서 온 한 낚시꾼이 아침에 약 70cm 잉어 입질을 받고 힘겹게 뜰채질을 하고 있다.
완연한 초봄 날씨가 이어지자 개나리, 진달래 등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붕어 산란철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러나 매년 급격히 변화한 날씨에 따라 붕어의 산란 시기도 유동적이고, 불규칙적이며 소리 없이 산란 하는 등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붕어 산란 시기 예측이 어려워지자 미리 자리를 선점하여 장박을 하는 붕어꾼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각 낚시터에서 발견되는 이런 모습에 많은 꾼들은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다.
초봄 산란철 여러 풍경들 속에 묻혀 조락을 즐기는 붕어 꾼 중 하나가 되기 위해 4월 5일(식목일)에 출조길에 올랐다. 매년 식목일은 광주 무지개조우회 고문단의 정기 출조일이다. 무지개조우회 송귀섭 고문이 매년 식목일에 해남의 화원수로로 출조하여 월척과 4짜 붕어 손맛을 본 경험을 토대로 약 5년 전부터 고문들만 모여 치러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간 4월 첫 주의 금호호 화원수로는 배수로 인하여 얕아진 수심, 강풍으로 인해 낚시 여건이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올해는 바람 영향이 적은 내륙권 중 나주권 일대 저수지로 출조지를 정하고 선발대로 조성흠 고문과 함께 현장으로 나섰다.
준설로 훌쩍 규모 커진 우심제
광주에서 근거리권인 나주권 일대를 둘러봤다. 나주시 공산면의 백두제, 왕곡면의 신포제, 왕곡수로, 구호제, 동강면의 우심제를 차례로 둘러봤다. 저수지권은 백두제를 제외하고 연밭 저수지이며 대부분 만수위를 유지했다. 부분적으로 산란이 진행 중이었고 물색은 좋았다. 그 외 저수지는 주말꾼들로 만원이었다.
그중 왕곡수로는 평상시 만수위 때는 약 3m의 깊은 수심을 유지하나 수위가 많이 낮아져 좋은 포인트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고문님들이 고령인 탓에 연안 접근성이 어려워 안전성을 고려해 배제했다. 구호제는 준계곡형 저수지라 조금 이른감이 있었고 신포제는 여건은 좋았으나 이미 많은 꾼들이 좋은 포인트들을 꿰차고 있었다. 공산면의 백두제는 갈대, 부들 등의 수초 여건은 아주 좋았으나 붕어들의 이른 산란 후 입질이 소강상태였다,
그러던 중 조성흠 고문이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짬낚으로 탐색해오던 우심제로 출조지가 정해졌다. 나 역시 제대로 된 출조 경험은 없지만 궁금증과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 즈음 광주공항으로 송귀섭 고문을 픽업 나갔던 정성훈 고문이 우심제에 도착했다. 연안을 둘러보던 중 송귀섭 고문과 정성훈 고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핸드폰 지도를 살폈다. “아무래도 이곳은 우습제 아래 소류지 같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맞아 맞아, 정 고문 생각 안 나? 그 작은 소류지” 송귀섭 고문의 외침에 정성훈 고문이 “맞네요 아주 작은 소류지였는데 세월만큼이나 면적이 커졌네요”라며 핸드폰 지도를 함께 살펴보았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며 규모가 커진 현재의 모습에 모두들 감탄했다.
동강면소재지에서 가까운 우심제는 약 1천7백평의 연밭 저수지다. 인근의 유명 낚시터인 우습제에 가려진 저수지이다. 아주 예전에는 붕어, 잉어, 가물치, 동자개 등이 서식하는 토종터였으나 현재는 블루길과 여러 잡어들이 유입된 상황이라는 게 그동안 짬낚으로 이곳을 탐색해 본 조성흠 고문의 증언이었다.
도로변에는 멀리 울산에서 온 꾼들이, 제방에는 광주에서 온 꾼들이 자리들을 잡고 앉아 있었다. 도로변과 제방 사이 무넘기 인근 뗏장수초 공략을 위해 나는 조성흠 고문과 마주 보며 자리를 잡았다. 정성훈 고문은 제방에, 송귀섭 고문은 도로변 상류권에 각각 자리들을 잡았다. 만수위였으며 수심은 1m 20cm~1m 70cm를 유지했고 삭아 내린 수초와 나뭇가지 등으로 밑걸림이 더러 있었다.
