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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연재_에세이] 국민 취미활동 1위의 위엄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국민 취미활동 1위의 위엄





낚시 인구가 800만이고 국민 취미활동 1위라는데 잘 와 닿지 않는다. ‘도시어부’를 비롯한 낚시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요즘 여러 지자체에 유행병처럼 번지는 ‘낚시금지’ 광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만만한게 낚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낚시는 마이너리티이고 언더독이다. 낚시금지와 관련한 포털사이트 기사에달린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면 서글퍼진다. 낚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매년 9월 1일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날로부터 한두 달은 낚시가 국민 취미활동 1위의 위엄을 사정없이 뽐낸다. 주꾸미 금어기가 해제되면서 본격적인 ‘쭈갑낚시’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낚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주변 사람들도 “주꾸미 갑오징어 잡으러 간다”고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나도 좀 달라”며손을 내민다. 그들의 이중성에 기가 차다가도 ‘그래, 야들야들한 햇주꾸미 맛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환상적이지’ 혼잣말하면서 너그러이 이해하고 만다.


주꾸미 시즌에 배를 예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주말 출조의 경우 이미 몇 개월 전에 예약이 마감된다. 주꾸미 금어기가 해제된 9월 1일 새벽 2시의 보령 오천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주차장엔 빈자리가 없고, 곳곳에 텐트가 쳐져 있기까지 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식당들도 불야성을 이뤄 영업했는데, 요즘은 아침 6시에야 문을 열 수 있으니 배에 오르기 전 출출함을 달래려는 낚시인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펴고 앉아 라면을 끓이고, 김밥과 삶은 계란을 나눠먹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몇 해 전 9월 1일, 서해바다를 빽빽하게 수놓은 주꾸미 낚싯배들의 장관을 보면서 장석남 시인은 “1592년 부산 앞바다의 왜적선들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농담을 했다. 한 배에 대략 스무 명 정도씩 타는데, 오천항에서만 적게 잡아 100척이 출항한다고 해도 2천명이다. 2천명이 낚싯대 하나를 칼처럼 들고 누가 더 많이 잡는지 진검승부를 펼친다. 쭈갑낚시는 먹는 맛도 황홀하지만 무엇보다 낚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마릿수를 올릴 수 있는 낚시라서 가족 단위 출조객이 많다. ‘주꾸미 200마리’니 ‘백갑’이니 하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개인 기록 경신을 위해 저마다 자신만의 올림픽을 벌인다. 요즘은 낚시인들이 아예 계수기를 들고다니면서 마릿수를 또박또박 기록하기도 한다.


인천과 남해권에서도 주꾸미 출조가 이뤄지지만 주꾸미낚시의 양대산맥이라면 역시 보령 오천항과 군산 비응항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부터 에기가 보급되면서 국내엔 에깅 전성시대가 열렸다. 에기는 옛 류쿠왕국인 일본 오키나와 아마미 섬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어부가 횃불을 밝혀 고기를 잡다가 떨어져 나간 나무 조각에 오징어가 달려드는 걸 보고서 나무 조각에다 바늘을 달아 사용한 것이 최초의 에기다.
그것이 300년 전 가고시마 지방에 전해졌고, 1990년대 일본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됐다.


