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연재 에세이
섬진강, 나의 연인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코로나로 얼룩진 2020년을 생략하고 얼른 내년, 내후년으로 가고 싶다. 그 전에 54일간의 장마로 눅눅했던 지난 여름부터 지워버려야겠다. 비를 좋아하지만 올해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무슨 비가 그렇게 쉼 없이 내리는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도 40일에 불과했던 걸 떠올리면 올해 장마는 해도 해도 너무 했다.
8월 초 집중호우로 전국의 강과 호수가 범람했는데, 특히 섬진강 유역의 피해가 컸다. 곡성, 남원, 구례, 하동 곳곳이 침수되고, 축대와 제방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유실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그랬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붉은 황톳물이 집어삼킨 하동 19번 국도를 티브이 화면에서 보고 있노라니 착잡했다.
쏘가리 루어낚시를 즐기는 내게 섬진강은 오래된 연인의 품 같은 곳이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부터 임진강, 한탄강, 홍천강, 섬강, 소양강, 평창강, 동강, 북한강, 남한강, 파로호, 금강, 미호천, 갑천, 경호강 등 여러 필드들이 있지만 여기저기 다녀 봐도 섬진강만 한 곳이 없다. 이 여자 저 여자 많이 만나봤자 결국 사랑의 결실은 한 여자랑 맺지 않던가. 물론 다수의 남자들은 여러 여자와 사랑하는 바람둥이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언제든 따스하게 안길 익숙한 품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불행한 일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조과가 월등한 것도 아니다. 다른 곳으로 다니면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고 더 많은 손맛을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쏘가리낚시를 하러 꼭 섬진강에 가는 것은 강이 지닌 아기자기한 풍광이 마음에 들어서다. 봄에는 강변을 따라 산수유, 매화,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엔 배롱나무꽃, 가을엔 코스모스가 지천이다. 겨울 섬진강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눈 내린 겨울강에 한번쯤은 눈을 씻고 싶다. 바윗돌이 많이 박혀 있어 강물이 한 타래로 뻗다가 여러 타래로 갈라지고, 물굽이가 곳곳에 투명한 물꽃을 피워내는 ‘강의 변주곡’을 감상하는 기쁨이 크다. 어느 강이나 근사한 풍모를 지녔지만, 섬진강은 부드럽고 유려하며 여리여리한 몸이 아름답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닌지 섬진강에 몸을 담그면 유난히 따스한 물의 손, 물의 마음을 느끼곤 한다.
그 물의 마음에 큰 생채기가 난 지난여름, 강에 가지 않는 것이 강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섬진강도 수해에 돌과 흙이 마구 파헤쳐지고 나무가 뽑혀 나간 처참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득 걱정하면서도 강변의 단골 식당과 민박에 전화 한 통 걸지 못했다. 안부를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강이 다시 안정을 찾을 때까지 잠시 강을 잊기로 했다.
9월 중순, 물난리가 난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이제 좀 회복되었을까? 강의 안부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본류에는 아직 물이 많아선지 지류권인 보성강에서만 간간이 쏘가리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섬진강 중상류인 대강 부근으로 차를 몰았다. 어떤 장소를 자주 드나들다보면 그 장소가 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내겐 섬진강이 꼭 오랜 친구, 오랜 연인 같다. 어떻게 잘 지내고 있을까, 힘겨운 시간을 잘 이겨내고 있을까,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나는 코스모스와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는 정든 곡성으로 향한 것이다.
