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낚시꾼의 인정투쟁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낚시꾼들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낚시라는 행위 자체가 결과물을 통해 증명해야만 완성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 없이 과정을 즐겼다고 하는 말은 보통 꽝에 대한 변명이다. 실력이든 운이든 어떻게든 잡아내는 사람이 유능한 낚시꾼이다. 물론 나는 과정을 즐기는 쪽에 속한다.
낚시꾼들이 인정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낚시꾼들이 서로를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5짜 감성돔을 잡았다고 하면 계측 사진부터 보여 달라고 하는 게 낚시꾼들이다. 자기가 잡은 고기는 누르고 늘리고 당기고 밀어서 0.5미리라도 더 크게 재려 하고, 남이 잡은 고기는 대충 소수점을 절삭해서 크기를 줄인다. 고기를 들고 사진 찍을 때는 최대한 고기를 앞으로 내밀고, 남의 사진을 보면서는 “고기를 너무 내밀었네” 비난한다. 다들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큰 고기, 더 많은 고기, 더 귀한 고기라는 결과물이 없으면 여간해서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낚시꾼들이 일상생활에서는 잘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낚시꾼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남을 칭찬하거나 인정하는 풍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낚시꾼들은 낚시 행위 자체를 즐기기도 하지만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푸는 데 낚시의 목적을 주로 둔다. 회사에서, 사업장에서, 집에서 눈치 보고 잔소리 듣고 무시당하다가 주말 낚시터에서 고기 잘 잡으면 명인, 프로, 도사, 달인, 선생님 소리를 들으니 좋은 것이다. 문제는 결과물이 없으면 집에 돌아왔을 때 “낚시마저도 못하냐”는 꾸중을 듣는다는 점이다. 풍성한 조과물(맛없고 비린내 나고 처치 곤란한 강준치, 여름 숭어는 가져오면 욕먹는다)을 거두고, 그것을 회 뜨고 굽고 끓여 만찬을 차려냈을 때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멋쟁이’, ‘낚시의 신’ 같은 소리를 듣는 보람으로 낚시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누가 봐주든 안 봐주든 묵묵히 자기 낚시만 하면 되는데,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잘 안 된다. 나도 인정투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낚시꾼이다. 섬진강 계류 루어낚시 이야기를 이 지면에 몇 번 썼더니 은사이신 문학평론가 전영태 선생님께서 “독자들이 너를 손가락만한 꺽지나 잡는 놈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 작년에 러시아 가서 타이멘 잡은 이야기를 좀 써봐” 하셔서, 바로 수긍하고는 다음호 지면에 아무르강 원정기를 쓴 바 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정에 대한 갈망이 낚시꾼들끼리 동반 출조할 때는 오히려 덜하다는 점이다. 낚시라는 게 늘 잘 잡을 수 없는 일임을 낚시꾼들은 잘 알고 있어서 서로 편하다. 강력한 인정투쟁은 낚시를 즐기지 않는, 낚시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과 낚시를 갈 때 발생한다. 이 사람들은 그냥 던지면 물고기가 무는 줄 안다. “도시어부 보니까 엄청 잡던데?” 티브이 프로그램이 잡지식과 눈높이만 올려놔서 ‘회’하면 우럭, 광어밖에 모르던 이들이 긴꼬리벵에돔, 돌돔, 쏘가리, 은어, 대방어 타령을 한다. 낚시꾼 자존심에 못 잡는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무조건 잡지” 큰소리 뻥뻥 치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낚시를 모르는 이들과 낚시 갈 때마다 뭐라도 반드시 잡아내며 자존심을 지켜왔다. 특히 여수 섬달천 출신이지만 마을 방파제에서 맨손 주낙 몇 번 해본 게 전부인 내 친구 황종권 시인 눈에는 내가 ‘낚시왕’으로 보일 것이다. 몇 해 전 11월 섬진강에서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5짜 쏘가리를 끌어 올렸고, 결혼 전 예비부부 시절에 그와 그의 여자친구가 옆에서 물놀이 중인 금오도 직포방파제에서 사이즈 좋은 무늬오징어 두 마리를 거푸 낚아내기도 했다. 그 커플과 부안 위도 갯바위에 놀러갔을 땐 둘이 그늘에서 캔맥주 마시며 노는 동안 7짜 대광어를 잡아내는 위용을 과시하기도 했다. 황 시인에게 그동안 귀한 자연산 회를 참 많이도 맛보여줬다. 한 젓가락에 회 한 줄을 싹 쓸어 초장에 푹 담가먹는 ‘포크레인’ 그놈이 회 맛을 알고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큰 위기를 겪었다. 