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탄에서 추출한 부식질. 부식질은 농업에 도움을 주지만 상수원에서는 수질 악화의 원인이다.(사진 Wikipedia)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낙동강 정수장 수돗물에서 검출된 발암물질에 관한 위해성 논란’이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다. 낙동강의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인 트리할로메탄(trihalomethan, THM, 또는 클로로포름)의 농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고, 기준치를 초과하기도 한다는 주장과 환경부 조사에서는 기준치 이하이므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있었다.
어쨌든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다고 하니 걱정할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런데 실은 미량의 발암물질은 어느 지역의 수돗물에서도 항상 존재한다. 오염원이 없는 아주 청정한 산간지역의 하천수를 사용하더라도 수돗물에서는 발암물질이 검출된다. 원수에 존재하던 발암물질이 아니라 수돗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2차적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 수돗물 중 대표적인 발암물질 트리할로메탄(THM, 클로로포름) 구조.
수돗물 발암물질은 부식질이 염소와 결합하여 발생
그러면 발암물질은 왜 생성되나? 원인은 부식질과 염소 소독이다. 하천과 호수의 물속에는 항상 부식질이라는 유기물이 존재하며 정수장에서 살균할 때 부식질이 염소와 결합하여 발암물질을 생성한다.
식물의 목질부는 셀룰로오스라는 긴 섬유소 분자와 그 사이를 연결해 주는 리그닌이라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셀룰로오스는 곰팡이 등의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어 이산화탄소 기체로 휘발하여 소멸한다. 그러나 리그닌은 미생물이 잘 분해하지 못하는 벤젠고리 화합물을 함유하고 있어 수년간 분해 후에도 잔류하므로 난분해성 유기물이라고 분류한다. 이 난분해성 유기물은 식물이 썩고 분해된 후 만들어지므로 부식(腐植)질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부식질은 흙갈색을 띠며 물에 녹으면 물색이 홍차처럼 연한 갈색이 된다. 홍차의 갈색이 바로 부식질의 일종인 탄닌의 색깔이다.
산림에서 낙엽이 지면 곧바로 미생물과 곤충 등 미소동물의 먹이가 되어 분해되고 수개월이 지나면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부식질만 남는다. 부식질이 많이 쌓이면 토탄(땅속에 묻힌 연대가 오래되지 않아 탄화 작용이 충분히 되지 못한 석탄의 일종)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산림이 우거지고 경사가 낮은 평지에서는 낙엽 분해 잔유물과 부식질이 30cm 이상 축적되기도 하는데, 이는 표층 토양의 갈색이 부식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산림이 우거질수록 부식질 축적량이 많아 하천수의 부식질 농도가 높다.
▲ 미생물이 쉽게 분해하는 생분해성 유기물과 부식질에 많이 함유된 분해속도가 매우 느린 육각고리형의 난분해성 유기물 구조.
우리나라 수계는 부식질 함량이 낮은 편
다행히(?) 우리나라 호수는 산림기원의 부식질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아메리카나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는 우리나라 두 배 이상의 농도를 보이며, 부식질 때문에 물색이 갈색인 곳도 많고 심지어 블랙리버(black river)라고 불릴 정도로 짙은 갈색을 띠기도 한다. 우리나라 하천의 부식질이 적은 이유는 아마도 산림 연령이 어리고 경사가 높아 낙엽이 홍수기에 유출되고 낙엽퇴적량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산림 외에 농경지에서도 퇴비에 기인하는 부식질이 많이 유출된다. 퇴비는 식물 사체와 동물 배설물 등을 분해하여 생분해성유기물을 모두 없애고 부식질만 남겨 농지에 공급하는 것이다. 논에 고인 물을 보면 누런 갈색을 띠는데 부식질이 많을수록 갈색이 짙어진다.
낙엽과 퇴비에서 만들어진 부식질은 빗물에 녹아 호수로 유입되며 부식질은 분해가 느려 수중에 계속 잔류하므로 수중 유기물의 절반을 차지한다. 나머지 절반은 갓 배출된 식물사체, 동물 배설물, 식물플랑크톤 등에 기인하는 유기물이다. 하수처리장 방류수도 난분해성 유기물의 중요한 근원이다. 미생물을 이용하여 하수를 처리할 때 생분해성 유기물은 쉽게 분해되지만 난분해성 유기물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하천에 방류된다.
부식질은 토양의 물성을 좋게 하여 농사에 도움이 되며 작물에 해가 없다. 수중에서도 부식질은 수중생물에 유해성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 부식질이 함유된 물을 정수장에서 염소 소독할 때 발생한다. 정수장에서는 원수를 모래 여과지로 걸러 부유물을 제거한 후 염소로 살균하여 가정에 배송한다. 염소는 유기물을 산화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살균력을 가지는데 일부 유기물과 결합하여 발암물질을 만든다. 가장 흔한 것이 트리할로메탄(THM)이므로 주로 이것을 수질기준으로 적용한다. 염소는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수돗물 배송 중에 발생할 수 있는 2차 오염을 방지하기에 유리하므로 전세계 대부분의 정수장에서 살균제로 사용하고 있으며, 안전을 위해 가정에서 사용할 때까지 일정 농도 이상 유지하도록 첨가한다.
▲ 발암물질의 전구물질인 부식질이 많아 갈색을 띠는 독일의 산림 하천.(사진 김범철)
부식질이 가장 많은 곳은 갈대와 연이 많은 습지
여러 종류의 유기물이 염소와 결합하여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전구물질로 밝혀졌다. 그 가운데 특히 부식질이 다른 유기물에 비해 월등히 발암물질을 많이 생성한다. 즉, 동일한 양의 유기물이라도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의 생분해성 유기물에 비하여 벤젠고리화합물로 구성된 부식질이 발암물질을 몇 배 더 많이 생성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식질이 수중 유기물의 절반을 차지하므로 수돗물 발암물질 생성량은 거의 부식질 함량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수질기준으로 생물이 분해 가능한 유기물을 측정하는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을 사용하였으나 이제는 부식질 위주의 총유기탄소로 대체된 이유이다.
농경지에서는 유기물의 양이 많을수록 좋으므로 퇴비를 많이 사용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상수원에서는 유기물이 적을수록 좋은 수질로 평가한다. 부식질이 가장 많은 곳은 갈대와 연 등의 수생식물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습지다. 식물사체가 수중에서 분해될 때 부식질이 직접 물로 유출되기 때문에 부식질의 농도가 가장 높다. 보기에는 아름다운 연못이지만 짙은 갈색 물이 되면서 상수원으로서는 최악의 수질이 된다.
수돗물의 발암물질을 줄이기 위해서는 염소 살균을 하기 전에 정수과정에서 유기물을 최대한 제거하여야 한다. 그래서 활성탄으로 유기물을 제거하는 공정을 추가하기도 한다. 서울 등 고도정수처리를 도입한 일부 도시에서는 염소 대신 발암물질을 생성하지 않는 오존을 살균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염소 살균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 유럽에서는 많은 지역에서 염소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 2차 오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
▲ 식물의 분해 잔유물인 부식질이 정수장에서 염소와 결합하여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