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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에세이_3월 어한기 극복기
낚시에세이

3월 어한기 극복기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손이 근질거려서 미치겠다. 바다가 겨울을 맞이한 3월, 어한기를 통과하는 일이 마치 예비군 훈련의 안보교육처럼 따분하다. 지난 2월까지는 재밌게 잘 놀았다. 수시로 제주에 가 참돔 타이라바를 즐기고, 부시리 지깅을 하고, 갯바위에서 무늬오징어 에깅을 했다. 조과도 괜찮았다. 여느 때보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린 겨울, 따뜻한 제주에서 손맛을 보며 신나게 보냈다.
미국 시인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낚시꾼들에겐 3월이 그렇다. 내 경우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개강이라는 청천벽력을 피할 수 없다. 학기가 시작되어 여러모로 분주해지고, 담수는 해빙기에 바다는 영등철이라 좀처럼 낚시 일정을 잡지 못했다. 아무 때 아무데나 가서 던지면 될 테지만, 손맛을 볼 확률이 지극히 낮기에 내내 망설였다.
속된 말로 “손이 꼴려서” ‘손꼴림’의 타개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낚시를 못갈 때엔 역시 과소비만한 쾌락이 또 없다. 봄철에 배스 루어를 부지런히 다녀볼 요량으로 새 낚싯대와 릴을 주문했다. 인터넷 장바구니에 낚시장비와 접이식 자전거를 담아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질러버렸다. 아내도 애인도 없지만 미래의 가상 와이프를 그려보자 이게 잘한 일인가 싶어 밤새 잠 못 들고 뒤척였다. 곧 마흔인데, 나는 낚시 때문에 연애도 결혼도 못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더욱 몰두하니, 물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내 생이 낚시에 걸린 꼴이다.
얼마 전 소개팅하러 가서도 마음은 온통 물가에 있었다. 외모는 맘에 드는데 대화와 취향이 별로 맞지 않는 상대였다. 결정적으로 술을 한 방울도 못 했다. 파스타에다가 콜라나 마시면서 지루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얼른 헤어져서 한강에나 가보자’ 생각했다. 그날만큼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10시 영업제한이 참 반가웠다. “이제 일어나시죠” 하고는 차를 몰고 한남대교 아래로 갔다. 차에 늘 싣고 다니는 낚싯대를 꺼내 강준치 손맛이라도 볼 작정이었다. 시즌에는 쏘가리 낚시하다 강준치가 걸려들면 짜증이 나는데, 이 따분한 어한기에는 그야말로 “썩어도 준치”, 그거라도 잡겠다고 대보름 달밤에 한강변을 1만5천보쯤 걸었다. 하지만 아직 수온이 덜 올랐는지 입질을 받지 못했다. 여복도 없고 어복도 없는 불쌍한 놈, 스스로를 달래며 쓸쓸히 집으로 왔다.
돌아보니 ‘어한기 몸부림’의 역사가 꽤 깊고 우습다. 초등학생 때 하루는 낚시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바느질용 실에다가 UN 성냥 한 개비를 묶고는 부엌에 엄마가 끓여놓은 미역국 냄비에서 소고기를 꺼내 끼웠다. 그리고 그걸 비단잉어와 금붕어가 헤엄치는 거실 수조에 담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금붕어 손맛이 그렇게 좋을 줄 몰랐다. 비단잉어는 그 좁은 수조에서 성냥바늘을 물고 째기까지 했다. 이것이야말로 눈맛과 손맛을 모두 충족시키는 황홀한 ‘사이트 피싱’이 아닌가? 육고기가 훌륭한 미끼가 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 각성은 훗날 안성 반제지 좌대에서 한 칸 반대에다 먹다 남은 삼겹살을 끼워 던져 80센티급 찬넬메기를 잡는 쾌거로 이어졌다. 성냥개비 낚시는 아버지와 엄마 몰래 따먹은 ‘금단의 열매’였으나 소고기 기름기가 물에 둥둥 뜨고, 금붕어와 비단잉어 몇 마리도 함께 둥둥 뜨면서 발각이 되고 말았다. 등짝을 오지게 맞고서야 그 짓을 관뒀다.

일러스트_탁영호


고등학생 때는 컴퓨터 게임으로 낚시 못가는 따분함을 달랬다. 타프시스템에서 출시한 도스용 게임인 ‘낚시광’에 몰두했다. ‘낚시광’은 세계적으로 빅히트한 ‘대물낚시광’ 게임의 원작이다. 지금 보면 엉성하고 단순하지만, 마우스로 낚싯줄과 바늘, 막대찌를 세팅하고 지렁이나 떡밥, 새우를 달아 캐스팅한 후 붕어, 잉어, 향어, 블루길, 꺽지, 피라미를 잡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루어낚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에는 바람 세게 부는 춘삼월에 스피닝릴대에다 연을 매달아 날리기도 하고, 라인 끝에 자석을 묶어 집 안의 쇠붙이들을 당기며 놀기도 했다. 쇼크리더를 500개쯤 묶어 연습하고, 지그헤드와 웜, 미노우 등을 태클박스에 정리하고, 릴에 라인을 새로 감고, 원통 수조에다 찌맞춤을 하는 등 이런저런 낚시 준비를 하면 그래도 덜 심심했다. FTV와 FSTV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낚시 못갈 땐 남 낚시 구경이라도 해야 마음이 안정됐다. 요즘은 유튜브로 온갖 낚시 영상들을 볼 수 있으니 무료함을 달래기 좋다.
그래도 역시 물가에 나가 직접 낚시하는 기쁨에는 비할 바 아니다. 이번 학기도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강의 영상을 미리 올려두고, 써야 할 몇 꼭지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물가로 갈 것이다. 대청호에 밸리보트를 띄워 초봄 배스를 노려볼까 아니면 더 확률이 높은 해남까지 내려가 볼까. 염장 갯지렁이를 좀 사서 속초 대포항에 도다리 원투낚시를 가볼까. 아버지가 계시는 당진 대호만에 가 아버지 붕어 보트 타고 수초 사이로 쭈욱 올라올 찌올림을 감상해볼까. 아무리 손맛이 궁해도 실내 낚시카페 같은 곳엔 가고 싶지 않다.
2월은 짧기만 한데 3월은 왜 이다지도 긴 것인가. 4월을 기다리는 마음이 꼭 썸타는 여자와 밀당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안달이 나면 물고기는 금방 잡겠지만 여자는 결국 잡지 못할 것이다. 올봄에도 벚꽃 구경은 섬진강에 쏘가리낚시 가서 할 듯하다. 친구놈과 곡성에서 구례까지 다정히 걸으며, 쏟아지는 꽃비 아래서 막걸리나 마실 게 틀림없다. 이렇게 노총각으로 또 한 해 늙어가지만, 괜찮다. 사랑보다 손맛이 더 좋다고 자기위안하면서 새로 산 배스용 베이트릴에 라인을 감는다. 보급형 릴 하나 샀을 뿐인데 낚시쇼핑몰에선 웜 두 봉지와 라인커터 등을 서비스로 줬다. 비싼 밥 얻어먹고 커피도 한 잔 안 산 소개팅녀보다 훨씬 낫다. 낚시가 연애보다 좋은 이유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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