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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연재_에세이] ㅅㅂㅎㅊ 아니고 ㅎㅂㅎㅊ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ㅅㅂㅎㅊ 아니고 ㅎㅂㅎㅊ

이병철


올해도 어김없이 한치 시즌이 돌아왔다. 잘 나올 때는 폭발적으로 나오다가도 안 나올 때는 하룻밤 새 서너 마리 몰황에 그치는 게 한치낚시라서, 낚시인들 사이에서는 초성을 활용한 ‘ᄉᄇᄒᄎ’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말이 유행할 정도다. ᄉᄇᄒᄎ의 뜻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다 아실 것이다. ᄉᄇ을 ᄊᄇ로 바꾸면 바로 감이 올 테니.

5월 24일, 제주의 장희동 형, 송협 형, 이광수 형, 이수 씨와 함께 압둘라호를 타고 올해 첫 한치 출조에 나섰다. 승선하기 전 동문시장에서 떡볶이와 튀김 등 분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조금 늦은 7시쯤 배에 올랐다. 이날 승선 인원 중 한 분이 김포공항 출발 지연 사태로 비행이 늦어지는 바람에 천천히 나가게 됐다. 여름밤 한치 낚시는 일찍 나가봐야 고생이다. 해질녘이라지만 무척 덥고, 80~90미터 깊은 바닥까지 채비를 내려 한치를 꼬시는 데 성공해도 올리는 게 또 일이다. 입질 빈도도 낮다. 집어등이 켜지고 나서부터가 본격적인 한치낚시 시작이다.

사방이 어슴푸레해지는 무렵부터 한치가 따박따박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밤 아홉시 쯤에 피딩이 제대로 걸려서 1타1피, 아니 1타2피의 분주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피딩이 소강상태에 이른 때에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한치가 올라와줬다. 역시 삼봉 에기에 오모리리그 채비가 잘 통했다. 갈치 낚시를 한 사람들도 4~5지급 굵은 갈치를 꽤 뽑아 올렸다. 호조황이었다.

압둘라호를 탈 때마다 사무장을 자처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송협 형이 이번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한치 열댓 마리를 취합해서 빠른 솜씨로 회를 썰어선 미리 준비한 비빔밥 도시락에 얹어 한치회덮밥으로 먹을 수 있게끔 식사를 마련한 것이다. 송협 형 덕분에 우리 일행 뿐 아니라 모든 손님들이 야들야들한 햇한치 맛을 볼 수 있었다.

새벽 4시 반 철수할 때 보니 쿨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거의 100마리에 가까운 마릿수였다. 송협 형 집으로 가 샤워하고, 형이 공항까지 데려다 줘서 첫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치를 서너 마리씩 소분해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전날부터 24시간 무수면 중이라 피곤했지만 올해 첫 한치를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어서 회와 통찜, 한치 라면을 만들어 아침부터 소맥 마시고 푹 잤다. 한치 낚시는 이 맛에 한다. 밤샘 낚시 후 찬물로 씻고 나서 한치회 썰어 초장 푹 찍어 먹는 그 맛! 이때 소맥 한 컵은 생명수나 마찬가지다.


올해 첫 한치는 두 군데서 빅 히트를 쳤다. 곧장 다음날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의 정기 출조가 있었다. 오천항 밥말리호를 타고 내만권 우럭낚시를 즐겼다. 물이 잘 안 가는 물때임에도 일행들은 씨알급 우럭과 광어 두어 마리 등 적당한 조과를 거둬 선상 회 파티를 거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날 저녁은 ‘블루오션 펜션’에서 보령의 제철 수산물인 키조개와 갑오징어, 소라, 꽃게, 그리고 삼겹살 등으로 풍성했는데, 거기에 내가 한치 열댓 마리를 손질해 ‘겉바속촉’한 튀김을 만들어 곁들였다. 두 접시에 산처럼 쌓인 튀김은 초여름밤 맥주 맛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며칠 뒤에는 내가 강의하는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종강 파티를 했다. 학생회장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역전할머니맥주 응암오거리점에서 외부 음식 반입을 허락해줘서, 미리 깔끔하게 손질해둔 한치와 회칼, 도마 등을 챙겨 가 학생들 보는 앞에서 한치회 쇼를 선보였다. 가게 직원들께도 넉넉히 한 접시 썰어드렸다. 이제 스무 살 어린 학생들이 어디 가서 이 맛있는 제철 한치회를 먹어볼 수 있겠나? 그렇잖아도 한치 조황이 시원찮아서 ‘금치’ 취급을 받고 있는데, 하여간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젓가락에 한 뭉탱이씩 잔뜩 집어 초장 푹푹 찍어 맛있게 먹는 학생들을 보며 흐뭇했다. 마치 제주도나 부산 광안리에 와 있는 것 같다며 학생들은 즐거워했다. 선생질의 보람은 바로 이런 데 있다.

