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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연재 에세이_ 한치가 뭐길래
낚시에세이

연재 에세이

 

한치가 뭐길래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김국환, ‘타타타’)”라는 노랫말이 실감 나는 계절을 보냈다. 6월부터 8월까지 한치낚시 시즌을 맞아 자괴감과 무력감, 공허함을 참 많이 느꼈다. 한치가 뭐길래 이토록 나를 괴롭게 하는 걸까? 한치는 먹으면 몸에 좋지만, 잡으려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 2020년 여름은 한치 이카메탈 실패의 역사로 남고야 말았다.
사실 그동안 한치낚시에 큰 흥미를 갖지 않았다. “넣으면 나온다”는 ‘느나낚시’로 오해해서 도전의식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2016년 7월 초 제주 신촌 성현호를 타고 쏘가리 낚싯대에 2000번 스피닝릴, 합사 0.6호에 무늬오징어 에기를 달아 아무렇게나 던져 감기만 하면 표층으로 떠오른 한치들이 덜컥 덜컥 걸려들었다. 이듬해 성산 신금남호에서도 어렵지 않게 많은 한치들을 낚아냈다. 그땐 배에 비치된 조업용 채비를 썼다. 이카메탈에 대해선 무지하고 또 무심했다.
지난 6월 여수에서 올해 첫 한치 출조에 나섰다. 제대로 된 이카메탈낚시는 사실상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문학평론가 하응백 선생님과 동행했다. 순천 나들목에 들어와 기사식당에서 서대회 백반을 맛있게 먹고, 국동항에서 배에 올랐다. 시즌 초반 통영, 여수, 제주 등 남쪽 바다에서 한치 대박 소식이 들려온 터라 기대감이 컸다. 나는 90리터짜리 대장쿨러를 챙겨왔다. 만쿨의 부푼 꿈을 꾸면서 선실에 누워 눈을 붙였다.
세 시간쯤 달려 도착한 백도 인근에서 채비를 내렸다. 집어등을 켜기 전까지는 워밍업이므로 선사에서 빌린 카운터릴을 손에 익히면서 옆 조사들이 어떻게 낚시하는지를 곁눈질했다. 입질이 없어도 태평했다. 집어등에 불이 환하게 켜지면 한치들이 수면으로 피어오르리라! 그러나 한치들은 깊은 물 아래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한 한치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철수할 때까지 고작 다섯 마리를 잡았다.
여수에서의 처참한 실패는 이카메탈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약이 오르니 오기가 생겨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은 채 인터넷과 유튜브로 한치 공부만 했다. 카운터릴 등 전용 장비를 구입하고, 소위 ‘핫’하다는 에기, 스테 등도 닥치는 대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는 동안 아주 재미난 얘기를 들었는데, 올해 한치 조황이 예년에 비해 매우 저조해 친한 낚시 선배들이 “한치 두고보자”며 이를 갈고 있다는 것이었다.
곳곳에서 “나도 당했다”는 피해담이 속출했다. 한치는 이제 타도의 대상,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누가 이카메탈 출조한다고 하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며 말리거나 대신 복수해 달라며 당부하곤 했다. 나도 선배들의 만류와 응원을 양 어깨에 짊어진 채 7월초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장한 각오로 나선 단독 출조였다.
저활성도의 한치를 꼬여내는 데 유리하다는 ‘삼봉 오모리그’와 이카메탈 3단 채비를 준비했다. 삼봉 오모리그는 배스용 캐롤라이나리그처럼 기둥줄 중간에 봉돌을 달고, 아래 목줄에 학공치포 등 생미끼를 철사로 감아 부착할 수 있는 삼봉에기를 매어 보다 자연스러운 액션 연출로 한치를 유혹하는 채비다. 학공치포보다 더 반응이 좋다는 꽁치까지 챙겨 자신만만했다.
90리터 대장쿨러와 함께 제주항 서부두에서 압둘라호에 올랐다. 30분이면 포인트에 닿으니 여수나 통영권에 비해 몸이 편해서 좋다. 집어등을 켜기 전 바닥층을 공략해서 사이즈 좋은 한치를 올려냈다. 출발이 산뜻했다. 아니다. 출발만 산뜻했다. 한여름인데도 바람막이를 입어야 할 정도로 공기가 차가우니 수온도 좀처럼 오르지 않아 한치 활성도가 미약했다. 뜨문뜨문 한 마리씩 낚아낸 최종 조과는 18마리. 90리터 대장쿨러가 차라리 내 관짝처럼 느껴졌다. 쓸쓸히 쿨러에서 얼음을 반쯤 버리고, 용두암 해수 찜질방에 가 황토방에 누워 있으니 땀과 함께 영혼이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한치가 사람 잡는다고 생각했다.
이후 한 달 동안 한치를 잊으려고 고흥에 붉바리 외수질낚시도 다녀오고, 보령에서 백조기도 잡고, 유례없이 긴 장마에 ‘차라리 잘 됐다’며 낚시 생각을 내려놓기도 해봤지만 밤에 불 끄고 누우면 천장에 한치가 둥둥 떠다녔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8월초, 설욕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작정하고 이틀 연속 출조 예약을 했다. 대학원 은사이신 문학평론가 전영태 선생님을 모시고 제주에 갔다. 나도 단단히 별렀지만 전영태 선생님께서도 비장했다. 일전에 통영에서 한치에게 된통 당했다고 하셨다. 스승과 제자는 리벤지를 다짐하며 장마가 끝난 제주의 무더위 속을 성큼성큼 걸었다.
