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돌부처와 벚꽃과 쏘가리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올해 봄에는 벚꽃이 예년보다 열흘 정도 빨리 폈다. 아직 3월의 찬바람이 부는데, 벚꽃과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가 한꺼번에 피어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자연이 차려놓은 봄꽃 뷔페였다. 강과 호수, 바다의 수온이 오르면서 낚시꾼들 마음에도 울긋불긋 꽃대궐이 차려지는 계절이 바로 봄이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꽃대궐이 아니라 산불이 일었다. 꽃이 하늘을 덮을수록 나는 초조함에 휩싸여갔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한 달 동안 조과가 영 없었기 때문이다. 3월 첫째 주 한강 강준치낚시 꽝, 둘째 주 대청호 벨리보팅 꽝, 셋째 주 속초 도다리 원투 꽝, 넷째 주 문경 워킹 배스까지 꽝을 쳤다. 3월 29일 월요일에 아버지가 계신 당진에 내려가 집 앞 대호만에서 보트낚시로 힘 좋고 예쁜 토종붕어 몇 마리를 잡지 못했더라면 사상 초유의 ‘3월 조과 전무(全無)’를 달성할 뻔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범위를 루어낚시로 좁히면, 3월 ‘완전 꽝’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섰기 때문이다. 찬스는 있었다. 3월 넷째주 문경 영강에서 오후 네 시쯤 바위들이 박혀 있는 섈로우권을 3/8온스 스피너베이트로 공략했는데 꽤 준수한 사이즈의 배스를 거는 데 성공했다. 마침 초봄 배스낚시를 위해 구입한 새 장비를 개시한 날, ‘장비 마수걸이’를 하는구나 싶어 들떴다. 그런데 힘을 꽤 쓰던 녀석이 발 앞까지 와서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힘찬 바늘털이 점프에 그만 주둥이에서 훅이 빠지고 말았다. 4짜 중반은 돼 보였는데, 얼마나 높이 뛰던지 주둥이에서 바늘이 빠지는 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생생했다. 그 장면은 앞으로 수년간 나의 낚시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그 녀석 이후로는 어떤 입질도 받지 못했다.
반드시 루어로 잡아야 한다! 나는 출사표를 던지고 전쟁에 나서는 장수처럼, 죽어가는 환자 앞에 선 의사처럼 비장했다. 당진에서 올라오자마자 낚시 짐을 새로 쌌다. 3월 30일, 후배와 함께 올해 첫 쏘가리낚시를 하러 섬진강으로 달렸다. 어쩌면 쏘가리들이 벌써 여울을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동면터부터 지류권, 여울상목, 여울꼬리까지를 샅샅이 뒤져보면 스쿨링된 쏘가리 떼를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남도로 달려가는 마음이 잔뜩 흥겨웠다.
신나게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팔곡JC 지나 매송휴게소를 앞두고 갑자기 차의 시동이 꺼졌다. 제너레이터가 고장 난 것이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긴급견인 서비스를 불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마침 가까운 곳에 친구가 하는 공업사가 있었다. 차를 입고시키고, 또 마침 근처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 가 차를 ‘반갈취 반대여’해 섬진강으로 다시 달렸다. 도착하니 저녁 7시, 4시쯤 도착해 저녁 피딩을 보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불운과 행운을 오가는 천신만고 끝에 물가에 도착했다는 사실만 해도 감사했다. 30분 짧은 낚시에 메기 한 마리를 잡고, 배도 고프고 술 생각도 나 촌닭도리탕에 소주를 진탕 마시고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아침 피딩을 노렸지만 깊은 자리에서는 꺽지가, 섈로우권에서는 메기가 물었다. 쏘가리는 보지 못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조과를 거두지 못해선지 속이 쓰렸다. 속을 풀기 위해 곡성 ‘삼기국밥’에서 암뽕순대국밥을 먹는데, 벽에 걸린 달력이 나에게 포인트를 알려주는 게 아닌가? 달력에 크게 적힌 ‘보성사’라는 절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지류권인 보성강으로 가라는 뜻이구나!’ 허겁지겁 남은 국밥을 마시고 보성강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내린 비로 섬진강 본류는 수량이 많고 물색이 탁한 상황이었다. 부처님이 엉터리 크리스천인 내게 큰 깨달음을 주시는 것 같았다.
보성강 포인트로 진입하는 길,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진입로 입구에 작은 석재가공공장이 있는데, 길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커다란 돌부처가 있는 게 아닌가? 상서로운 조화로다, 이것은 필히 부처님이 내게 5짜 쏘가리 한 마리 주시려는 계시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던 불심이 막 솟아나기 시작했다. 포인트로 들어가 나무관세음보살 옴마니반메훔, 꿈과 희망을 안고 두 시간 동안 부지런히 루어를 던졌다. 하지만 부처님은 작은 꺽지 한 마리도 보내주시지 않았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씩씩거리며 구례 여울 포인트로 옮기는 길, 쏘가리를 못 잡은 속상함이 곡성에서 구례 방향 섬진강 벚꽃길에서 환희와 감사로 바뀌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쏟아져 내리는 분홍 꽃비를 맞으며 이 봄에만 열리는 천국에 한참 머물렀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섬진강 벚꽃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성강에서 쏘가리를 잡았다면 거기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낚시를 계속 했을 것이다. 하지만 꽝을 치고 철수한 덕분에 벚꽃의 황홀함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부처님의 심오한 뜻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늘거리는 꽃잎들이 한꺼번에 입술을 열어 내게 낚시만 하지 말고, 물고기만 낚지 말고, 마음에 여유를 들여놓으라고, 아름다움을 낚아 올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꽃구경 실컷 하고선 다시 웨이더를 입고 여울로 들어갔다. 여울상목과 여울통, 여울꼬리를 부지런히 두들겼지만 15센티짜리 작은 애쏘 한 마리, 꺽지 한 마리를 만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커다란 보름달이 떠올라 여울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밤의 윤슬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다. 달빛이 밝혀주는 물길을 따라 여울을 빠져나왔다. 숙소로 와 미리 잡아둔 메기 두 마리로 매운탕을 끓여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봄은 3월에서 4월로 넘어가고, 나는 결국 3월 루어낚시 대상어 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쏘가리 대신 봄이 내어주는 여유와 아름다움을 가득 품에 안았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그날 밤 꿈엔 낮에 본 돌부처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벚꽃 잎 아래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