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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연재 에세이] 겨울 동해가 주는 선물, 대구
낚시에세이

에세이

 

겨울 동해가 주는 선물, 대구

 

이병철│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매년 겨울이면 속초, 고성을 찾는다. 동해의 파랑은 겨울에 가장 짙고 향기롭다. 바다에서 천연 스킨로션의 내음이 나는 때가 이 계절이다. 공현진은 아리따운 여자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항구다. 속초와 고성에는 공현진항 말고도 아야진, 화진포, 송지호, 물치 같은 예쁜 이름의 부두가 많다.
겨울 바다가 주는 최고의 선물인 대구를 낚아 올리기 위해 공현진항 블랙이글스호에 올랐다. 대구 낚시는 겨울이 최적기다. 한류성 어종인 대구는 얼음장 같이 차가운 겨울 바다를 누비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데, 살이 실팍해 먹을 게 많은 고급 생선이면서 낚시에도 곧장 걸려드는 착한 대상어다. 이런 대구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해에서도 대구 낚시가 이뤄지긴 하지만, 배로 두세 시간쯤 걸리는 먼 바다로 나가야 하고, 오징어나 주꾸미 등 생미끼를 사용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구 자원도 동해에 비해 풍족하지 못하다. 동해는 서해와 달리 근해를 조금만 벗어나도 수심이 100미터 정도로 깊어진다.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낚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다. 온통 캄캄한 이른 새벽부터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되며, 낚시하는 시간도 훨씬 많이 보장된다. 동해 선상낚시가 지닌 메리트다.
수심 100미터 깊은 바다 속에는 수중 암반과 암초 등이 잘 형성되어 있다. 대구는 바위 주변에 떼를 지어 머무는 습성을 지녔다. 동해의 대구낚시는 ‘지깅’이 대세다. 5~6피트 길이의 지깅 전용대 또는 선상 우럭대, 인터라인 낚싯대 등을 쓰며, 굵은 합사줄이 200미터 이상 감겨 있는 전동릴을 사용한다. 거기에 300~400그램의 메탈지그를 달아 바닥까지 채비를 내린 후 고패질을 하다 보면 초릿대를 슬쩍 잡아당기는 예비 입질 후에 덜컥, 하는 본 입질이 들어온다. 그때 챔질을 해 바늘이 대구 입에 확실히 박히도록 한 후 전동릴을 천천히 감으면 대구가 빙글빙글 돌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대물일수록 당연히 더 오래 걸린다.
아침 6시, 배에 올라 승선 명부를 작성한 후 본격적인 채비를 했다. 겨울철 대구 지깅은 낚시채비를 준비하는 것보다 방한 대책을 강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 평소에는 입지 않는 내복부터 옷을 여러 겹 껴입고는 거위털 파카 주머니에 핫팩도 넣었다. 이제 배가 포인트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면 된다. 30분 정도 나가니 포인트에 도착했다.
삑, 하는 부저음과 함께 채비를 내렸다. 선장이 수심 90미터라고 말해줬는데, 과연 전동릴의 수심 표시도 90미터를 가리켰다. 비교적 가벼운 280그램 메탈지그를 내렸는데도 조류가 세지 않은 덕분에 바닥에 닿는 느낌이 그런대로 잘 전달됐다. 채비가 바닥에 닿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줄을 풀면 낚싯줄이 늘어져 입질을 파악할 수 없고, 줄이 이리저리 엉키기 십상이다. 반면 채비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라인 방출을 멈출 경우 어군이 형성된 수심층에 접근하지 못해 입질을 전혀 못 받거나 중층을 회유하는 잡고기나 몇 마리 건져 올리는 게 고작이다. 선상낚시, 특히 대구 지깅은 바닥을 찍는 능력이 가장 먼저 요구된다.
바닥을 찍은 다음, 릴을 닫고는 낚싯대를 힘차게 머리 위로 치켜드는 ‘저킹’으로 먹잇고기 모양을 한 루어가 수중 암반지대를 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액션을 연출했다. 대구 지깅은  중노동이다. 그 무거운 채비를 배꼽에서부터 머리 위까지 끊임없이 올렸다 내렸다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는 보통 메탈지그가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갈 때 입질을 한다.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질을 받았다. 입질이 들어왔다고 해서 서둘러 챔질을 해서는 안 된다. 확실하게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질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때 챔질을 하는 것이 요령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제대로 걸렸다. 그런데 전동릴이 빠르게 감긴다. 대물은 아난 듯하다. 물 위로 올라온 대구는 역시나 4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녀석이다. 어쨌든 첫 수를 올렸다.