「약 200년 전인 19세기 초반 조선 순조 때 쓰여진 백과사전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4권 ‘전어지’에는 “漁人以銅作烏賊形 其鬚皆爲鉤 眞烏賊見之 自來罹鉤(어인이동작오적형 기발개위구 진오적견지 자래리구)” 라는 문구가 있다. 번역하면, “어부는 구리로 오징어 형태를 만들되, 그 수염을 모두 낚싯바늘로 한다. 그리하면 오징어가 그것을 보고 스스로 달려들어 낚싯바늘에 걸린다.” 서유구는 이 문구 다음에 출전(出典)을 <화한삼재도회>라고 해 놓았다. <화한삼재도회>는 1712년 출간된 책으로 일본의 의사 데라지마 료안이 지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즉 일본에서 18세기 초에 이미 루어로 오징어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문학평론가이자 출판사 휴먼앤북스 대표로서 책 ‘나는 낚시다’의 저자이기도 한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 하응백 서기장의 글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에깅의 역사는 일본이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섰지만, 두족류 낚시에 대한 열정, 특히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향한 애타는 순정은 이미 극일(克日)을 하고도 남는다. 일본산 에기가 거의 점령했던 에깅 시장에 요즘 우리 낚시 환경과 현장 특성에 맞는 국산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일본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수평 유지와 바늘의 예리함, 야광 등 기능을 겸비한 국산 에기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두고 하응백 서기장은 “이제 에기도 독립했다, 라고 선언해도 된다”고 말했다. “애국이 별 겁니까? 예? 우리가 일본을 뭐라도 이겨야 될 거 아닙니까?”라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최민식의 명대사가 떠올랐다(최민식은 훗날 ‘명량’에서 이순신 역할을 맡는다!).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18일 토요일,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의 2021년 가을 정기출조가 있었다. 하응백 선생님을 비롯해 소설가 조용호, 시인 장석남 선생님,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오천항 밥말리호에 올랐다. 밥말리호는 ‘낭만과 힐링의 배’다. 출항하는 순간부터 입항할 때까지 송인호 선장의 쉴 새 없는 입담과 다채로운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선실에는 아메리카노 커피 머신이 마련돼 있고, 선수와 선미, 데크 및 통로에는폭염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어닝까지 설치돼 있다. 송 선장에게 약소한 추석 선물을 드리고, 선수 자리에서 낚시 준비를 했다.


나는 쭈갑낚시에 쏘가리 로드를 쓴다. 6피트짜리 쏘가리 미노잉 전용대에 무늬오징어 도보 에깅용 2500번 스피닝릴을 장착하고 합사 0.6호에다 채비를 직결한다. 최대한 가볍게 쓰는 것이 핵심이라 양핀도래에 봉돌은 보통 7호 전후, 에기는 7cm 미만으로 하나만 달아 내린다. 바닥까지 채비를 내리고 손에 느껴지는 부하감의 미세한 변화를 감각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더니 이내 주꾸미가 올라타는 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정말 쉴 틈도 없이 주구장창 주꾸미를 뽑아냈다. 갑오징어도 간간히 섞여 올라왔다.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은 문학가들의 낚시 모임이다. 결성된 지는 4~5년 정도 됐다. 쭈갑 낚시를 갈 때면 중간에 물이 멈춰 조과가 뜸해질 쯤 주꾸미와 갑오징어 몇 마리씩 각출해서 회와 통찜으로 요리해 먹는다. 낚시도 좋지만 선상에서 즐기는 싱싱한 미식의 기쁨이 조사동맹의 존재 목적이다. 주꾸미는 회로 먹으면 식중독의 위험이 있다지만, 살아 있는 주꾸미를 깨끗하게 씻은 후 다리만 썰어 참기름에 버무려서 소금 찍어 먹으면산낙지보다 열 배는 더 맛있다.


지금껏 숱하게 먹었지만 단 한 번도 탈이 난 적 없다. 나만 알기엔 너무 아까운 맛이라, 나는 주꾸미낚시에 꼭 기포기를 챙겨가 낚시 후반에 잡은 열댓 마리를 살려서 가져 오곤 한다.


주차 자리를 확보하고자 전날 밤부터 항구에서 불침번을 섰더니 몹시 졸려서 점심 먹고 선실에 누워 한 시간쯤 낮잠을 잤다. 그랬는데도 최종 조과는 주꾸미 200여 마리, 갑오징어 40마리쯤 해서 총 7kg정도 됐다. 조사동맹원들 모두 그만큼씩은 잡았다. 대호황이었다. 밥말리호뿐만 아니라 이 배 저 배 할 것 없이 손님들 표정이 환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주꾸미 샤브샤브와 갑오징어 통찜을 먹으며 행복을 만끽했을 것이다.


나는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쳐 사적 모임이 가능한 후배 몇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집으로 소집 명령을 내렸다.
나를 포함해 장가도 못 가고 돈벌이도 시원찮아 고향에 못 내려간 사내 넷이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안주삼아 소주부터 와인, 위스키까지 대취했다. 나는 낚시가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취미활동인지 열변을 토했다.


주꾸미 샤브샤브와 갑오징어 회, 통찜, 쭈삼 볶음이 푸짐하게 차려진 술상에서 내 말에는 강한 설득력과 호소력이 생겼다. 가을이 가기 전 함께 쭈갑낚시를 가기로 했다. 그렇게 후배 세 놈을 낚시인으로 만들었다. 국민 1위 취미활동에 동참하게 된 그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국산 에기 몇 개 선물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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