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광장

사이드메뉴
이전으로
찾기

(173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326)] 구보 씨의 굴욕(하)
낚시 꽁트 씁새
[연재_낚시꽁트 씁새 (326)]

구보 씨의 굴욕()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일러스트 이규성


그래, 그렇다고 치자. 어차피 낚시가 뭔지도 모르고 대뜸 쫓아온... 아니다! 꼬임에 넘어가 쫓아온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치자. 뭐 대충 씁새 패거리들에게 속성 과외 하듯이 한치 낚시에 대해 들었고, 유튜브 찾아보며 낚시기법도 어느 정도 숙지는 해놨다.

하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소리가 바락바락 나온다. 뜨거운 대낮에 배를 타고 서너 시간 달리더니 망망대해로 나왔다. 보이는 것은 그저 수평선뿐! 정말로 이 넓은 바다에서 한치라는 놈이 돌아다니는 장소를 어떻게 안다는 것 인지... 점점 구보 씨의 가슴에 의구심이 싹트고 있었다.

“인자 풍 놓고 저녁 먹고, 낚싯대 준비 허고, 밤 9시 되면 시작헐거 구먼유.”

그렇다! 낚시꾼들이란 지능이 한참 떨어지는 족속들이다. 그저 지능 낮은 물고기들이나 때려잡다 보니 같이 지능이 낮아지는 모양이다. 대체 밤 9시부터 낚시를 시작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미친 듯이 한낮에 달려와서 황금 같은 저녁 시간을, 밤을 기다리는 좀비 새끼들처럼 멍하게 앉아 있는가 말이다. 도저히 구보 씨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료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없는 돈에 수심 체크 릴에 한치 낚싯대까지 사고, 뭔 지랄을 했길래 그렇게 비싼 것인지 모를 일제 에기들까지, 수없이 돈 처들인 낚싯대 두 대가 뱃전에 설치되었다.

“인자 배 위에 집어등 켜지면 시작허는겨유. 집어 되고 피딩 시간이 오문 그야말로 오줌 눌 시간도 없으니께 단단히 준비허셔유.”

그래... 이 씁새라는 놈 말을 듣던 그 시간이 그나마 행복했다. 유튜브에서 본 엄청난 떼고기를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문득 자신이 가져온 아이스박스가 작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망상에 젖기도 했다. 

배에 탄 낚시꾼 모두가 그러한 희망에 찬 얼굴이었다. 찌는 듯한 저녁 더위가 이른 저녁을 먹고는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덩달아 낚시꾼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딱히 뭘 하는 것도 아닌데 분주하다. 괜히 낚싯대를 만지기도 하고, 릴을 건드려 보기도 하고, 들어 있는 것이라곤 선사에서 준 얼음뿐인 아이스박스를 열어보기도 한다. 뭐... 낚시꾼... 들...은... 미쳤거나 정신이 나간 족속들이 분명하다.


아! 드디어 배 위의 집어등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는 대낮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좀비들이 야간사냥에 나선다. 저마다 채비를 담그기 시작했고, 선장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수심 20미터에 고정! 그 이하루 내리면 갈치들 덤빕니다. 한치 낚시 조질라면 20미터 넘기셔두 됩니다. 선장이 일일이 다니면서 20미터 이하 내린 사람 가위루 싹 잘라드립니다. 어군 20미터!”

구보 씨로서는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다. 어느 하나 토 다는 사람 없이 모두가 선장의 말에 복종하고 있다. 좀비 두목쯤 된다. 그리고 첫 한치가 나온다.

“18메다!”

잡은 사람 하나가 소리치자, 선장을 비롯해서 낚시꾼 모두가 소리친다.

“18메다!”

혹시 비티에스 공연이라도 온 것일까! 떼창도 이런 떼창이 없다. 아마도 임영웅 콘서트에 갔던 구보 씨 아내도 이렇게 떼창을 했으리라.

“왔다! 15메다! 노랑땡땡이.”

