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에세이
밥섬 식도의 위대한 밥상
“혹은 내가 투구게처럼 갑갑하게 느껴지고 이 한 줌 하찮은 삶도 갑자기 자갈밭을 갈고 있는 보습처럼 못 견디게 더워져서, 마침내 삶의 화두가 뻗쳐올라와 물집투성이인 얼굴이 되었을 때 다시금 나는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윤대녕의 소설 <신라의 푸른 길>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7번 국도를 따라 경주 감포에서 강릉까지 오르는 한 사내와 여인의 이야기다. ‘나’는 강릉으로 가는 버스에서 한 여자를 만나는데, 소설은 그녀를 <삼국유사>의 수로부인으로 은유한다. 그 순간 7번 국도는 “신라의 길이면서 또한 땅과 바다가 만나는 영원의 길”이 된다. 소설가 윤대녕은 수준급 갯바위 낚시꾼이다. 감성돔낚시를 주로 하는데, <은어낚시통신>이라는 한국현대문학사의 명단편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감성돔을 만나기 위해 누비고 다녔을 동해안의 풍경들이 ‘신라의 푸른 길’을 채색했을 것이다.
나도 지난 몇 개의 계절 동안, 그러니까 봄부터 늦가을까지 동해안 이곳저곳을 누볐다. 경북매일신문의 제안으로 경북 바닷길 기행문을 매주 연재하기 위해 울진, 영덕, 포항, 경주를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서해에서 멀어졌다. 우럭 어초, 백조기, 농어캐스팅, 갯바위 광어루어, 주꾸미와 갑오징어, 외수질, 참돔 러버지깅 등 갖가지 낚시를 즐기러 줄기차게 찾던 서해다. 동해의 차고 맑은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서해의 낙조와 해풍에 스민 짜디짠 조개껍질 냄새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동해도 근사하지만, 때로는 서해만이 가진 ‘쓸쓸한 아름다움’이 사무치기도 한다.
하루 여유가 생겨 변산 격포항 터미널에서 여객선에 올랐다. 매년 6월부터 10월 사이에 두어 번은 꼭 차를 싣고 ‘고슴도치 섬’ 위도에 내려 갯바위 루어낚시를 즐기곤 한다. 위도는 낚시하기에도 좋지만, 소란스러운 세속의 일들과 잠시 작별해 고요한 휴식을 누리기에 더 좋은 섬이다. 특히 서쪽 곶 절벽 위에 있는 카페 ‘쉐백’에서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풍광을 만끽하며 향 깊은 원두커피를 마시면 지상낙원에 온 것 같은 황홀감에 몸이 달뜬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쓸쓸하고, 더 고요하고, 더 내밀한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위도 옆 식도로 향했다. 격포항에서 출항한 대원카훼리호는 위도 파장금항에 먼저 사람과 차를 부려놓고 뱃머리를 식도 쪽으로 돌렸다. 주민이라고 해봐야 60세대 200명이 채 되지 않는, 면적 0.86㎢의 작은 섬이다. 섬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여객선 안에는 격포에 장을 보러 갔다가 섬으로 돌아오는 어르신 몇이 전부였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여객선이 접안하자 어르신들은 손수레와 보따리를 양손에 짊어지고 다시 섬을 밟았다. 나도 그분들을 따라 낚시가방을 들고 배에서 내렸다.
식도에 올 때면 늘 찾는 ‘풍년슈퍼’로 향했다. 서해의 작은 섬들이 보통 그렇듯 식도에도 변변한 식당은 없고, 그나마 민박과 밥을 겸하는 서너 곳이 다다. 그런데 작년까지 계시던 그 집 주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람이 바뀌었는데, 그 할머니처럼 살갑지가 않다. 섬에 상수도 공사가 벌어져서, 공사 노동자들이 지내느라 빈 방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민박만 하는 옆집에서 자고 밥은 여기 와서 먹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혼자 온 손님한테는 상을 차려주기가 곤란하단다. ‘식도민박’도 사정은 마찬가지. 다행히 식도리 이장님이 근처를 지나다가 자기네 집에서 묵으라고 하신다. 이장님 집도 민박과 식사를 겸하는데, 지금 공사 인부들이 묵긴 하지만 남는 방이 있다고 했다.
