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조홍식의 History of Tackle]
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24회)
권총 손잡이(Pistol grip) 루어낚싯대는
왜 사라졌는가?
조홍식
편집위원, 이학박사. 「루어낚시 첫걸음」,「루어낚시 100문 1000답」 저자. 유튜브 조박사의 피생랩 진행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낚시책을 썼다. 중학교 시절 서울릴 출조를 따라나서며 루어낚시에 깊이 빠져들었다.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지깅 보급과 바다루어낚시 개척에 앞장섰다. 지금은 미지의 물고기를 찾아 세계 각국을 동분서주하고 있다.
스피닝릴을 부착하는 스피닝 로드와 베이트캐스팅릴을 부착하는 베이트캐스팅 로드는 형태가 아주 다르다. 릴을 부착하는 위치가 상하로 다른 것은 물론이고 릴을 부착하는 릴시트의 형태도 다르며 가이드의 크기나 위치도 다르다. 그런데, 세월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이 두 가지 낚싯대의 형태는 더욱 극명하게 달랐다. 스피닝 로드는 요즘과 하나도 다르지 않지만, 베이트캐스팅 로드는 손잡이 부분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요즘보다 더욱 눈에 띄게 달랐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피스톨 그립이 부착된 글라스로드와 ABU앰버서더 베이트캐스팅릴(위),
납작한 로프로필 베이트캐스팅릴을 장치한 최신 배스낚싯대.
기본 길이가 길어져 투핸드 그립이 보통이다(가운데).
1980년대의 피스톨 그립이 부착된 배스낚싯대와 베이트캐스팅릴(아래).
권총 손잡이는 1980년대 이전의 형태
1980년대의 루어낚시대 중 베이트캐스팅 로드는 손잡이가 마치 권총 손잡이처럼 생겼었다. 그래서 부르기를 건 그립, 피스톨 그립, 권총 손잡이대 등으로 불렀다. 정식 명칭은 아마 ‘건 그립(Gun grip)’이 맞을 것이지만 피스톨 그립이나 권총 손잡이라고도 불렀다. 특히 배스낚시용 낚싯대라면 누가 봐도 권총처럼 생긴 모습에 신기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1980년대부터 배스낚시를 한 앵글러라면 당연히 이런 형태의 낚싯대를 사용했을 것이고, 당시 미국의 Fenwick이나 Shakespeare, 스웨덴의 ABU 낚싯대는 물론 이거니와 일본제 낚싯대도, 또한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국산 배스낚싯대도 다 이런 형태였다.
시장으로 흘러나온 보세품, 은성사의 권총 손잡이가 달린 배스낚싯대를 나도 사용했었다. 그때의 외국 낚시잡지 광고에 실린 낚싯대의 모습은 베이트캐스팅 로드라면 100%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당시 미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프로 낚시인인 ‘빌 댄스(Bill Dance)’나 ‘릭 클런(Rick Clunn)’의 사진만 봐도 손에 들고 있는 낚싯대는 다 피스톨 그립(건 그립)이었다.
그러나 이제 건 그립 로드는 빈티지 낚싯대나 오래된 중고품이 아니라면 만나보기도 어렵고 사용하는 사람도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라면 찾아보기도 힘들다. 보세품 외에 건 그립의 낚싯대가 우리국산 내수품에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배스낚시가 1990년대 이후에 보급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배스가 우리나라 내수면에서 공식적으로 낚인 것이 1980년대 중후반이고 널리 퍼진 것은 더 시간이 흐른 이후라 그때는 이미 이런 권총 손잡이 모양이 낚시 시장에서 사라져 버린 이후였다.
1980년대 중반, 외국 낚시잡지의 배스낚시대 광고.
ABU Garcia, Shakespeare, Aby, UFM, SMITH, Daiwa.
모두 피스톨 그립이 달려있고 길이는 5.6피트가 표준이었다.
1980년대 원형인 베이트릴 때문에 건 그립 로드 유행
그러면 왜 릴 시트와 그립이 이런 형태였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릴의 형태 때문이었다. 베이트캐스팅릴의 형태가 원형이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당시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베이트캐스팅릴이라면 스웨덴 ABU의 앰버서더5000 시리즈인데, 직경이 거의 65mm에 달할 정도로 큰 릴이었다. 요즘 사용하는 베이트캐스팅릴과 비교하면 2배쯤 크게 느껴질 정도의 크기였다.
