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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에세이_통영, 열기꽃 필 무렵
낚시에세이

 

에세이

 

통영, 열기꽃 필 무렵

 

 

 

‘겨울 바다의 불꽃’ 열기를 만나러 통영에 다녀왔다. 쏨뱅이과 양볼락과의 물고기로 정식 명칭은 ‘불볼락’이다.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기 때문에 불볼락이라는 학명이 붙은 것인데 어째서 ‘열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아마도 ‘불’이라는 단어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아니다. 한겨울에도 낚시인들의 가슴을 달아오르게 하는 화끈한 물고기인 까닭인지도 모른다.
12월 말, 찬바람이 부는 새벽 선착장에서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 맹원들과 함께 체리피쉬호에 올랐다. 1920년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카프(KAPF)’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이 단체는 낚시를 좋아하는 문학가들이 모여 만든 낚시회이다. 문단의 소문난 낚시광이며 책 <나는 낚시다>의 저자인 문학평론가 하응백 선생님이, 소설가이자 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선배, 시인 장석남 선배와 의기투합하여 2016년 가을에 조직했다. 하 선생님에 따르면 “통일 후를 대비한 원대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후 소설가 백가흠, 시인 정동철 선배가 합류했고, 2017년 9월 비응항 주꾸미 출조를 시작으로 나도 맹원이 되었다. 6명이 모두 모여 낚시를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출조에는 특별 손님으로 오천항 밥말리호 송인호 선장이 동행했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은 곳”,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백석, ‘통영 2’)이 바로 통영이다. 시인 김춘수, 유치환,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을 배출해 낸 문화예술의 고장이자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미항이다. 시인 백석이 짝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세 번이나 여행을 온 곳, 화가 이중섭이 한국전쟁 때 피난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통영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문학가들의 출조지로 선택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 지도 모른다.
배 안은 열기꽃을 잔뜩 따려는 문학가들의 열정으로 후끈거렸다. 바닷바람을 피해 선실에 도란도란 모여앉아 누군가는 졸고 또 누군가는 열기낚시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이 포인트에 도착했다.
열기도 우럭처럼 어초 주변에 모인다. 선장은 인공 어초와 자연초를 오가면서 열기를 공략할 것이라고 했다. 수심 50미터권으로 첫 채비를 내렸다. 배가 어초 위를 지나는 순간 뱃머리 쪽에 자리 잡은 하응백 선생님의 낚싯대가 초릿대를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입질이 온 것이다. 앞에서부터 차례로 맹원들은 열기의 입질을 받았고, 배에는 이내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그 웃음꽃은 바다로 옮겨갔다.
검푸른 겨울 바다, 수면 아래서 붉은 꽃잎들이 피어오르는 순간 누군가 외쳤다. “열기꽃이 피었다!” 줄줄이 피어 올라오는 겨울 바다의 동백꽃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황홀함을 느꼈다. 낚싯줄에 매달려 나부끼는 열기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유치환, ‘깃발’)이 되어 마음의 근심과 슬픔, 권태를 닦아주었다.
이날 낚시에서는 열기와 함께 반가운 손님고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뺀찌 크기의 돌돔을 한 마리 낚아 올렸고, 하응백 선생님은 30센티미터가 넘는 말쥐치 두 마리를 한 번에 쌍걸이하셨다. 쿨러를 가득 채운 열기와 함께 돌돔과 말쥐치까지 획득한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입항했다.
중국의 대문호인 루쉰의 산문에 ‘조화석습(朝華夕拾)’ 즉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바로 줍지 않고, 비록 낙화일지언정 한나절 그 빛과 향기를 충분히 발산하도록 둔 후 저녁에 줍는 관용과 지혜로움을 뜻한다. 우리도 조화석습을 시도했다. 아침에 바다에 가득 핀 열기꽃을 따 담았는데, 진정한 꽃 줍기, 아니 꽃 먹기를 저녁에 시작한 것이다. 열기 요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열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다 맛있는 생선이다. 회를 치면 특유의 차친 식감과 단맛이 일품이고, 구이는 그 어떤 생선도 감히 비길 수 없는 고소한 맛이다. 매운탕을 끓이면 얼큰하면서 풍미 깊은 국물과 함께 촉촉하고 담백한 생선살을 맛볼 수 있다.
식탁 위에서 또 한 번 꽃이 된 열기 요리를 먹으며 불콰하게 취하는 동안 밤이 밀물로 밀려왔다. 동짓날이 지난 겨울밤은 미세하게 짧아진 느낌, 아침이 어느새 머리맡에 와 있었다. 까치 소리에 반갑게 깨어 펜션 마당을 산책하는데, 담벼락 위로 고개를 내민 동백나무에 어제의 열기꽃보다는 작고 수줍게 동백꽃 몇 송이가 눈망울을 밝히고 있었다. 동백꽃을 보다가 문득 백석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일행이 아직 늦잠에 든 사이 혼자 서피랑 마을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 남아 있는 백석의 자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백석은 1936년에만 세 번 통영에 왔다. 1월, 3월, 12월. 짝사랑하는 여인 박경련을 만나러. 세 번 다 얼굴은커녕 그림자도 못 봤다. 세 번째는 무작정 그녀 어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떼쓰러 간 것이었다. 1936년 3월 바보 같은 스물다섯 살 백석이 박경련(시에는 ‘난’으로 썼다)을 못 만나고 슬퍼서 슬퍼서 낮술 먹고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통영 2’를 쓴 곳이 바로 충렬사 돌계단이다. 나도 그곳에 잠시 앉아 백석의 애타는 마음과 상실감을 헤아려보았다.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백석, ‘통영 2’ 부분)
백석은 조선일보 기자 시절인 1935년 친구 허준 결혼식에서 신문사 동료 신현중에게 열여덟 이화여고생 박경련을 소개 받고 사랑에 빠져버리는데, 김건모 ‘잘못된 만남’이 벌써 그 시절에 있던 얘기다. 신현중이 뒤통수를 쳐버린 것이다. 백석이 딸과 결혼하겠다 하니 박경련 집에서 신현중에게 백석에 대해 물었다. 박경련은 신현중 누나의 제자였다. 신현중은 "백석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 일러바치고는 백석 대신 자신과 혼인시켜달라고 해서 승낙 받는다.
시 쓴 대로 현실에서 이뤄지는 걸 ‘시참’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다”고 쓰니까 그대로 된 것이다. 백석이 ‘통영 2’를 쓴 그 이듬해,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1937년 4월 7일 박경련은 신현중과 결혼한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 하였습니다”(백석의 산문, ‘편지’)던 그녀를 백석은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백석의 ‘통영’ 연작에 나오는 충렬사, 명정 샘, 통제영을 걸으며 백석을 생각했다. 박경리 선생 글귀가 적힌 서피랑 골목길을 굽이굽이 빠져나가 서호시장에 들러 물메기 두 마리를 사서는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잠이 깬, 그러나 아직 술이 덜 깬 일행을 위해 냄비에 물을 올리고, 무와 청양고추, 대파, 김치를 썰어 넣은 물메기탕을 끓였다. 뜨끈한 국물에 속이 시원하게 풀릴 때, 창밖으로 동백꽃 같은 아침 해가 미리 빌려 온 새해의 빛을 아낌없이 쏟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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