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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연재_에세이] '배린이'의 생일날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배린이'의 생일날



이병철



30대 초까지만 해도 생일날 친구들과 파티를 하거나 애인 혹은 썸녀 등 여자와 보내곤 했다. 그런데 갈수록 생일 챙기는 게 귀찮고, 축하 받는 것도 남우세스럽게 여겨져서 몇 해 전부터는 되도록 조용히, 가급적 혼자 보내는 편이다. 이번 생일은 마침 개천절 황금연휴에 끼어 있어서 잘됐다 싶었다. 다들 놀러가느라 바쁠테니 괜히 성가신 약속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혼자 낚시나 가기로 했다.


그동안 배스 루어낚시를 잘 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조금 해보다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접었다.
그러다 쏘가리 루어낚시에 빠져 10년 가까이 섬진강으로, 금강으로, 경호강으로, 한강으로 부지런히 다녔다. 참돔타이라바, 무늬오징어 에깅, 농어캐스팅, 갯바위 워킹루어, 빅게임 등을 즐기러 바다에도 많이 갔다. 그러면서 배스낚시와는 점점 멀어졌다. 미루고 또 미뤄놓은 숙제처럼 좀처럼 손을 댈 수 없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게 한참 많은 초보 쏘가리꾼이지만, 지그헤드와 웜 조합의 낚시, 또는 미노우낚시라는 제한된 기법과 채비에 점점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폽퍼나 펜슬베이트 등 톱워터를 쓰거나 카약과 벨리보트를 타고 메탈지그를 내려 잡아내거나 볼락루어, 갈치루어, 바이브레이터, 크랭크베이트, 전통적인 스푼까지…… 또 저수지, 댐 낚시 등 쏘가리 루어낚시도 나름 채비와 기법이 여러 가지지만 그 방법의 다양성에서는 배스낚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풍광 좋은 계류 여울에서 웨이딩하며 낚시하는 쏘가리 루어의 낭만은 잠시 접어두고 외도를 하고 싶어졌다.


온갖 다채로운 기법과 채비로 대상어를 공략하는 배스낚시의 매력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이다. 문경 영강에서 매미 모양의 크로울러를 이용한 톱워터낚시로 배스 몇 마리를 낚으면서 재미를 붙였다. 올 봄에는 장비를 제대로 마련해서 스피너베이트와 버즈베이트로 손맛을 봤고, 여름엔 고흥 해창만과 세동지에 가서 프리리그, 톱워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나의 문학과 낚시의 은사이신 ‘탐미, 탐식주의자’ 문학평론가 전영태 선생님께서는 “맛대가리도 없는 고기 잡으러 다니지 말라우”라고 하셨지만 말이다.


지난 9월 말, 우리나라 해외 원정낚시의 선구자인 조홍식 박사님과 경북 문경에 배스낚시를 다녀왔다. 영강에서 대물 배스가 톱워터를 때렸지만 제대로 먹질 못해 훅셋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평지지에 가서는 처음 해보는 프로그낚시에 6번 바이트를 받았으나 6번 훅킹 미스가 났다. 그쯤 되니 오기와 승부욕이 생겨서, 생일을 낀 개천절 연휴 동안 배스낚시만 주구장창 하기로 작정했다.




낚시여행이지만 낚시 이외의 명분이 하나 필요할 것 같아서 부산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문경을 거쳐 대구, 김해를 지나 부산에 다녀오는 일정으로 계획했다. 10월 1일 오후 늦게 문경에 도착해 6바이트 6미스의 시련을 안겨준 평지지로 향했다. 그리고 또 2바이트 2미스라는 치욕을 안고 떠나야 했다. 도무지 프로그 훅킹 타이밍을 알 수 없었다. 눈앞에 배스가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이것은 쏘가리꾼의 파격적인 낚시운명 전환이 아닌가? 다음날 아침 금호강에서 낚시하기 위해 아쉬움을 머금고 대구로 발길을 돌렸다. 대구역 인근 맛집으로 알려진 국일불갈비에서 소주 마시고 모텔 방에 몸을 눕혔다.


생일날 오전, 초가을 더위가 한여름마냥 맹렬했다. 위성지도와 인터넷 조행기 등을 훑고 훑어서 대구 금호강의 한 포인트로 진입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배스가 톱워터를 퍽퍽 때려줄 것만 같은 환상적인 환경인데, 입질은 없었다. 수풀을 헤치고, 거미줄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여가면서 서너 시간쯤 낚시했다. 폭염이라고해도 될 만한 더위에 탈수 직전까지 갔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다가 카본 12lb를 감아놓은 릴에 백래시가 제대로 나면서 의욕을 상실했다.


도저히 풀 수 있는 엉킴이 아니라서 결국 라인을 다 버리고는 대구 각산동에 있는 ‘아재루어’ 샵에 가 새 라인을 감았다. 오후 3시쯤에야 생일 첫 끼를 먹었다. 미역국도 아니고,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서 햄버거 두 개 사 먹었다. 그러고는 김해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런데 한 시간쯤 가서, 김해에 다 도착했을 때쯤 이 멍청한 나란 놈이 더위에 혼이 나갔는지 대구 아재루어 샵에다 낚싯대를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버트대에다 릴을 장착한 채로 샵에 가서 직접 라인을 감으려 했는데, 사장님께서 라인을 감아주신다고 해서 릴을 잠시 분리해놓고는 새 라인이 감긴 릴만 들고 버트대는 두고 온 것이다.


올라가는 길에 찾아가겠다고 전화하고는 베이트릴에 합사 2호를 감아놓은 헤비대를 들고 김해 상동 매리수로 포인트에 진입했다. 반드시 대물 배스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생일날 꽝을 칠 수는 없다고, 이번 생일 최고의 선물은 50cm가 넘는 런커 배스일 거라고 혼잣말하면서 그 더위에 바지장화를 입었다.


거친 수풀 길을 헤치고 물에 들어가는 순간, 완만하게 보이지만 직벽 지형인 연안에서 발을 헛디뎌 풍덩 빠지고 말았다. 바지장화 안으로 청태 썩은 물이 가득 들어와 팬티고 뭐고 똥꼬까지 다 젖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빠진 생쥐 꼴이 되고 나니 부아가 치밀어서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스피너베이트를 던지고 감았다. 모기들이 달라붙고, 물에 젖은 살갗이 벌겋게 일어났다. 그럼에도 입질을 받지 못해, 포인트를 옮겨서 빅베이트를 던져봤는데, 캐스팅하다가 비싼 빅베이트 하나를 나무 우듬지에 헌납하고는 씩씩거리며 낚시를 접었다. 차를 세워둔 곳으로 기어 올라오니 이미 캄캄한 저녁이었다.


그래도 생일인데, 이렇게 보내자니 너무 억울해서 영업 제한시간 전에 부지런히 자갈치시장으로 달려 부산에서 아귀 요리를 제일 잘한다는 ‘김해식당’에 가 아귀 수육과 대선 소주를 시켰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아귀 간 좀 많이 주세요” 말하고는 5만원짜리 수육 한 접시에다 쓴 소주를 삼켰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패러디해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는 빅배스를 생각하고, 빅배스가 아니 올 리 없다”라고 중얼거리면서.


어쨌든 생일이니까 꽝친 것도, 물에 빠져 고생한 것도, 낚싯대 두고 온 것도 다 잊고 마셨다. 20세기 프랑스의 여성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생일을 맞아 그 말을 “낚시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로 고쳤다. 나는 지금 ‘배린이(배스낚시 어린이)’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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