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 낚싯줄의 구조. 4합사(좌)와 8합사(우).
PE 낚싯줄의 ‘PE’라는 말은 폴리에틸렌(Polyethylene)을 줄여서 표기한 것이다. 폴리에틸렌은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구조를 갖는 고분자인데, 이미 19세기 말에 실험실에서 우연히 합성되었고, 공산품으로서 생산한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였다. 요즘 흔히 사용하고 있는 ‘비닐봉지’라고 부르고 있는 그것이 바로 비닐로 만든 것이 아닌, PE로 만든 봉지이다.
이 PE를 이용해 낚싯줄을 만들었다고 봐도 좋지만, 자세히 말하자면, PE 낚싯줄에 사용하는 PE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훨씬 특수한 것이다.
PE는 화학적 성분은 같아도 분자량(分子量)에 의해 성격이 다른 4~5가지가 존재한다. 대부분 일상생활에 흔하게 사용하는 각종 플라스틱 용기가 이에 해당하는데, 말랑말랑한 것(LDPE, Low density polyethylene)이 있는가 하면 딱딱한 제품(HDPE, High density polyethylene)도 있는 것처럼 실제로 만져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낚싯줄로 사용하는 PE는 이런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PE보다도 분자량이 훨씬 큰 ‘초고분자량폴리에틸렌(UHMWPE, Ultra high molecular weight polyethylene)’으로 만든다. 1960년대 말에 처음 만들어진 이 초고분자량PE는 원래 인공관절이나 기계부품 등 내구성이 필요한 곳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합성수지였다. 네덜란드의 DSM이란 회사는 이런 UHMWPE를 처음 섬유화해 실로 만들어 1979년에 특허를 획득하였다.
이 회사는 일본의 대형 섬유회사인 ‘도요보(東洋紡, Toyobo)’와 파트너 관계로 1989년부터 ‘다이니마(DyneemaⓇ)’라는 상품명으로 강력한 섬유제품을 발표, 방탄복, 낙하산 줄, 요트 돛, 등산 로프, 양궁 시위 등의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두 회사가 일본에 ‘일본다이니마’라는 합병회사를 만든 이후, 일본 내에서 다이니마는 새로운 낚싯줄 소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고분자량폴리에틸렌(UHMWPE)으로 만드는 PE 낚싯줄
PE 낚싯줄이 세간에 등장한 것은 1993년쯤으로 역사는 깊지 않지만, 현재 릴에 감는 낚싯줄의 대세가 되어있다. PE 낚싯줄의 외형상 특징은 그때까지의 낚싯줄인 단사(單絲, mono-filament)와는 다른 합사(合絲, braided line)라는 점이다. 나일론 및 플로로카본 낚싯줄은 한 가닥 낚싯줄이지만, PE는 거미줄 같이 가는 여러 가닥의 실을 다발로 묶어 꼬아놓은 형태다.
이런 낚싯줄을 최초로 사용한 이는 역시 일본의 낚시인들로 ‘합사는 스피닝릴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과감하게 깨고 사용을 시작하여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처음 시도된 장르는 GT낚시와 심해지깅. 당시 이미 PE로 만든 낚싯줄은 제품화되어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이소헌터’라는 제품으로, 용도는 일본의 남부지방에서 대형 갈전갱이류를 대상으로 하는 갯바위 생미끼 흘림낚시 장르에 사용하던 것이다. 대형 양축릴에 감아 사용하던 굵고 특수한 낚싯줄이었다.
1990년대 들어 루어낚시 전용도 아니고 스피닝릴 원줄용도 아니던 신소재를 이용해 만든 시범 제품을 유명 낚시인들이 활용해 대어에 도전하는 모습이 낚시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이후 PE 낚싯줄의 존재는 순식간에 일본 낚시계에 퍼졌고 1990년대 중반에는 이미 각 메이커가 PE 낚싯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모든 낚시 장르에서 PE 낚싯줄은 당연한 듯 사용하게 되었다.
초고분자량폴리에틸렌(UHMPE) 합성수지의 전자 현미경 사진
1990년대 중반부터 PE 낚싯줄 양산
새로운 낚싯줄의 등장은 과거 나일론 모노필라멘트의 등장에 버금가는 낚시의 혁명을 불러왔다. 굵기에 비해 강도가 우수한 PE 낚싯줄은, 거대한 물고기를 낚는다는 꿈을 실현하기에 충분했고 심해라는 미지의 영역에 깊숙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1990년대까지의 채비를 활용하는 경우, 인간의 힘만으로 낚을 수 있는 물고기는 20kg짜리가 한계라고 말했고, 공략할 수 있는 수심의 한계는 50~60m였으며, 100m 수심에는 물고기가 없다고 오해하는 낚시인마저 있었다. 이러던 낚시계가 PE 낚싯줄의 등장을 통해 단숨에 뒤집히고 말았다. 초보자도 40~50kg의 대어를 낚는 시대가 되었으며 200~300m의 깊은 수심에서도 지깅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 외에도 낚시도구의 진화가 가속화되었다. 낚싯대, 릴, 낚싯바늘, 각종 액세서리가 고성능화되었다. PE 낚싯줄은 인장강도가 강하고 신축성이 거의 없어 물고기에서 받는 충격이 완충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낚시도구에 전달된다. 당시의 낚싯대는 다 부러져 버렸고 릴도 순식간에 망가뜨렸다. 결과적으로 PE 낚싯줄의 강도를 버틸 수 있는 튼튼하고 가벼운 낚싯대가 등장했고 합성수지 몸체를 사용하던 릴은 견고한 금속제품의 고가 모델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낚싯대와 릴이 튼튼해지는 데에 맞춰 낚싯바늘은 물론, 스플릿링, 스냅 등 연결용 액세서리까지도 고강도 제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더불어, 낚싯줄을 연결하는 매듭 방법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PE 낚싯줄은 신축성이 거의 없어서 기존의 매듭법으로는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미끄러져 풀어지기 일쑤, 이에 새로운 방법이 속속 등장했다. 기존의 매듭법은 영국과 미국에서 고안된 방법이 주류였지만, PE 낚싯줄을 대중화시킨 일본에서 마찰계 연결법인 FG노트, PR노트 등이 차례로 고안되었다.
