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P)의 농도는 호수의 부영양화를 결정짓는 요소다. 그리고 수질과 수생태의 특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혹 인이 매우 유해한 오염물질이어서 호수에서 수질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인이 증가하면 수질이 나빠진다는 것만 알고 그 기작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니 그런 오해를 한 것이다.
인은 유독성 물질이 아니라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매우 중요한 원소다. 생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양을 보면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 황의 순서다. 인은 생물량의 1%를 차지하는데, 함량은 많지 않으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은 유전자 DNA와 세포막을 만드는 재료이므로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다. 모든 생물 세포는 인을 함유하고 있으며 음식을 소화한 배설물에도 반드시 함유되어 있다. 농업용 비료도 주성분은 질소, 인, 칼륨이며 질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투입하는 성분이다.
▲ 유전자 DNA의 구조 모식도와 인의 역할. 인은 생명유지에 필수 원소다.
토양에는 풍부하지만 물속에서는 부족
인의 화학적 특성을 보면 단소 상태에서 산화가 잘되는 물질이어서 자연발화가 될 정도다. 그래서 담수 중에는 항상 완전히 산화되어 산소 원자 4개와 결합된 인산이온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수처리장에서 분해되거나, 퇴비를 만들 때도 더 이상 산화될 수 없다. 인산이온의 중요한 특성은 기체상에 없고 휘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수처리장에서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할 때 탄소는 이산화탄소로 기화하여 소멸하지만 인은 끝까지 남는다. 퇴비를 만들 때도 인은 휘발하지 않고 남는다.
또 하나 중요한 특성은 인산은 음이온이므로 알루미늄, 철, 칼슘 등의 양이온과 잘 결합하며 물에 잘 녹지 않는 침전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호수에서 인이 부족하게 되는 원인이다. 알루미늄은 토양 성분 중 규소, 산소에 이어 세 번째로 양이 많은 원소다.
그런데 인과 잘 결합하므로 인은 토양의 표면에 잘 흡착한다. 비료에 함유된 인은 토양에 흡착하여 빗물이 침투할 때 씻겨 나가지 않고 머무른다. 칼슘은 담수에서 수중에 가장 양이 많은 양이온이므로 인은 칼슘과 결합하여 침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은 토양 중에 풍부하지만 물속에서는 농도가 낮으며, 물속에 사는 식물플랑크톤은 인의 부족을 겪게 된다. 즉, 식물플랑크톤은 다른 원소는 풍부하지만 늘 인이 결핍된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이런 물에 인이 공급되면 식물플랑크톤이 곧바로 흡수하고 성장하므로 식물플랑크톤의 밀도는 인의 농도에 정비례한다. 인의 농도가 2배면 식물플랑크톤의 밀도도 2배가 된다. 식물플랑크톤이 증가하면 이를 먹고사는 동물플랑크톤과 어류가 차례로 증가하므로 호수에서 어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가울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어획량 증대를 위해 호수에 인을 함유한 여러 가지 쓰레기나 식물잔재, 배설물 등을 넣기도 한다.
▲ 토양 입자에는 알루미늄, 철 등이 있어 표면에 인산이온이 흡착된다.
급증한 식물플랑크톤 죽을 때 심수층 산소 고갈
인은 토양 표면에 잘 흡착하므로 토양침식이 없는 맑은 물에서는 인의 농도가 낮다. 그러나 농경지에서 흙탕물이 발생하면 미세 토양 입자의 표면에 흡착된 인이 함께 호수로 유입한다. 오랫동안 비료와 퇴비를 투입한 농경지 토양 입자의 표면에는 인이 많이 흡착되어 측적되어 있다. 홍수 때 밭에서 발생한 탁수에는 항상 많은 인이 함유되어 있으며, 토양 입자의 표면에 흡착된 인은 호수 물속에서 서서히 녹아 나와 식물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 인 제거 시설이 부족한 하수처리장의 방류수에도 인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식물플랑크톤 증가의 원인이 된다.
식물플랑크톤이 적당히 존재하면 수중동물의 먹이를 제공하므로 생태계의 건강성도 좋다. 너무 맑은 물에는 먹이가 없어 생물이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유불급, 식물플랑크톤이 너무 많아지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첫째 부작용은 호수 심층의 산소가 고갈되는 현상이다.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생물이므로 표수층에서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할 때 산소를 생성한다. 표수층의 산소는 과포화 상태가 되고 수면을 통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그런데 식물플랑크톤이 가라앉아 심수층에서 죽을 때는 분해 과정에서 산소가 소비된다. 수질분석에서는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라고 하는데 플랑크톤이 많을수록 BOD가 높다.
산소고갈은 주로 여름에 일어난다. 여름에는 표수층의 수온이 높고 가벼우며 심수층은 수온이 낮아 무거운 물이 되어 잘 섞이지 않는 성층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여름 몇 달 동안 심수층의 물이 정체된 상태에서 산소가 계속 감소한다. 특히 플랑크톤이 침강하여 분해되는 저질 표면은 산소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이어서 우선 산소가 고갈된다.
심수층의 산소가 고갈되면 저질에는 저서동물이 살지 못하며 민감한 어류도 살 수 없다. 붕어는 저산소에 내성이 강하므로 마지막까지 버틴다. 부영양호의 저질을 조사해보면 호수 가장자리의 얕은 곳에서만 동물이 살 수 있고 중앙부의 심층에는 동물이 살 수 없는 검은 색의 썩은 진흙만 존재한다. 인의 농도가 산소고갈을 통하여 저서동물과 어류의 종류도 바꾸는 것이다.
▲ 농경지의 탁수 입자에는 인이 많이 흡착되어 있어 호수 부영양화의 원인이 된다.
수질관리 핵심은 인 제거
인의 증가로 인한 두 번째 부작용은 남조류에 의한 녹조현상이다. 인의 증가는 식물플랑크톤의 증가를 수반하는데 이때 높은 인 농도를 좋아하는 유해 남조류로 종류가 바뀐다. 남조류는 독소를 흔히 생성하여 수중동물에 해를 준다. 어류의 간을 손상시키기도 하여, 녹조현상이 발생하면 수중동물의 다양성이 크게 낮아진다. 남조류는 어패류를 먹는 사람에게도 해를 줄 수 있으므로 내장을 잘 제거해야 한다. 수상스키를 탈 때 녹조현상이 발생한 물을 마시면 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물놀이도 제한된다. 결국 인의 농도가 수중동물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하천과 호수의 수질관리에서 핵심은 인을 제거하는 것이며 수질오염 총량관리제에서도 인 함량을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관리한다.
▲ 식물플랑크톤의 밀도는 인의 농도에 비례하며 인농도가 높은 곳에서는 남조류로 우점종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