공항에서 제주항까지 오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들으니 예년에는 횟집에서 활한치 1kg에 3만~3만5천원쯤 했는데, 올해는 5만5천~6만원이나 한단다. 압둘라호 장진성 선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업하는 배들마저 하루 3~5kg 정도밖에 못 잡는다고 했다. 포인트에 도착해서 낚시를 시작하는데 조짐이 불안했다. 집어등 켜기 전 몇 마리라도 올려야 하거늘 바닥권에서 좀체 입질을 받지 못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집어등에 불빛이 주렁주렁 매달릴 무렵, 사리 물때의 빠른 조류에 채비가 흐르면서 오히려 강한 셰이킹 액션에 한치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흔들고 멈추고 흔들고 멈추고를 반복하자 수심 45미터권에서 씨알 좋은 한치들이 연신 올라왔다. 이런 페이스라면 50마리쯤 잡겠다 싶었다. 올해 저조한 한치 조황에서는 30마리만 잡아도 배에서 장원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기쁨은 짧은 피딩타임과 함께 끝났다. 한치들이 한창 퍽퍽 에기를 때려주는데, 반대편 조사께서 한치 입질이 없다며 전갱이 훌치기를 시도하시다가 그만 내 채비와 줄이 엉망으로 엉키는 바람에 나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에는 그야말로 낱마리, 최종 조과는 20여 수였다. 지난번보다 조금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그만뒀다. 최소 50수 이상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제주항 서부두 인근 모텔에서 스승과 제자는 한치 두 마리를 썰어 먹으며 쓰디쓴 소주를 마셨다.
다음날, 연박 계산한 모텔 방에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고는 근처 식당에 가 갈치국으로 속을 풀었다. 전영태 선생님은 꽝을 대비해 동문시장에서 급랭 한치 5kg을 구입해 택배를 부치셨고, 나는 갈치 메탈지그를 몇 개 샀다. 오늘은 꼭 만쿨, 아니 반쿨이라도 성공하리라 각오를 다지고는 출항 시간인 오후 여섯시보다 한참 이른 네시 반쯤 배에 낚싯대를 꽂았다. 34도에 달하는 찜통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지만, 한치를 향한 복수심은 내 몸에 서늘한 긴장을 불어넣었다.
이날은 한치와 갈치 병행 출조, 갈치 지깅도 준비하긴 했지만 금방 마음을 바꿔 한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전날에는 강한 셰이킹 액션에 반응하던 한치들이 이날은 로드를 가만히 두는 스테이에 입질을 했다. 전날처럼 순간적인 피딩타임은 없었고,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뜨문뜨문 한 마리씩 올라왔다. 그러던 중 킬로급 대포 한치를 수면에 거의 다 끌어냈는데, 표층에서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던 만새기에게 강탈당했다. 한치를 냅다 물고 질주해대는 통에 옆 조사들과 전부 라인이 엉킬 뻔했지만 다행히 에기 바늘이 빨리 빠져 불상사를 면했다. 붕괴 직전의 멘탈을 붙잡고 정말 부지런히 낚시했다. 삼봉 오모리그에 적응하신 전영태 선생님께서도 전날에 비해 훨씬 나은 조과를 올리셨다. 그래봐야 둘이서 합작 40마리 남짓이었다. 밤새 서너 마리밖에 못 잡은 조사도 있었으니 그나마 나은 성적이긴 했다. 하지만 올해 마지막 한치낚시라고 생각하니 짙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다시 늦은 새벽, 숙소인 보보스모텔에 와 한치 한 마리를 썰어 전날보다 더 쓰디쓴 소주를 마시고 잠깐 눈을 붙였다. 스승과 제자는 각자 30마리 정도의 한치를 나눠 챙긴 수하물을 제주공항 컨베이어벨트에 올렸다. 비행기에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더니 어느새 김포, 장대비가 그야말로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헤어질 때 선생님은 내게 말하셨다. “너 한치 낚시 안 할 거면 장비 다 나 줘라”라고. 새벽에 소주 마시면서 “한치낚시 다시는 안 할 겁니다. 영구히 안 해요”라던 내 투정을 기억하신 것이다. 나는 황급히 말을 바꿔 “선생님, 올해는 저활성도 대응법을 연습했으니 내년에 대박 치러 꼭 다시 오시죠” 했다. 한바탕 웃는 동안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안에서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탬버린 같았다. 한치 이놈들이 끝까지 나를 놀리는구나, 내년에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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