PE 낚싯줄의 등장으로 인한 급속한 변화
PE 낚싯줄은 기존의 나일론이나 플로로카본 낚싯줄과는 아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간단하게 특징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합사(合絲)라는 점
아주 가는 원사를 다발로 모아 한 줄로 만들고 이런 다발을 다시 d여러 가닥 모아 꼬아서 완성한다. 상품화되어있는 것은 4합사, 8합사가 대부분이고 12합사도 만들고 있다.
▶ 강력한 인장강도
같은 굵기의 나일론 낚싯줄과 비교한다면 강도가 5배 정도 강하다. 더욱이 물을 흡수하지 않으므로 물속에 오래 있어도 강도 저하의 걱정이 없다. 자외선의 영향도 적어 노화의 우려도 적어서 낚싯줄 수명이 다른 낚싯줄에 비하면 약 3배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매우 약한 마찰강도
마찰에 대한 강도가 아주 약하다. 거친 표면에 닿으면 쉽게 상처가 나고 순식간에 끊어질 수 있다. 가는 섬유를 모아서 만든 합사의 구조상, 작은 상처로 인해 섬유가 절단
되면 그곳에 힘이 집중되어 끊어진다. 따라서 사용 중에는 항상 낚싯줄 표면을 세밀히 살피고 보풀이 생겼다면사용을 중지해야 한다.
▶ 매우 적은 신축성
합사 구조이다 보니 신축성이 거의 없다. 덕분에 깊은 수심에서 낚시하더라도 팽팽함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아주 세밀한 감촉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이다.
▶ 가벼운 비중
비중이 0.98로 물보다 가벼워서 물에 뜬다. 가벼운 만큼 공기 중에서 바람에 날리기 쉬워 사용에 익숙하지 않다면 번거로울 수 있다. 표면가공을 하거나 합연할 때 무거운 소재를 혼방하는 방법으로 비중을 늘려 무겁게 만든 제품도 있다.
▶ 비싼 가격
다른 소재의 낚싯줄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고급제품 600m라면 웬만한 릴보다도 가격이 높을 수 있다. 굵을수록 당연히 비싸고 2호를 기준으로 하여 반대로 가늘어질수록 또 비싸진다. 또한, 같은 굵기라도 4합사보다 8합사, 그보다 12합사가 더 비싸다.
▶ 매듭
신축성이 없어서 표면이 매끄러운 관계로 기존의 매듭 방법으로는 연결하기 어렵다. 매듭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힘이 집중되는 매듭 부위의 강도가 현저하게 낮아져 잘 끊어진다. PE 낚싯줄의 연결할 때에는 특수한 마찰계 연결법을 사용해야 한다.
일본제품과 미국제품으로 양분
현재, PE 낚싯줄은 일본제품과 미국제품으로 나눌 수 있다. 일본의 토요보(東洋紡, Toyobo)는 생산방법을 바꾼 2017년부터 다이니마 대신 ‘이자나스(IZANAS
Ⓡ)’라는 이름으로 상표명을 개명하여 생산하고 있다.
한편, 다이니마가 처음 등장했던 1990년대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하니웰(Honeywell)’이란 회사가 다른 제법을 통해 UHMWPE를 합성하고 ‘스펙트라(SpectraⓇ)’라는 상표명으로 섬유제품을 생산했다.
PE 낚싯줄을 구매했더니 포장지에 ‘다이니마’ 혹은, ‘이자니스’라는 표시가 있다면 일본제 원사를, ‘스펙트라’라는 표시가 있다면 미국제 원사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PE 낚싯줄이 대중화되기 이전, 특수한 목적으로만 사용되던 요츠아미(YGK)의 ‘이소헌터(磯ハンター)’ 낚싯줄.
GT낚시 전문가 스즈키후미오(鈴木 文雄) 씨(위)와 심해지깅 전문가 모기요이치(茂木 陽一) 씨(아래)가 PE 낚싯줄 대중화의 선구자이다.
PE 낚싯줄을 만드는 원사의 양대산맥, 일본의 이자나스(IZANASⓇ)와 미국의 스펙트라(SpectraⓇ).
일본제 PE 낚싯줄에는 이자나스(IZANASⓇ) 표시가 보이고(위),
미국제 PE 낚싯줄에는 스펙트라(SpectraⓇ) 표시가 보인다(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