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연재 에세이
도전과 탐욕의 새해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낚시 장르에 도전하기로 했다. 부시리와 방어 등을 대상으로 하는 지깅이다. 183cm에 90kg의 축복 받은 피지컬을 가지고도 그동안 빅게임을 하지 않은 게 어떤 ‘직무유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로 모든 활동이 위축된 2020년에는 낚시도 많이 못 갔는데, 그마저도 열쇠고리만한 꺽지나 주꾸미 같이 내 체중의 1/1000 정도 무게의 조과물을 들고 좋다고 헤벌쭉거리며 사진을 찍노라니 참 민망했다. 그래서 새해엔 덩칫값 좀 하자는 심정으로 XXXH 로드와 8000번 릴, 합사 6호, 100lb 쇼크리더, 파이팅 벨트 등을 구입했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지 않은가. 늘 하던 낚시 말고 새로운 걸 하면 그만큼 돈이 깨지겠지만 삶에는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더 재밌는 놀이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어린아이들처럼 낚시꾼도 새로운 손맛을 늘 갈망하는 법이다. 2021년에는 몇 해 전 처참히 실패했던 넙치농어를 향해 복수의 칼날, 아니 복수의 미노우날을 갈고 있다. 감성돔 찌낚시도 배워야 하는데 여건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궁극적으로는 돌돔 원투낚시를 하고 싶다. 이건 아마 몇 년 걸릴 듯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너저분한 잡낚시꾼이다. 어쩌겠는가.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올해는 빅게임을 많이 하고, 갯바위 루어낚시와 에깅 비중을 높여볼까 한다.
대망의 빅게임 첫 출조지는 제주도다. 새해에 본격적으로 다니기에 앞서 12월 12일, 첫 테이프를 끊었다. 요즘 제주도 가려면 많은 걸 감수해야 한다. 이 시국에 놀러나 다니는 정신 나간 놈이라는 세간의 눈총을 견뎌야 하고, 김포에서 제주까지 공항 및 항공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불편함을 인내해야 한다. 그나마 제주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저녁 비행기로 내려가 택시를 타고 건입동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멜조림과 멜튀김이 먹고 싶어 일도동의 ‘남원바당’ 식당을 찾았다. 소주 2병과 맥주 2병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설레어선지 일찍 깼다. 출항 시간까지 3시간쯤 남았는데, 압둘라호가 묶여 있는 서부두까지 슬슬 걸어가서 배 선수 자리에 로드를 꽂아 놓고 다시 호텔로 왔다. 유튜브로 지깅 동영상들을 보다가 일찌감치 항구에 가 채비를 했다.
▲일러스트_탁영호
아침 7시, ‘압둘라’ 장진성 선장이 출항 신고를 마치고 관탈도로 배를 몰았다. 1시간쯤 달려 도착한 포인트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저킹 액션에 익숙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흔들었다. 오전에는 물때가 좋지 않아서, 11시쯤 썰물이 돌기 시작하면 입질이 활발할 거라고 했다. 그러던 중 로드에 묵직한 부하가 느껴져 힘겹게 릴을 감았다. 방어 조업 배가 흘리고 간 폐그물을 바닥에서부터 뽑아내 건져 냈다. FG노트를 무진장 빡세게 맸더니 아주 튼튼해서, 이 채비는 오늘 절대 안 터지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저킹 액션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메탈지그를 퍽하고 때리는 입질을 받았다. 온몸으로 릴링과 펌핑을 하며 5분 만에 끌어올린 녀석은 미터 오버 대부시리. 이 맛에 빅게임을 하는구나 싶었다. 이날 큰 사이즈는 보지 못했지만 총 10마리의 부시리를 낚아내며 마릿수 재미를 봤다. 초심자에게는 마릿수 낚시만큼 좋은 학습이 또 없다.