새우로 대물을 노려보았으나…
탐색차 짬낚을 다녔던 조성흠 고문의 조언에 따라 옥수수와 글루텐을 미끼로 사용하기로 했다. 앞에 펼쳐진 뗏장수초 무더기를 넘겨 찌를 하나 둘씩 세웠다.
다소 강한 바람 속에 해 질 무렵까지 모두들 입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이른 저녁을 해결했다. 초저녁이 되자 바람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밤낚시 여건은 한층 좋아졌다. 맞은편에 있던 조성흠 고문이 첫 입질을 받아 20cm급 붕어를 낚아 낸 이후 일행 모두 고만고만한 씨알을 낚아낼 수 있었다.
케미를 밝힌 후 미끼에 변화를 주기 위해 오후에 설치한 채집망을 꺼내 보니 빈망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외래어종의 영향이었다, 생미끼 채집을 포기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데 우측에 앉았던 울산꾼이 밤에 사용해보라며 새우 5마리를 손에 쥐어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말만 전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 낚시인의 살림망에 있는 붕어 조과는 새우로 낚았을까? 모두 준척에서 32cm까지의 월척이라고 하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적절한 시간에 새우를 미끼로 써보기로 하고 작은 컵에 잘 보관하였다. 이후 낚시를 해보니 글루텐보다는 옥수수에 입질이 잦았고 낚이는 씨알은 주로 24cm~29cm였다. 맞은편 조성흠 고문도 비슷한 씨알을 연신 낚아냈다.
자정 무렵 입질이 소강상태를 보이기에 아껴둔 새우를 달아보았다. 기대감과 긴장감 속에 유독 새우 미끼를 꿴 찌불 만이 아른거리고 눈길이 자주 갔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자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새우 미끼에 멋진 찌올림이 들어왔고 엄청난 저항에 물파장도 컸다. ‘드디어 한 수 했구나’ 하며 낚시대 탄력으로 뗏장수초 위로 올려 보니 강준치였다,
허탈감에 다시 옥수수를 꿰어 찌불을 세웠다. 이후 동자개, 가물치 등의 잡어 입질이 계속돼 새우 미끼는 모두 소진했다. 옥수수와 글루텐에 잔 씨알의 간헐적 입질만 몇 차례 받고 나자 동이 텄다. 홀로 상류권에 자리한 송귀섭 고문이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돌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산란 휴식기 지나면 분명히 대물 낚일 것
오전에 온다는 비 예보 영향인지 날도 흐리고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늦은 밤부터 뗏장수초 밑에서 붕어 산란의 소리가 조금씩 이어지더니 날이 밝자 연안 수초대는 붕어들이 물소리를 크게 내는 산란의 장이 됐다. 그럼에도 입질은 씨알의 관계없이 이어졌다. 최고 31cm 월척붕어까지 올라왔고 고문들도 동이 터 오르자마자 월척 붕어로 손맛을 봤다.
낚은 붕어 중에는 조성흠 고문이 올린 33cm 븡어가 가장 큰 씨알이었다.
도로변 연안에 자리한 울산꾼들도 비슷한 조과를 거뒀으나 제방권에 자리한 광주꾼들은 낱마리 조과에 그칠 정도로 포인트별 조과 차이가 컸다. 생미끼에는 잡어 성화가 극성스러웠고 옥수수와 글루텐 모두 입질 빈도에는 큰 차이는 없었으나 전반적으로 옥수수에 씨알이 우세했다.
이상의 정황으로 볼 때 우심제는 이제야 붕어 산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산란이 끝나고 휴식기를 거친다면 5월 초부터 활발한 먹이 활동이 이루어질 걸로 예상해 본다. 그 시기가 바로 산란 후기로, 대물들이 차분하고 지속적인 먹이 활동을 시작할 때다. 대물낚시인이라면 그때를 놓치면 안될 것이다.
내비 입력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362
제방권은 차량진입과 주차 여건 좋다.
1년 만에 다시 물가에서 만난 고문들, 정겨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저녁식사를 했다.
잡어로 올라온 강준치.
조성흠 고문은 동이 터오른 이후 33cm 월척붕어를 낚았다.
취재일에 우리 일행들이 낚은 붕어 조과.
무넘기를 사이에 두고 조성흠고문과 필자가 자리를 잡았다.
오랜세월 물가에서 같이 보낸 무지개조우회의 역사이자 붕어 낚시 발자취의 인물들인 고문님들과의 기념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