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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연재_에세이] 대방어 수확의 기쁨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대방어 수확의 기쁨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 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잔카, 아이마루베이트 필드스탭.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겨울은 부시리와 방어를 대상어로 하는 버티컬 지깅 시즌이다. 대부시리 산란기인 4월 말에서 5월 중순, 또부시리, 방어가 표층에서 점차 깊은 수심으로 들어가는 늦가을도 지깅 낚시철이긴 하지만 역시 12월에서 1월까지 이어지는 겨울 시즌이 가장 재밌다. 산란을 앞두고 기름이 잔뜩 올라 통통해진 대방어를 직접 잡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방어 몸값이 가히 금값인 겨울, 손맛과 함께 미식의 기쁨까지 충족시키는 지깅낚시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낚시 대상어로는 부시리가 방어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같은 크기라도 힘쓰는 게 다르다. 부시리가 폭발적인 질주로 드랙을 차고 나가는 짜릿함을 선사하는 반면, 방어는 저항이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딸려 올라오는 편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부시리보다 방어가 더 반갑다. 물론 부시리도 그 맛이 방어에 뒤지지 않지만, 인식이라는 게 무섭다. 방어가 겨울철 국민횟감으로 등극해 그 위상이 높아지자 괜히 귀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2월, 제주도에 가 압둘라호를 타고 두 번 출조했다. 첫 번째 출조는 FTV ‘솔루션’ 촬영을 겸했는데, 이광수 프로가 선수에서 방송촬영할 동안 나를 포함한 소수 인원은 선미에서 낚시했다. 이날 포인트는 대관탈도 부근, 바람이 세게 터진 데다 너울파도가 장난 아니었다. 중심을 잡고 서 있기도 힘든 상황, 멀미약 두 알을 먹고 간신히 버티며 낚시했다. 너울이 흔들어주는 익스트림 바이킹을 실컷 타면서도 손맛은 꽤 봤다. 기대했던 120cm 이상급의 대부시리는 만나지 못했지만, 10kg 전후 준수한 사이즈의 부시리와 방어들을 넉넉히 잡았다. 막판에 대삼치 한 마리도 끌어 올렸다.


9kg짜리 방어, 7~8kg 부시리 세 마리, 5kg 삼치 한 마리 이렇게 총 다섯 마리를 서부두 수산시장에서 손질했다.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 친구들을 불러 모았

다. 6인까지 사적모임이 허용될 때라 여섯 명이 함께 둘러 앉아 제철 대방어와 부시리, 대삼치 모둠회를 즐겼다. 초밥과 내장 수육, 대가리 오븐구이에다 냉동실에서 무늬오징어 두어 마리를 꺼내 썰어 놓으니 친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밖에서 사 먹으려면 얼마를 줘야 하는 거냐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낚시꾼으로서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때가 바로 이런 때다.




“이 큰 걸 어떻게 잡았냐”, “낚시왕으로 인정한다”, “도시어부에 나가봐라”, “덕분에 입이 호강한다” 같은 칭찬 한 마디에 낚시꾼은 개고생을 무릅쓰고 다시 바다로 나선다. 출조하는 데 돈 한 푼 보태준 적 없는 지인들을 위해 험한 파도와 맞서 싸우며 채비를 던지고 또 던지는 것이다.


방어 한 쪽, 부시리 한 쪽, 삼치 한 쪽 이렇게 세 쪽만 썰었는데도 여섯 명이 다 못 먹고 남겼다. 집에 가 와이프와 아이들 챙겨주라고 일회용 그릇에 정성껏 포장해줬다. 그렇게 해야 친구 와이프들이 낚시에 대해 아름다운 인식을 갖게 되고, 친구들을 꼬셔 낚시터에 데려갈 명분이 생기게 된다. 낚시인에게는 다 계획이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와이프들이 “병철씨 따라서 낚시 좀 다녀와”라고 이구동성이었단다.


다음날에도 방어 부시리 나눔은 계속 되어서 신림동, 사당동, 수원 영통, 호매실동, 군포를 넘나들며 엄마, 외삼촌, 친구, 선배, 후배들에게 한 접시씩 배달해줬다. 그러고도 남아서 저녁에 또 다른 친구들을 불러 하루 더 숙성시킨 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했다. 그럼에도 남아서 전을 부쳐 먹고, 생선까스를 해먹고, 회덮밥을 해 먹었다. 생선이 크니까 나눔의 크기도 넉넉했다. 다들 또 잡아오라고 난리였다.


그래서 또 잡으러 갔다. 두 번째 출조 역시 대관탈도 부근으로 향했다. 내가 무슨 ‘바람의 아들’도 아니고, 전날까지 잔잔했던 바다가 또 꼴랑거리기 시작했다. 대관탈도 가는 길이 역시나 험난했다. 세차게 터져버린 북서풍으로 배가 포인트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일행은 신나게 너울 바이킹을 타야만 했다. 누군가는 벌써 배 뒷전에 가 속을 게워내며 집어를 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관탈도 포인트에 도착해 낚시를 시작했다.


어탐기에 어마어마한 어군이 포착됐다. 250그램 메탈지그로 60미터권 바닥을 찍은 후 몇 번 저킹하자마자 입질을 받았다. 끌어올리고 보니 팔뚝만한 알부시리였다. 그 녀석을 시작으로 알부시리와 야드방어들을 쉴 새 없어 잡아 올렸다. 큰 녀석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지, 뜰채질 할 필요도 없이 커봐야 50~60cm급 부시리와 방어들이 뱃전에서 붕붕 날아다녔다.


이것은 낚시인가 조업인가? 어떤 멍청한 방어 놈들은 자기가 낚시에 걸린 줄도 모른 채 신나게 헤엄쳐서 수면까지 올라왔다. 릴을 감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렇게 잡고 놔주고, 잡고 놔주고, 그나마 쓸 만한 씨알은 어창에 넣어가며 반나절 낚시하고 일찍 철수했다. 다섯 명이서 300마리쯤 잡은 것 같다.


잔 씨알이라 챙겨가고 싶은 마음도 안 생겼다. 압둘라 선장님이 “제발 좀 가져가라”고 해서 딱 여섯 마리만 마대자루에 담았다. 손질한 생선들을 챙겨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올라가는데, 재수 옴 붙었는지 내가 탄 비행기는 김포에 안개가 심하게 낀 탓에 구름 위에서 빙빙 돌다 청주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거기서 또 한 시간여를 대기한 끝에 안개가 걷혀 간신히 김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 시간이나 더 걸렸다.


그 고생을 하고도 그날 저녁, 인디 뮤지션 후배들을 집으로 불러 부시리와 방어를 썰었다. 한 접시 푸짐하게 썰어놓고는 후배들에게 맛을 크게 기대하지 말라며 내가 먼저 손사래를 쳤는데, 한 점 집어 먹어보니 세상에나,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아닌가? 야드방어라고, 알부시리라고 무시했던 게 미안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열 마리 더 챙겨올 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도 밀려왔다. 술이 부족해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 보니 동네 횟집 수조에 내가 잡은 것보다 더 작은 놈들이 ‘대방어’라는 이름을 달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들에게 “얘들아, 대방어 맛이 어떠냐?” 물었더니 쌍엄지를 치켜세우며 “또 잡아오세요 형님”했다.


비록 작은 고기들이었지만 후배들은 대방어라고 철석같이 믿었고, 덕분에 나는 낚시꾼으로서 체면을 지킨데다 기름지고 고소한 실리까지 챙겼다. 그러니 또 갈 수밖에. 그땐 꼭 130cm 오버 대부시리, 20kg짜리 특대방어를 걸어 올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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