5개월 만에 찾은 강은 지난여름의 수해로 아직 신음하고 있었다. 꽤 회복이 되었는데도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라서 마음 아팠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바윗돌들이 사라지고, 강바닥이 평탄해지고, 연안의 풀과 나무들이 쓰러졌다. 자주 다니던 포인트 진입로에 웬 집채만 한 바위덩이가 놓인 것도 수마가 부린 횡포인 듯했다. 이따금 도로가 움푹 패어 왕복 2차선이 편도 1차선으로 당분간 줄어든 구간도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나는 꼭 섬진강이라는 환자에게 병문안을 간 손님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강에게 위문을 받았다. 된여울에서는 스피너를 아직 구경 못한 순진한 1년생의 어린 꺽지들이 채비가 떨어지기 무섭게 입질했다. 큰 녀석들은 지친 몸을 회복중인지 물살이 약해지는 여울 가장자리에서 미약하게 루어에 반응했는데, 다들 배가 홀쭉해 마음 아팠다. 하지만 삶에 대한 본능, 생에 대한 억척스러운 의지를 볼 수 있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인사한 후 강으로 돌려보낼 때, 꼬리지느러미를 힘차게 휘둘러 물을 때리는 꺽지들을 보면서 뭉클했다. 찬 물방울이 코로나19로 한껏 우울하고 무기력해진 내 일상에까지 튀어서, 나는 번쩍 정신을 차리게 됐다. 어깨 피고 기운 내 살자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쏘가리들은 깊은 물골 바닥에서 조심스럽게 먹이활동을 하는 듯했다. 자주 찾는 포인트에서 1/8온스 지그헤드에 2인치 아이그럽웜을 끼워 바닥까지 내렸더니 톡, 하는 입질과 함께 꾹꾹거리며 아래로 처박는 특유의 손맛을 안겨줬다. 강의 겉모습이 바뀌었지만 속은 그대로였다. 늘 반갑게 쏘가리 만나던 그 자리, 고맙게 입질해주던 그 구간에서 여전히 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강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내게 늘 위로와 휴식을 주는 강의 마음은 변함없었다.
강변의 단골집들도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했다. 매운탕집 사장님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며 자주 오라고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사장님께는 베이커리에서 산 롤케이크를 드렸고, 곡성읍 하나로마트와 삼기국밥과 청솔가든과 소머리국밥집과 모심정민박, 그리고 구례읍 국제낚시점과 구례이마트와 용천식당에 가서 열심히 지갑을 열었다. 강을 위해서는 담배꽁초와 폐라인, 페트병 따위 쓰레기를 주웠다.
그리고 얼마 전 10월 5일,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다시 섬진강을 찾았다. 홍대 인디씬에서 각각 밴드 ‘놀플라워’의 리더, 국악과 결합한 크로스오버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청록과 우식 두 후배에게 쏘가리 낚시의 매력과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름여 만에 다시 찾은 강은 예전의 모습을 많이 회복해 있었다. 금빛으로 퍼지는 가을 햇살이 강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때, 여울에 몸을 담근 우리들 마음에도 그 너그러운 빛과 소리와 냄새가 들어와 우리도 가을의 일부, 강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꺽지들은 보름 사이에 완전히 활력을 되찾아 20센티미터 넘는 힘 센 녀석들이 시원하게 스피너를 잡아당겼고, 쏘가리들은 여울과 소 사이 물골을 부지런히 오가며 활발하게 사냥했다. 나와 일행들은 여러 마리 쏘가리와 굵은 씨알의 꺽지들, 그리고 메기, 끄리, 배스 등을 만나며 행복했다. 처음 쏘가리 낚시에 도전해본 두 후배가 모두 쏘가리를 낚는 데 성공하면서, 어설픈 내 가이드는 뜻밖의 대성공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참게수제비와 막걸리를 먹으며 바라본 일몰의 섬진강에서는 이등병 첫 휴가 나와서 몇 달 만에 재회한 애인의 따스한 머리칼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건 안아본 사람만 안다. 나는 이등병은 아니었지만, 소위 임관 후 첫 외박 때 양구터미널에서 몇 달 만에 애인을 안아봤고, 이번엔 몇 달 만에 섬진강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사람은 변해도 강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은 때로 찢어지고 무너지고 뒤틀리고 엎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제 모습을 되찾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엎고 다시 태어난다. 오직 인간만 변하지 않을 뿐이다. 강이 고통스러운 자정작용을 계속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못난 난봉꾼처럼 강을 멍들게 한다. 폐라인, 루어포장재, 담배꽁초가 왜 그렇게도 많이 굴러다니는지! 강을 오래된 연인처럼 사랑하기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난봉꾼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다. 섬진강은 누구 한 사람의 애인이 아니라 만인의 연인이니까, 고요한 언살 속에서 물의 마음이 단단하게 아물 긴 겨울 지나고, 벚꽃이 하염없이 쏟아질 내년 봄에는 강도 사람도 맑고 해사한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때까지, 안녕,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