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10여 년 전이었을까요? 찌는 듯한 땡볕에 하염없이 저수지에 담긴 찌를 바라보고 있을 때, 친구놈(아마도 총무놈이었을 겁니다.)이 묻더군요.
“야. 우리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뭐? 또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아니... 이 타 죽을 땡볕에 이 지랄로 앉아서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물괴기 먹고 싶으문 시장서 사다가 먹으면 되지, 뭔 열쳤다구 돈 버리고 시간 버리문서 이 짓거리를 하느냐 이거여.”
딱히 대답할 말이 없더군요. 그 대답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엊그제 삼천포로 문어낚시를 다녀왔는데, 아침부터 내리쬐는 땡볕에 거의 초죽음이었습니다. 겨우 두 마리 잡고서는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요. ‘대체 이게 뭔 짓인가...’하는 자괴감이 들더군요.
음... 문어가 그때 기준으로 키로에 2만5천원이더군요. 출조비로 문어를 샀다면, 6키로를 샀을 것이라는... 우리는 대체 왜 이런 별 소득 없는 취미에 매달리는 것일까요?
낚시에 입문한 지 올해로 딱 50년이군요. 그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죽어도 올바른 답은 얻지 못한 채 죽는 그 순간까지 낚시터에 앉아 있거나, 낚싯배 위에 서 있을 테지요.
씁새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327개월, 햇수로는 27년 3개월의 이야기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천편일률적이었던 조행기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 보자고 연재를 시작한 것이 풋풋했던 30대였는데, 지금은 중늙은이로 변했을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청댐 비니루 귀신에게 홀려 죽을 뻔하고, 야채 트럭에게 쫓기기도 하고, 밀물에 여밭에 들어갔다가 구조되기도 하고, 거름밭에 빠져서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오다가 시체로 오인한 경찰에게 포위도 되었고, 마님의 패션 팬티의 구멍이 낡아서 구멍이 뚫린 줄 알고 비싼 낚싯대 분지르며 울기도 했으며, 방파제에서 남들은 물고기를 잡는데 저만 생쥐를 잡아내서 놀래키기도 하고, 호기롭게 술 먹으러 들어갔다가 돈이 없어서 낚싯대 전부 빼앗겨 낚시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오기도 하며 이만큼까지 흘러왔군요.
낚시를 다니면서 참 많은 이야기들을 겪었고 그 이야기들을 날것 그대로 전해드리고자 했습니다만, 말주변이 짧은 지라 제대로 들려드렸는지 생각해 보면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도 19금 이야기들을 제외하고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린 듯합니다. 덕분에 어디를 가던, 낚시춘추에 씁새를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대우를 받을 만큼 유명해 진 것도 사실이지요.
그래도 그 유명세에 비추어 적들도 많아졌습니다. 우리 개차반낚시회의 호이장놈, 총무놈, 회원놈, 그리고 제 이야기에 등장했다가 천하에 몹쓸놈이 되어 버린 사람도 많습니다. 딸딸이도 있었고, 지금은 강원도로 전근을 가버린 거시기도 그렇고, 신탄진 딸딸이, 우리 동네 쌀가게 주인, 치킨집 남편, 그리고 호프집 여사장, 낚시 배우겠다고 애를 쓰다가 본국으로 송환된(본사로 끌려간) 미국놈 조지(이름이 조지입니다)도 있군요.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고, 사고치고는 사라졌습니다.
술 취해서 회 뜬답시고 웃통 벗고 칼 들고 설치다가 경찰들 출동시킨 놈, 비밀 낚시터랍시고 엉뚱한 계곡에 데려와서는 쌍욕을 먹고 도망간 놈, 횟집 수족관 털다가 걸려서 우리까지 경찰서로 끌려가게 만든 놈 등등. 지금도 이놈들은 씁새 까버리려고 벼르는 중입니다.
한 녀석은 동종의 낚시잡지(낚시춘추 아님)에 씁새에 대한 비리를 낱낱이 밝히는 글이랍시고 투고를 했는데, 무슨 일인지 글이 실리지 않았다는군요. 아마도 그 글을 실었다가는 씁새의 해코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 것은 아닐까요?
초창기에 씁새가 연재되었을 때, 참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국내 최고의 낚시잡지에 욕설이나 내뱉는 글이 웬 말이냐?
-당장 욕지거리 해괴한 글을 걷어치워라!
-너, 뭐하는 놈이냐?
뭐 대충 이러한 글들이 편지로 오기도 했습니다(초창기에는 인터넷이 거의 전무해서 원고지로 씁새 원고를 보냈었고, 독자님들도 손 편지를 보내던 시기입니다), 아마도 그 당시 편집장님의 고뇌와 낚시춘추 직원님들의 고민이 상당했을 듯합니다.
그래도 뚝심 있게 연재를 하기 시작했고, 몇 번의 글이 올라가자 독자님들로부터 응원의 글이 날아오기 시작하더군요.
-아! 지난 호의 이야기는 내 얘기와 똑같습니다.
-욕이 찰지지 않아요! 더 찰지게 써 주세요.
-제대로 된 조행기가 나타났군요, 등등.
저 역시도 이런 싸가지 없고, 볼 것이라고는 욕설과 해괴한 사건, 사고로 일관된 이야기를 누가 읽을 것인지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재미있다는 글들을 보내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써 놓고도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있었고, 너무 재미없어서 쓰다버린 이야기도 있었지요. 과연 이 이야기를 해도 될까 싶은 글들도 물론 있었고, 기회가 된다면 써 보리라 마음먹은 19금 이야기도 한 웅큼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 모두가 하찮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도저히 글이라고 하기엔 민망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근 28년을 들려드린 이야기의 모든 것이 어쭙잖은 글이었음에도 올려주신 낚시춘추 임직원님들 덕분이고, 기꺼이 웃어주신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낚시를 하는 조사님들 모두는 씁새라고. 아수라장인 세상에 대해 속 시원하게 욕설을 던지고, 잘못된 것에 대하여 분개하고, 나보다 낮은 것에 대하여 슬퍼할 줄 아는 사람들이 씁새라고. 어째서 우리가 낚시라는 장르에 이토록 열광하고 일희일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만큼의 열정이 우리를 지탱시키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제 씁새는 또다시 낚시터로 달려갑니다. 고기가 나오면 좋고, 안 나오면 경치나 보면서 하루를 보내면 되지요.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들 역시도 해괴하고 즐거운 이야기일겁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씁새를 아껴주신 많은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 이야기에 등장해서 천하에 고약한 놈이 되어주신 분들께서도 노여움 푸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에 암암리에 도움을 주시고, 멍청한 사고를 저질러도 눈감아 주시고, 오히려 동참해 주신 오천항의 발키리 선장님, 여수의 짱구호 선장님, 삼천포의 뉴대박호 선장님 등등 모든 선장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씁새가 500회를 넘어가길 바라셨던 낚시춘추 서성모 전 편집장님, 이영규 현 편집장님께도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토록 허접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연재해주신 낚시춘추 편집부 직원님들의 무한한 열정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저는 틈틈이 주꾸미 낚싯대를 닦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주꾸미철을 맞아 또 배 위에서 한 계절을 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태클박스에는 외수질 채비가 들어있지요. 이번 주말에는 오천항으로 민어 낚시를 가볼 참입니다.
모든 낚시인들과 씁새를 사랑해 주신 분들께 끝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또다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낼 날이 있기를 바라며,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한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