한치회, 한치통찜, 한치삼겹살두루치기, 한치튀김, 한치물회, 한치회비빔면, 한치초밥, 한치숙회 등으로 부지런히 먹고, 또 주변에 좀 나눠주고 하다 보니 냉동실을 가득 채운 한치는 금방 동이 났다. 한 번 더 출조를 가기로 했다. 

잔카에서 함께 필드스탭으로 활동 중인 임상혁 형이 제주 해성피싱호를 탄다고 해서 따라 붙었다. 6월 15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송협 형이 나를 위해 주차장에 세워 둔 파란 모닝을 찾아 몰고는 화북항에 가 해성피싱호에 올랐다. 


포인트 경쟁이 치열해서 아직 해가 중천에 뜬 오후 다섯 시에 출항했다. 포인트에 도착해 풍을 펴고 낚시를 시작했다. ‘어랍쇼?’ 채비를 내린 지 몇 번 만에 낮한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감이 좋았다.

한치 몇 마리를 쿨러에 넣자 전국 최고, 아니 어쩌면 세계 최고의 선상 맛집인지도 모르는 해성피싱호의 저녁 만찬이 시작됐다. 직접 만든 수제돈까스와 미트볼, 제주 전통 돼지고기 산적, 북엇국, 계란장조림, 오뎅볶음, 열무김치, 배추김치로 구성된 식단은 역시나 풍성했다. 맛있다고 잔뜩 먹었다간 큰일난다. 해성피싱호는 손님들을 ‘우리 돼지 한돈’으로 키워 출하하려는 배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니 아이스커피와 참외, 카스타드 빵이 제공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야에는 한치회를 잔뜩 얹은 한치열무비빔라면을 한 그릇씩 먹였다. 손님이 배고프거나 음식이 맛이 없다면 선비를 받지 않겠다는 김상근 선장의 화끈한 서비스 정신이 이날도 빛났다. 그 정도로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감사하다.

밤 아홉시쯤 피딩이 제대로 걸렸는데, 짧고 강렬했다. 쉴 새 없이 폭발적으로 한치들이 올라오더니 이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나서는 낱마리 조황이었다. 그마저도 호래기 사이즈의 작은 한치들이거나 살오징어들이었다. 한치든 오징어든 따문따문 올려내다 보니 비록 사이즈는 만족스럽진 않아도 대략 60여수쯤 올렸다. 그만하면 선방한 셈이다.

새벽 5시, 잡은 한치를 들고 송협 형 집으로 가 샤워하고는 점심때까지 꿀잠을 잤다. 잡은 한치 중 스무 마리쯤 추려서 저녁 파티에 보태기로 했다. 점심에 일어나니 얼굴이 찢어질 듯한 폭염이었다. 폭염을 이기는 데는 시원한 물회만 한 게 없다. 자리물회 한 사발 들이켜니 속이 시원했다.

이날 저녁에는 송협 형의 사무실 겸 창고에서 이광수 형, 김연각 형, 김민지 누나, 윤지환 군, 김환경 피디 등 제주도 패밀리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통돼지바베큐와 초당옥수수, 한치통찜이 왁자지껄한 웃음과 어우러져 늦은 밤까지 진탕 먹고 마셨다.

아직 두 번 출조한 게 다지만, 나에게 한치는 ᄉᄇᄒᄎ가 아니라 ᄒᄇᄒᄎ다. 이건 ‘행복한치’라고 부른다. 한치는 주변과 나눠 먹는 풍요로운 기쁨을 선물한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이 있다. 한치는 함께 더불어 사는 재미를 알게 해준다. 그게 내가 한치 낚시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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