첫 수를 올린 이후 낚시에 불리한 어떤 상황이 저 깊은 물속에 발생했는지 좀처럼 대구의 입질을 받을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배에 탄 다른 낚시꾼들도 마찬가지였다. 급작스런 수온 변화가 생긴 것인지,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오직 묵묵히 채비를 내리고,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 이리저리 흔드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었다. 배 전체에서 뜨문뜨문 낱마리가 올라오는 상황, 추위와 허기를 달래고자 선실에서 컵라면 하나를 끓여먹은 후 다시 심기일전했다. 오후 들어 조류가 세지면서 280그램 메탈지그로는 바닥을 찍는 감을 느끼기 쉽지 않았다. 340그램짜리로 바꾸고는 부지런히 저킹, 저킹… 마침내 입질을 받았다. 줄을 잡고 들어올리기에는 꽤 벅찬 70센티미터급의 준수한 씨알이었다. 생대구탕은 확보가 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긴장을 잠시 내려놓은 순간, 예기치 못한 고난이 닥쳐왔다. 전동릴을 접지한 배의 전기시설에서 과전류가 발생해 전동릴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릴에서 모터 타는 냄새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내 가슴도 타들어갔다. ‘이래서 전용 배터리를 챙겨 다녀야 하는구나’ 절감했다. 릴이 망가져 금전적인 손해를 입은 것은 둘째 치고, 당장 낚시를 못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러스트_탁영호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전동이 안 된다면 수동으로 해보자며 채비를 내렸다. 포인트를 옮길 때마다 채비를 감아올리느라 죽을 맛이었다. 팔에 쥐가 나는 듯했다. 저린 팔을 풀어가며 다시 채비를 내린 후 부지런히 고패질을 하는데, 덜컥, 하는 강력한 입질이 들어왔다. 나도 강하게 챔질,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때부터는 팔씨름이나 다름없었다. 수심 120미터 아래에서부터 오직 힘으로 대구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된 느낌이었다. 전동릴로는 3분이면 될 것을 10여분 동안 끙끙대며 끌어올린 녀석은 뱃속에 이리(정소)가 가득 찬 수놈 대구, 1미터에 가까운 대물이었다. 낚시를 마치고 들어온 공현진항에는 늦은 오후의 부윰한 빛이 발갛게 스며들어, 겨울바람에 뺨이 곱게 물든 바다의 얼굴을 나는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겨울 동해가 주는 선물 중에서 가장 실속 있는 것은 대구다. 큰놈 한 마리만 잡아도 온가족이 넉넉하게 대구 요리 파티를 즐길 수 있다. 대구는 흔히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라고 말한다. 입이 큰 만큼 대가리도 크지만, ‘뽈살’이 잔뜩 붙어 있어 먹을 게 많다. 어두육미는 대구 대가리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당일 낚시로 건져 올린 싱싱한 대구를 생대구탕으로, 뱃살회로, 초밥으로, 스테이크로, 내장수육으로, 알탕으로, 찜으로, 튀김으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 식도락은 낚시꾼과 그의 가족, 친구가 아니고서는 체험할 수 없는 행복이다.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내장수육이었다.
혼자 사는 나도 대구를 잡아온 그날 저녁,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현관으로 들어서며 품에서 좋은 술 한 병씩을 꺼내는 친구들에게 50리터짜리 대장 쿨러를 열어 대물 대구를 번쩍 들어 보였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부엌에서 대구를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꿀꺽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탕부터 회, 수육 등 풍요로운 대구 요리 한상을 차려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술잔을 부딪친 겨울밤, 우정은 깊어지고 추억은 별빛처럼 환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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