이장님 봉고차에 사모님과 함께 셋이 끼어 타고는 마을 몇 군데를 다니며 멸치를 내려다 줬다. 집에 도착하니 이장님께서 안방을 내어주며 편하게 쓰라고 하신다. 너그러운 인심이 내 마음으로 따뜻한 물살을 퍼뜨렸다. 가방을 풀고, 낚시 준비를 해서는 방파제 석축에 섰다. 1/8~1/4온스 지그헤드에 4인치 웜을 끼워 석축 연안으로 캐스팅해 살살 감으면 30cm급 우럭들이 쉴 새 없이 입질을 한다. 6피트짜리 쏘가리 로드에 2500번 릴, 합사 0.8호로 끌어내는 순박한 식도 우럭의 손맛에 온몸의 피톨이 짜릿 짜릿 튀어 올랐다.
혼자 고요함을 찾아 온 섬, 마음에서 수런거리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쿨러를 채울 수도 있지만, 먹을 만큼만 잡고 낚시를 접었다. 욕심을 버리는 순간 그동안 내 안의 소음 때문에 듣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석축에 부딪치는 파도가 뭐라고 말을 한다. 할 말을 오래 참아 붉어진 입술처럼, 저녁노을이 나를 보며 옴짝달싹한다. 일찍 떠오른 낮달이 허밍으로 노래한다. 먼 산 나뭇가지에서 흔들리는 단풍잎이 자꾸만 내 이름을 부른다. 외부의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와 풍경과 내가, 세계와 내가 경계 없이 몸을 섞을 때 내 귀에는 오랫동안 잊었던 마음 깊은 곳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우럭 몇 마리를 챙겨 이장님 집에 오니 공사 인부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 방마다 고단한 몸을 누였고, 이장님 내외와 이웃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꽃놀이하느라 정신없다. 사모님이 식당에 있는 반찬과 찌개를 마음껏 꺼내 먹으라 하신다. 우럭 두어 마리를 회 떠서 먼저 상에 올리고, 반찬통을 열었다가 그만 황홀해지고 말았다. 양념꽃게장, 어묵볶음, 소고기장조림, 오이소박이, 방풍나물 무침, 멸치볶음, 버섯볶음, 파김치, 알타리김치, 물김치 등 온갖 맛깔스런 반찬들이 정갈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릇 하나에다 반찬 두세 가지씩 함께 담았다. 냄비에는 묵은지와 비계 숭덩숭덩한 촌돼지 고기가 가득 들어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한 그릇 떠서 상에 올리니, 마음이 먼저 배부른 위대한 밥상이 완성되었다. 식도(食島)가 왜 ‘밥섬’인지 이제야 알겠다. 예로부터 어장이 풍부해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는 섬, 먹을거리보다 인심이 더 풍요롭다.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뿐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이재무, ‘위대한 식사’)라는 시가 절로 떠오르는 밥상 앞에서 나는 뭉클해졌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을 밥 한 덩이와 함께 목구멍으로 쑥 넘기고, 차가운 소주로 달아오른 가슴을 식히는 동안 저녁은 깊고, 저쪽 거실에서는 찰싹찰싹, 화투패 달라붙는 소리가 풀벌레 울음처럼 정다웠다.
설거지를 하고는 밖에 나가 바람을 쐬었다. 외딴 섬의 부둣가를 홀로 걸으면 일찍 캄캄해진 지붕들이 내 어느 한 시절 같다. 그리움은 짠물 비린내와 교회당 십자가 네온사인으로 오고, 외로움은 파도가 실어 나르는 은빛 윤슬로 온다. 식도의 낮고 허름한 밤물결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그러다 술 한 잔이 아쉬워 다시 이장님 집으로 들어왔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부둣가에 달빛이 첫눈처럼 하얗게 내려앉고 있었다. 알타리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그날 밤, 여객선이 그리운 이들을 가득 싣고 뱃고동 소리를 내며 내 꿈에 접안했다. 꿈속에서 어릴 적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먹던 찌개 냄새가 나 코를 심하게 골았다.
잠귀로 들은 뱃고동 소리는 내 코 고는 소리였구나. 아침놀이 창문을 붉게 물들이는 6시 50분. 기상 악화로 7시20분 첫 배 이후엔 운항을 장담 못한다는 방송 소리를 들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나서려는데, 사모님이 아침 먹고 가라 하신다. 공사 인부들과 함께 앉아 또 한 번 뜨거운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인부들과 나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되었다. 비록 짧은 몇 분이지만, 나는 낯선 식구들과 말없이 정든 밥상을 떠나 대원카훼리호에 몸을 실었다. 사람의 일생이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헤매는 일이 아닌가. 나는 ‘밥섬’ 식도에서 그 밥 한 끼를 먹었다. 이만하면 성공한 생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일러스트_탁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