친구 부부가 제주도로 2주간 신혼여행을 갔는데, 둘이서만 보내기엔 너무 길다며 내려와 한 이틀 같이 놀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낚시를 해보고 싶은데, 체험배낚시 말고 보다 전문적인 걸 원한다고 했다. 장고 끝에 사계항에서 출항하는 만석호에 오전 다섯 시간 타이라바낚시를 예약했다. 배에 올라 둘에게 채비를 해주고 낚시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시범을 보이는데 용치놀래기 한 마리가 물고 올라왔다. “자, 보라고. 잡았잖아” 용치놀래기도 마냥 예쁘고 귀한 물고기로 보이는 신혼부부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빠가 참돔 한 마리 올려내는 모습을 꼭 보여주리라,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내가 잡는 것보다는 이 둘을 잡게 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보니 내 낚시는 뒷전이었다. 라인 엉킨 것 풀어주고, 채비를 다시 매주고, 바늘에 지렁이 달아주고, 드랙 조절해주고, 릴링 속도 봐주고, 힘들거나 지루해하진 않는지 표정을 살피고 하는 동안 다섯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결국 나는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용치놀래기 한 마리로 낚시를 마쳤다. 그 사이 이들 부부는 둘이서 상사리급 참돔 네 마리와 대물 옥돔 한 마리를 낚는 기적을 일구었다. 그냥 ‘참돔’이라고 안 하고 꼭 ‘상사리급’이라고 하는 걸 보라. 낚시꾼은 자기는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 남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족속이다. 이날 배에 총 8명이 탔는데, 거의 꽝, 선수 쪽에서 누군가 작은 옥돔 한 마리 잡은 게 전부였다. 배 전체 조과의 99퍼센트를 둘이서 올린 것이다. 초심자에게 어복이 깃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과연 다행일까? 둘의 성공적인 낚시 데뷔는 내게 불행이었다. “말만 잘하네?”, “아니 내 와이프보다 못 잡잖아”, “오빠 실망이에요”라는 멸시와 조롱이 시작되었다. 젠장, 어떻게든 만회해야 했다. 제주에 오기 전 “회는 내가 가서 떠 줄 테니 절대 사 먹지 말고 기다려라” 큰소리를 쳐놨다. 긴꼬리벵에돔 회를 맛보여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실패한다면 낚시꾼으로서의 내 입지는 크게 위축된다. 여기저기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아,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다음날 서귀포 남원에서 출항하는 드림피싱호에 올랐다. 선상 흘림낚시로 꽝친 적은 한 번도 없기에 자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늘 내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오전 내내 물이 가질 않아서 입질 한 번을 받지 못했다. 그날 같이 탄 다른 꾼이 외쳤다. “선장, 생명체가 없어!” 그러자 선장이 낚싯대를 들고 긴꼬리벵에돔 한 마리를 낚아냈다. “벵에돔 천지구만!” 하지만 선장에겐 물어주는 녀석들이 손님들의 크릴은 외면했다. 선장은 오후 물때 되기 전까지는 낚시해봐야 소용없으니, 항에 들어가 좀 쉬다가 2시쯤 다시 나가자고 했다. 남원포구 맛집 ‘범일분식’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 먹고 심기일전해 오후 낚시에 나섰다. 해질 무렵 피딩타임이 걸리면 입질이 활발할 거라고 했다.
물은 잘 가는데…… 슬슬 초조했다.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경북매일신문 홍성식 기자 초대로 겨울 포항에 갔다가 “나한테 반나절만 주면 오늘 저녁 볼락회를 실컷 먹게 해주겠다”고 해놓고는 겨우 두 마리 잡는 데 그쳤다. 그래 죽도시장에 가 양식 우럭 다섯 마리를 사서는 기포기 두 대가 공기방울을 격렬히 뿜어내는 살림통에 넣어 펜션에 가져갔다. 낚시도 생선도 잘 모르는 홍성식 기자가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서 회를 떠 줬더니 “자연산은 역시 다르네”하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체면을 지켰다.
‘이번에도 사 갈까? 긴꼬리벵에돔을 어디서 구하지?’ 괴로운 고민이 깊어지는 그때, ‘후루룩’ 줄이 빠르게 풀려나갔다. ‘됐다!’ 마침내 찾아온 입질, 준수한 씨알의 긴꼬리벵에돔이 올라왔다. 혹시라도 랜딩 중에 빠질까봐 조심조심, 그렇게 어둑해질 무렵까지 몇 마리 더 잡아서는 펜션에 당당히 들고 가 부부에게 보여줬다. 최대한 시크하게, 별 거 아니라는 듯 “응 저기 한 번 열어봐”하고는 딴 데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귀하다는 긴꼬리벵에돔을 실물로 영접한 부부의 두 눈에 나를 향한 존경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날 밤엔 긴꼬리벵에돔 회와 초밥, 지리탕을 안주삼아 밤늦도록 실컷 마셨다. 술 마시다가 나훈아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