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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연재 에세이] 한치의 귀환
낚시에세이

[연재 에세이]


한치의 귀환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잔카, 아이마루베이트 필드스탭.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집 나간 한치가 돌아왔다! 지난해 충격적인 몰황으로 많은 낚시인들을 멘붕에 빠뜨렸던 한치가 올해 폭발적인 활황을 보이자 요즘 여름 밤바다는 집어등 불빛으로 빼곡하다. 나는 아직 두 번밖에 출조하지 못했는데, 어느덧 8월이라 초조하다. 한치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히니까 사람들이 전부 제주도로 몰려서 성수기가 아닌데도 경차 한 대 렌트하는 값이 하루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래서 가까운 제주항 압둘라호를 주로 이용한다. 제주공항에서 택시 타면 10분 채 안 걸려 제주 서부두에 도착할 수 있다. 요금은 8천원쯤 나온다. 배에 짐을 싣고 낚싯대 꽂고 승선명부 적은 뒤 근처 대형마트에 가 학공치포를 산다. 그러면 낚시 준비 끝이다.
한치 루어낚시의 가장 대중적 방식인 ‘이카메탈’보다 중간봉돌을 달고 단차를 준 뒤 삼봉에기에 학공치포를 감아 채비하는 ‘삼봉 오모리리그’가 요즘 대세다. 나는 지난해부터 이 채비의 열혈 신봉자가 됐다. 이 채비 덕분에 그 저조한 조황 가운데서도 남들 밤새 서너 마리 잡는 동안 20~30마리나마 따문따문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모리리그는 수직 낚시가 아닌 수평 낚시에 가까운데, 폴링 시 액션이 자연스럽고 한치가 이물감을 덜 느껴 활성도가 낮거나 입질이 예민할 때 효과가 좋고, 집어등 불빛의 음영지대에 있는 큰 사이즈의 대포한치를 낚아내는 데 유리하다. 대개 한 대는 3단 이카메탈 채비를 편성해 거치해두고, 한 대는 오모리리그로 채비해 손에 들고 운용한다.