오후 5시쯤 입항하고 분주해졌다. 7시 35분 비행기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무슨 욕심인지 잡은 고기를 다 챙겨서는 이날을 위해 구입한 접이식 카트에 싣고 서부두 수협 유진수산에 맡겼다. 10마리 손질하는 비용만 11만원 들었다. 탑승 시간 20분을 남기고 공항에 도착해 짐 부치고 구명조끼 검사 맡고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 부시리회 먹으러 밤 10시에 친구들이 놀러왔고, 한쪽 포만 썰었는데도 넷이서 배 터지게 먹었다. 대창수육, 가마살구이, 대가리찌개까지 한상 푸짐하게 차려 먹었다.
주변에 나눠주고, 사람들을 초대해 요리해먹고, 밤늦도록 떠든 게 미안해 옆집에 회 떠주고 했는데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냉동실에 부시리가 가득하다. 생선까스도 해 먹고, 조림도 해먹고, 테라스에 말렸다가 어산적도 구워 먹고 있다. 밖에 나가 술 한 잔 하기도 힘든 이 시절에 지깅은 생산성이 매우 높은 고부가가치 레저가 틀림없다. 대단히 만족스럽다. 그런데 낚시꾼의 변덕이란 죽 끓듯 해서, 1미터가 넘는 부시리들을 타작하고 와서는 앙증맞은 볼락 손맛이 궁금해 견딜 수 없어졌다. 매년마다 볼락을 회 떠서 김밥에 얹어 초장 찍어 먹는 볼락회김밥을 맛봐야만 겨울을 보람차게 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워킹이고 선상이고 볼락 조과가 시원찮다던데, 직접 꽝 치지 않고서야 믿을 수 없으므로 370km 거리인 포항으로 차를 몰았다.
못 잡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중간에 김밥을 사느라 갯바위 포인트에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가장 좋은 자리에 선객 세 분이 먼저 와 계셨다. 7.6피트 ML대에 2000번 릴, 합사 0.8호, 쇼크리더 12LB를 채비하고 일렉트로볼 던질찌를 달아 던졌다. 과연 활성도가 극히 나쁘긴 해서, 세 시간 낚시에 포획 금지 체장을 간신히 넘긴 볼락 네 마리를 잡은 게 다다. 풀 캐스팅을 빵빵 때린 후 천천히 릴링하다가 스테이를 10초 넘게 줘야 바닥권에서 톡톡거리는 미약한 입질이 패턴이었다. 입질하자마자 드랙을 째고 나간 녀석은 25cm 이상 대물급이었을 텐데, 끌고 오는 와중에 빠져버렸다. 밤 10시가 가까워오자 입질이 전혀 없어 방파제 테트라포트로 포인트를 옮겨 집어등을 켠 후 UL대와 1000번 릴로 라이트게임을 했다. 정말 더럽게 안 물었다. 연안 몰밭을 넘겨 캐스팅한 후 바닥까지 지그헤드를 가라앉혀 몰 아래 깊은 곳을 지나오게 해야 겨우 숏바이트나마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꼴랑 한 마리 잡았다.
다섯 마리밖에 못 잡았지만 볼락회김밥은 넉넉히 먹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차를 세우고 아이스박스를 도마 삼아 뜬 볼락회를 김밥에 얹어 먹었다. 비록 낚시는 망했지만 아, 그 황홀한 맛! 탱글탱글한 볼락회를 씹고 있자니 이건 대부시리 뱃살과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문제다. 그래서 이 낚시도 하고 저 낚시도 하는 것이다. 그날 밤 파도 소리 들으며 차박한 후 아침 바다 풍경에 눈을 씻으니 모처럼 기분이 산뜻했다. 저조한 조과를 쇼핑으로 만회하기 위해 죽도시장에 가 대게와 과메기, 마른 오징어를 사서 집에 오는 길엔 콧노래가 나왔다. 올라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다. 큰 물고기를 잡아도 좋고 작은 물고기를 잡아도 좋고, 크든 작든 못 잡으면 성질머리가 뻗치는 나는 왜 이렇게 탐욕스러운가? 이 탐욕을 감당하려면 또 어떤 낚시를 기웃거려야 하나? 가만 보니 도전은 탐욕의 다른 이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