패거리 중에 첫 한치를 잡은 씁새가 소리친다. 그리고 구보 씨의 낚싯대도 흔들리고 인생 첫 한치를 잡아낸다.

“축하혀유! 몇 메다여?”

난생 처음인 낚싯대의 흔들림과 무직한 무게감, 그리고 멈추지 않는 흥분, 찍찍 물을 쏘며 올라오는 한치 때문에 몇 메다에서 잡았는지 알 수가 없다.

“18메다!”

구보 씨가 뭐 대충 소리친다. 아마도 그 정도 메다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동안 배에서는 메다를 알리는 우렁찬 소리들이 퍼져나갔고, 미친 낚시꾼들은 노래하듯 떼창으로 잡힌 수심층을 노래했다. 더욱 신난 선장도 배 안을 돌아다니며 소리치기 바빴다. 마치 노래 안 부르는 놈 잡아먹을 듯, 참견하기 바빴다.

“오케이! 15메다! 한치가 올라붙는갑다. 15메다 고정! 15메다! 저짝 사장님 흔들어! 가만히 놔두면 한치가 무는가? 존나게 흔들어!”

그 와중에 구보 씨도 서너 마리 올리며 이토록 신나고 멋진 한치 낚시라는 것을 왜 안했는가 싶었고, 바로 옆에서 구보 씨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낚시에 열중하는 씁새와 호이장놈, 총무놈, 회원놈이 예뻐 보이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저놈들의 낚시회라는, 이름도 개떡 같은 개차반낚시회에 가입해서 다른 낚시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손맛과 희열에 구보 씨도 점점 고무되어 가고 있었다.

정말로 이 드넓은 바다에 한치가 있는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서 달려 온 선장도 새삼 우러러 보인다. 낚시꾼들은 천재들이다! 낚시꾼들은 그야말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시대의 선구자들이다. 어찌 이 넓은 바다에서 저 작은 에기라는 물건 하나로 한치라는 놈들을 잡아내는 것일까. 구보 씨는 얼굴에 한치가 쏘아댄 먹물을 닦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희열과 감동과 숨 막히는 긴장과 넘치는 짜릿함은 한치 30마리째를 올리고는 깨끗하게 끝나버렸다. 어느 순간 뱃전을 울리던 낚시꾼들의 떼창도 사라지고, 힘차게 낚시를 독려하던 선장의 힘찬 구령소리도 사라졌다.

“어군이 사라진개벼유. 인자 이라다가 또 어군이 들어오문 시작하는겨유. 그때까정 쉬지 말고 아까 알려준 대로 낚싯대를 흔들어유.”

씁새가 한가한 틈을 타 구보씨에게 알려준다. 그리고는 구보 씨의 의구심이 또다시 맹렬하게 솟아올랐다. 문득 돌아본 수평선에는 새하얀 집어등을 켠 낚싯배들이 깔려있었다. 과연 저 많은 배들이 한치를 잡는다면 이 바다에 한치가 얼마나 많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 한치들이 저 배들이 있는 곳을 지나간다는 말인가. 이 넓은 바다에? 한치들에게도 지나가는 도로라도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 배의 낚시꾼들과 저 많은 배에 타고 있는 낚시꾼들은 얼마나 바보 같은가? 어쩌다 잡힌 한치 몇 마리 때문에 이 긴 밤을 지새우다니. 저 씁새놈들에게 꼬임을 당한 자신이 점점 한심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유튜브에서 본 장면들이 조작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지기 시작한다. 낚시란 한심한 놈들이 하는 짓거리임에 틀림없다. 시간 많은 놈들이 할 짓거리가 없어서 그저 배 타고 아무데나 흘러 들어와서는 낚싯대 던지고 안 잡히면 말고 일 것이다.

‘개차반 새퀴들!’


무료한 시간이 이제는 자정을 넘긴다. 가끔, 그나마 가끔씩 누군가 소리친다.

“20메다!”