5월 17일, 시즌 첫 출조에 나선 압둘라호에 올랐다. 장진성 선장은 “오늘이 처음이라 데이터가 없으니 모 아니면 도”라고 말했다. 한치 집어가 될 때까지 갈치 지깅을 먼저 해봤는데, 풀치 몇 마리와 메퉁이가 걸려 올라올 뿐 쓸 만한 씨알을 보지 못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집어등 불빛이 환하게 밝혀지자 본격적인 한치 입질이 시작됐다. 거의 ‘느나’(넣으면 나온다) 수준이었다. 피딩 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한치 잡다 방광염 걸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오모리리그 한 대로만 운영했는데도 20kg을 훌쩍 넘기는 조과를 거뒀다.
시즌 첫 출조라는 걸 감안하면 초대박이라고 할만 했다. 입항할 때 보니 장선장도 입이 귀에 걸려서는 “당분간 갈치 안 하고 한치만 해야겠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새벽 3시, 서부두 횟집거리 편의점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 아침 비행기 시간까지 쪽잠이나 자보려 했는데 모기가 극성이라 버틸 수 없었다. 낚시 올 때 종종 이용하는 ‘체크인 호텔’에 가 1층 로비 소파에 좀 앉아 쉴 수 없겠냐고 했더니 매몰차게 안 된단다. 빈정 상했지만 3만원 내고 4시간 대실을 했다. 방 안에 짐을 풀어 놓고 편의점에 가 가위와 초장, 소주를 사왔다. 가위로 한치를 손질해 회 한 접시 차려놓고 소주 한 잔 마셨다. 올해 첫 한치라선지 더 달고 쫀쫀했다. 힘들게 잡은 조과물을 알뜰하게 먹는 것, 그것이 낚시인의 도리다. 작년엔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 한치들이 떠다니는 바람에 부아가 치밀어 잠 못 들었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꿀잠을 자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치는 손질이 간편하고 보관이 용이하며 활용도가 높다. 냉동실에 넣어두면 몇 달이 지나도 꺼내 회로 썰어먹을 수 있다. 회, 통찜, 숙회, 물회, 회무침, 버터구이, 튀김으로 즐기고, 한치국, 오삼불고기, 파스타, 빠에야, 볶음밥, 한치순대 등으로 응용할 수 있다. 삼겹살 구울 때 돼지기름 자글거리는 불판에 아무 양념 안 한 한치를 구워 먹으면 별미다. 냉동실에 한치가 가득하면 든든하다. 손님 접대용으로 한치만 한 게 없다.
“작년엔 한치가 아니라 금치여서 회 한 접시 사먹으려면 한 8만원은 줘야 했다”며 미리 썰을 풀어 놓으면 방문하는 손님들이 들고 오는 술이 달라진다. 평소 같으면 소주 맥주였을 텐데 지난 몇 차례의 한치 파티에는 조니워커 골드라벨, 샤블리 와인, 금문고량주 등이 한치요리와 격을 맞췄다.
낚시 현장에서 바로 지퍼백에 소분해서 집에 와 냉동실에 넣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간편한가. 나는 그동안 백조기, 쏨뱅이 잡으러 다닌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백조기는 그나마 내장 손질 안한 채로 비늘만 쳐서 염장하면 되지만 쏨뱅이 손질은 중노동이다. 고흥 거금도에 붉바리 외수질 갔다가 붉바리는 걸지도 못하고 쏨뱅이만 한 50마리 잡아 와서는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한나절 내내 손질했다. 허리, 어깨, 무릎, 팔이다 쑤셨다. 어시장 난전을 방불케 한 노동의 결과 여름 동안 한치나 줄곧 잡으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또 한 번 나선 출조길, 작년에 90리터 대장쿨러를 끌고 갔다가 그것이 쿨러인가 내 관짝인가 심각한 자기성찰을 한 바 있기에 바로 전 출조의 호조황에도 쿨러를 챙겨가지 않았다. 배에서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사는 게 더 낫다고 본 판단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번에는 여건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물때인데도 썰물이 너무 빠르게 가서 내내 고전하다가 새벽 2시 넘어 들물에 피딩타임이 걸렸다. 피딩타임에 집중해서 부지런히 낚은 결과 그래도 10kg은 잡았다. 내내 침울하던 배에 그래도 웃음꽃이 피었다.

한치낚시는 개인 낚시가 아니라 팀플레이다. 채비 무게를 비슷하게 맞추고, 동일한 수심층에서 다 함께 부지런히 흔들어대야 한치들이 호기심을 갖고 상층으로 떠오른다. 한치를 띄우는 데 성공하고 나면 그때부턴 ‘느나’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늦게 걸린 피딩에 다들 집중해줘 그나마 먹을 만큼씩은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딜 가나 꼭 삐딱한 사람들이 있다. 장비와 복장은 비싼 제품으로 갖췄는데 낚시를 어디서 잘못 배웠는지 매너가 영 좋지 못했다. 포인트에 도착해 다들 부지런히 낚시하는데 자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자리를 바꿔달라고 떼를 쓰질 않나, 선장에게 대뜸 학공치포 좀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옆 사람과 라인이 엉킬 때마다 짜증을 부리질 않나…… 새벽 피딩타임에 나와 라인이 서로 엉켰고, 다른 조사들이 낚시에 방해 받는 상황이라 빠른 해결을 위해 내가 그 사람 목줄 채비 매듭 부분을 잘랐더니 “허락도 안 받고 채비를 잘랐다”며 성질을 부렸다. 충분히 알아듣게끔 설명했는데도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제 자리로 돌아가며 메탈을 바닥에 집어던지는 등 행패를 부렸다. 쫓아가서 드잡이하려다 선장 체면을 봐서 참았다. 그런 인간은 쏨뱅이 5천 마리 비늘 치고 배 따는 노역을 시켜야 한다.
낚시는 양보와 배려의 기술이다. 다음 한치 낚시에 갈 때는 함께 탄 낚시인들과 환상적인 팀워크를 발휘해 보고 싶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 허드렛일도 하고, 박카스 한 병씩 돌려야겠다. 그래야 한치를 많이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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