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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연재_에세이] 고효율의 낚시를 위하여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고효율의 낚시를 위하여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잔카, 아이마루베이트 필드스탭.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새해가 밝았다. 2022년 올해는 또 얼마나 즐거운 낚시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설렌다. 1월은 꽤나 분주한 낚시철이다. 제주 타이라바 시즌이자 동해와 남해에서 볼락 손맛을 볼 수 있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제주에 가면 긴꼬리벵에돔 흘림낚시도 해야 하고, 겨울철 무늬오징어 에깅도 해야 한다. 거제나 통영에서 볼락낚시를 하면서 호래기도 잡고, 울진에 가 대구도 잡아야 한다. 바쁘다, 바빠! 게다가 1월엔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들도 있다. 가거도에 가서 감성돔 찌낚시를 해보고 싶고, 가파도의 거친 파도를 밟고 서서 넙치농어 쇼어게임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장비를 맞추려면 등골이 휘어질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없다. 아, 인생은 짧고 낚시는 길다!


그나저나 새해에는 좀 스마트한 낚시를 하고 싶다. 무작정 몸으로 때우고, 시간으로 버티고, 돈으로 보충하는 비경제적인 낚시 대신 좋은 포인트에서 짧은 시간 동안 계산한 대로 착착 맞아 떨어지는 그런 효율적인 낚시를 하고 싶다. 주변 선배들이 나이 들수록 워킹낚시보다 선상낚시를 선호하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직 30대지만 점점 체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 또 한 판 뻘짓을 했더니 노동시간과 비용 대비 고효율 낚시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더 단단해졌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11월 잔카에서 함께 필드스탭으로 활동 중인 황인철 형이 인천 남항에 가 호래기를 잔뜩 잡았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을 보는 순간 입안에 가득 군침이 돌았다. 달달하면서 야들야들하고 찰진 호래기 회와 시원하고 담백한 호래기 라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래서 호래기 잡겠다고 집어등을 새로 샀다. 남항으로 가는 길에 연안부두 낚시점에 들러 민물새우도 3만원어치 샀다. 추위에 떨며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콧물만 한 호래기 15마리 잡는 데 그쳤다. 그걸 기포기에 살려 집에 와서는 8마리는 라면에 넣고, 7마리는 회로 먹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싱싱한 횟감 호래기가 1킬로에 1만 2천원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몇 해 전 무모하게 넙치농어낚시에 도전했을 때도 가장 낚시가 안 된다는 2월에 막무가내로 들이댔다가 참패했다. 4박5일 동안 서귀포 남원 갯바위 일대를 누비며 거센 눈보라와 너울파도에 뺨을 맞아가며 부지런히 던졌지만 복어 새끼 한 마리 잡은 게 전부였다. 10년 전 처음 쏘가리 루어낚시를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잡아보겠다며 포인트 아닌 곳만 골라 다니면서 아홉 번 연속 꽝을쳤다.


첫 볼락 루어낚시를 시도했던 20대의 마지막 겨울날엔 포항 양포방파제 테트라포트에서 미끄러져 하반신이 물에 빠졌는데, 배꼽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어 감각이 없는 상태로 네 시간 더 낚시했다. 그러고는 볼락 세 마리 잡았다. 가을 턴오버가 일어나 배스 잡기 참 힘든 시기에 굳이 배스 낚시하겠다며 밀양 삼랑진에 가 물에 빠지고 낚싯대 잃어버린 작년 생일날은 언급조차 하기 싫다. 언젠가 뜨거운 여름날 제주 북촌방파제에서 벵에돔 찌낚시를 하던 중에 걸려온, 내 낚시와 문학의 은사 전영태 선생님의 전화 한 통이 떠오른다.


“날 더운데 괜히 개지랄 떨지 말고 해 저물면 한치 배낚시나 갔다 와. 그게 남는 장사야.” 아, 스승은 어느상황에서든지 귀한 가르침을 주시는구나!




노력과 비용 대비 고효율의 낚시를 추구하는 것은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일도 생활도 점점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숨 좀 쉬려고 낚시 가는 건데, 낚시하러 가서까지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년이면 ‘불혹(不惑)’이라는 마흔인데, 세상엔 왜 이렇게 많은 고통과 근심과 번민이 있는 걸까? 내 삶이 때로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있는 것 같고, 또 때로는 풍랑이 일어 집채만 한 파도가 일어서는 난바다에 내던져진 것 같다. 안개와 파도라는 고난을 이겨내려면 나는 기필코 ‘행복한 낚시’를 해야 한다. 갈 때마다 손맛 보고, 먹을거리도 많이 장만해오는 그런 낚시 말이다.


그런데 낚시라는 게 ‘잡아야지’, ‘먹어야지’ 하는 순간부터 강박적 행위가 된다. 스트레스 풀러 갔다가 스트레스 받고 오는 건 다 조과에 연연해서다. 행복한 낚시, 고효율의 낚시를 하려면 우선 마음부터 비워야 한다.


지난 11월 말, 팀쏘가리 운영자이자 FTV ‘바다로 간 쏘가리’ 진행자인 이찬복 프로와 함께 레저보트를 타고 보령으로 농어 루어 낚시를 갔다. 조홍식 박사님과 낚시 선배인 이승학 형도 함께 출조했다. 아침 6시에 대천항 슬로프에서 보트를 내렸는데, 이날따라 해무가 매우 짙게 끼어 도무지 출항할 수가 없었다. 우리 배를 비롯해 수십 척의 레저보트들이 내항 빠지에 정박한 채 안개가 걷히기만 기다렸다. 금방 걷힐 줄 알았던 안개는 오전 10시가 지나도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두터워졌다.


그러자 손이 심심해진 낚시꾼들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채비를 내려 낚시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에기를 내려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잡으려 하고, 또 누구는 호래기를 생미끼로 달아 우럭이든 뭐든 아무 고기나 잡으려 했다. 그렇게 십 여분쯤 지날 무렵, 우리 옆 레저보트에서 심상찮은 움직임이포착됐다. 보트에 대충 거치해둔 낚싯대 초릿대가 훅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쪽 조사 분께서 챔질을 해 물위로 끌어올린 것은 팔뚝만한 숭어였다. 뜰채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그 옆 보트에서 뜰채를 대줘 고기를 건졌다. 씨알급 숭어가 보트 위로 올라오는 순간 대천항 빠지에 발이 묶인 수십 척의 레저보트 위 낚시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그 순간은 마치 재난영화에서,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부터 간신히 몸을 피한 사람들이 열악한 대피소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낚시인가? 또 얼마나 고효율의 낚시인가? 낚시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어떻게든 즐거움을 찾아내는 일이다.
점심쯤 돼서 해무가 조금씩 걷히자 그때까지 서로 눈치를 보던 보트들이 한 척씩 내항을 빠져나가 바다로 달리기 시작했다. 얇아진 안개 사이로 보이는 가을바다의 풍경은 이제껏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꿈결의 바다’였고, 우리 일행은 힘이 제대로 붙은 늦가을 농어를 꽤 먹을 만큼 잡았다.


낚시를 마치고 항에 복귀할 때는 잠옷 같은 안개를 벗어버린 석양이 옆으로 누운 채 황홀한 알몸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이날 본 꿈결 같은 바다와 숭어 한 마리에 터져 나오던 낚시인들의 환호성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올해에는 용치놀래기든 좆쟁이든 강준치든 뭐든 간에 고기 한 마리 잡을 때마다 환호성을 크게, 크게 지르리라! 그게 행복한 낚시, 고효율의 낚시를 위한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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