그러면 이 미친, 정신머리 없는 낚시꾼들은 종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들처럼 떼창을 하며 덤빈다.

“20메다!”

그리고는 몇 마리 걷어 올리고는 조용하다.

“조진겨. 오늘은 물때도 엉망이고 어군도 없내벼. 수면에 베이트들두 안 보이구... 좃됐다.”

씁새와 패거리들이 혀를 차며 말한다. 저 새끼들은 조동아리로 낚시하는 놈들이 분명하다.

지난주에 백여 마리를 넘게 잡아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씁새란 놈의 말도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저 새끼가 아마도 시장에서 사다가 제 놈이 잡은 것처럼 나누어 준 것일게다. ‘개눔의 새끼!’ 한치 낚시 장비 산다고 처들인 돈이 얼만데... 

그렇게 구보 씨의 아이스박스에는 40여 마리의 한치가 얼음에 몸을 지지고 있었다. 더 이상의 한치는 나오지 않았고, 구보 씨와 낚시꾼들은 장비를 챙기고는 선실로 들어갔다. 허망하고 처참하고 맥 빠지는 낚시가 끝나고 항구로 돌아오는 선실은 왜 이 지랄이란 말인가.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좁은 선실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구보 씨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눈가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던가... 그래도 코를 골며 잠에 떨어진 씁새 패거리를 보며 구보 씨는 살인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따위 미친 낚시꾼놈들에게 당한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웠다. 결국 구보 씨의 생애 첫 낚시이자 한치낚시는 처참하게 끝이 나버렸다. 그나마 한치 낚시 잘한다는 개차반놈들의 조과는 6, 70수였다.

돌아오자마자 구보 씨와 구보 씨의 아내는 조동아리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씁새패들의 욕을 한참이나 달고 있었다. 무신 개뿔이나 100마리를 넘긴다느니... 사기꾼놈들...

문제는 그렇게 개 참패를 당하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였다. 잡은 한치라도 안주로 내보자 해서 급히 종이에 한치 요리들을 써서는 벽에 붙여두었다. 그런데 가게에 오는 손님들마다 누구에게 소문을 들은 것인지 주문하는 메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메뉴를 정했던 손님들도 벽에 걸린 한치 요리를 보고는 주문이 달라졌다.

“한치 잡아 왔다며유? 그거 회줌 썰어봐유. 물회두 해줘봐유.”

“얼라? 귀한 한치가 있어유? 한치찜 되남유? 그거 주셔유.”

갑자기 비싼 메뉴가 손님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왔고, 구보 씨는 냉동해둔 한치를 썰어내기 바빴다.

“우치키 장사는 되셔유? 한치 소문 냈는디?”

늦은 저녁에 들른 씁새네 패들이 구보 씨에게 물었다.

“그게... 소문냈슈? 한치 40마리 한 방에 나갔구먼유. 낼두 달라헐틴디 우쩐대유?”

구보 씨가 얼굴에 가득 미소를 담고 대답했다.

“또 가문 되지유. 아니다! 사장님이 인자 다시는 낚시 안간대매유?”

호이장놈이 느물느물하게 물었다.

“에헤이... 그게... 또 손님덜이 찾으니께...”

그리고는 구보 씨가 생각한다.

낚시꾼 새퀴들은 아마도 바보를 가장한 천재들일지 모른다고. 저 멋지고 스릴 넘치는 낚시를 취미라고 허접스러이 말을 하다니. 고급진 스포츠를 말이다.

“인자 몇 번 한치 더 가구유, 그담이 문어가유. 문어 좋잖어유? 숙회! 문어 백숙! 그담이 주꾸미 철이 오잖여유? 두말하문 잔소리여. 주꾸미 요리!”

그래. 네 놈들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럴 참이었다. 조동아리도 예쁜 개차반새끼들. 구보 씨의 아내도 주방에서 한껏 미소를 달고 있었다. (끝)

※ 낚시광장의 낚시춘추 및 Angler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