이 릴을 스피닝 로드처럼 직선 형태의 릴 시트에 고정하면 손이 큰서양 사람이라도 쥐고 사용하기 불편했다. 여기에서 릴 시트가 ‘ㄷ’자로 파인 릴 시트를 사용하면 릴의 위치가 낮아져서 사용하기 편리해졌고, 손에서 미끄러져 빠지지 않도록 손가락을 걸 트리거(방아쇠 모양)까지 설치하였다. 그 결과 낚싯대가 일직선이 아닌 오프셋(offset) 화 되어 마치 권총처럼 보였다.
원래 이런 그립 형태는 편리하게 사용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였다. 그런데, 이런 형태, 권총 손잡이 모양의 건 그립 릴시트와 손잡이 구조는 1990년대에 들어선 어느 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1990년대 들어 사라진 건 그립 로드들
피스톨 그립이 사라진 원인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로프로필(low profile)형태의 베이트캐스팅릴의 개발이었다.
요즘 대세인 납작한 형태의 베이트캐스팅릴이 개발되고 유행하면서 ㄷ자로 파진 릴 시트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스피닝 로드와 마찬가지로 일자 형태의 릴 시트에 튀어나온 트리거만 있으면 릴을 부착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이 소형의 납작한 베이트캐스팅릴을 피스톨 그립에 설치하면 릴의 클러치를 누르지 못해 아예 사용할 수 없으니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낚싯대의 표준 길이가 길어진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
1980년대 배스낚싯대의 표준 길이는 5.6피트 전후로 요즘에 비하면 짧은 낚싯대였다. 피스톨 그립 형태의 낚싯대는 근본적으로 원핸드 캐스팅 스타일이었다. 캐스팅할 때 쥐고 있는 한 손으로만 캐스팅하게 만들어져 딱 권총 그립 그 모양으로 충분했다. 원핸드 캐스팅이 쾌적한 길이는 5.6피트, 길어야 6피트였고 그 이상의 길이라면 뒤쪽 그립이 삐딱하게 연장된 투핸드 그립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배스낚싯대는 7피트 이상의 긴 낚싯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길이가 긴만큼 원핸드 캐스팅 그립이 아니라 리어 그립이 긴 투핸드 캐스팅 형태의 그립이 부착된 낚싯대가 주류가 되었다. 또한, 낚싯대를 만드는 부품이 발달하면서 길지만 가벼운 낚싯대가 속속 등장했고 블랭크가 릴 시트를 관통해 낚싯대 맨 끝, 버트캡까지 달하는 블랭크 스루(blank through) 구조의 베이트캐스팅 로드도 등장하였다. 결국, 피스톨 그립 형태는 베이트캐스팅 로드에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 마니아 사이에선 여전히 사용 중
오늘날, 피스톨 그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외국, 특히 일본에서는 일부 배스낚시 동호인이나 계류낚시 동호인 사이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빈티지 태클, 또는 과거의 낚시도구를 모방하고 있는 릴이나 낚싯대, 루어를 사용하는 마니아층이 의외로 많은지 전문생산업체도 여럿 있다.
이런 분위기는 조과 우선이 아니라 낚는 재미, 사용하는 재미를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들에 호응하듯 피스톨 그립 생산업체, 글라스로드 생산업체도 있고 낚싯대 부품업체인 후지공업에서는 1970년대에 발매했던 피스톨 그립을 최근에 재생산해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에는 빈티지 로드, 릴, 루어를 사용해 즐기는 마니아층이
상당히 두터워 생산업체도 상당수 있다.
낚싯대 부품업체인 후지공업에서 최근에 재생산한 피스톨 그립.
당시 최고의 배스프로, 미국의 ‘빌 댄스(Bill Dance)’가 일본 낚시광고에
등장했었다. 들고 있는 낚싯대 역시 권총 손잡이 형태.
1980년대 말, 일본에 수입된 미국 Fenwick 낚싯대 광고.
낚싯대 제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블랭크 스루(blank through, 블랭크 관통식)’
형태의 베이트캐스팅 로드도 개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