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규 씨가 연타로 들어온 입질을 받아내고 있다.
“뱃길 10분 거리 갯바위에서 이런 씨알들이 퍽퍽 물어 댑니다!”
그렉스 필드스탭 장정규 프로가 미조 본섬 갯바위에서 올린 벵에돔을 보여주고 있다.
취재일 낚아낸 벵에돔들. 잘아야 25cm였고 30cm 내외급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1월 중순, 한창 감성돔낚시가 호황을 보이던 시기에 들려온 미조 벵에돔 호황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조 남항에서 뱃길 10분 거리 본섬 갯바위에서 30cm 내외급을 하루 50마리 이상 낚고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지금은 남해안 근해 벵에돔이 서서히 입을 다물 겨울의 문턱이 아닌가? 수온이 높은 여름보다 11월 말에 더 굵고 마릿수가 뛰어나다는 말은 가히 충격이었다.
삼천포에 사는 그렉스 필드스탭 장정규 씨가 제보자로, 그는 1년 내내 찌낚시만 즐기는 전문가이며 이 지역 조황을 꿰차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전해온 소식이라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어 보였지만 솔직히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100%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에 지난 11월 23일 삼천포로 내려가 장정규 씨 일행과 합류한 뒤 다음날 미조 갯바위로 향했다.
채비 착수와 동시에 찌가 사라져
취재일 배를 탄 곳은 미조 남항. 우리가 내린 곳은 항구에서 고작 뱃길 10분 거리의 갯바위였다. 정확히는 방파제를 나오자마자 3분 안에 도착한 ‘구 초소자리’였는데 보통은 낚싯배가 가장 먼저 닿는 1번자리와 같은 곳이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 가까운 갯바위에서 큰 벵에돔이 낚이느냐?”고 묻자 장정규 씨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내리는 낚시인이 모두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벵에돔 포인트라고 하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배를 타고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죠. 예전 같으면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현재 미조권 본섬과 부속섬 모두에 굵은 벵에돔이 좌악 퍼져 있습니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밑밥을 몇 주걱 던져 넣은 뒤 곧바로 낚시에 돌입했다. 채비는 제로찌에 찌매듭을 묶지 않은 전유동. 목줄에 G5봉돌 하나를 바늘 위 50cm 지점에 물렸다. 미끼는 크릴. 잡어가 있을 것에 대비해 경단과 민물새우도 함께 준비했다.
포인트에 대한 첫 인상은 솔직히 썩 좋지 못했다. 늘 봐왔던 미조 근해 갯바위였고 약간 맑은 물색에 수심은 만조 시 6~7m 되어 보이는, 생각보다 고기 낚기가 쉽지 않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밑밥이 몇 주걱 들어간 후 채비가 착수하자 곧바로 제로찌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잡어인가?’ 싶어 살짝 챔질하자 우우우욱 소리를 내며 낚싯대가 허리까지 꺾어졌다. 그제야 벵에돔임을 실감하고 제압해 수면에 띄우자 30cm 정도 되는 벵에돔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뽕을 했으나 벵에돔이 발 앞 갯바위까지 올라왔다 부딛친 후 다시 바다로 떨어졌다. 1.2호 5m 릴대로 들어뽕하기에는 약간 무리였던 씨알이었다. 손아귀에 꽉 차는 벵에돔은 정확히 30.5cm. 이렇게 가까운 근해에서 이런 씨알이 낚인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다시 미끼를 꿰어 던지자 이번에는 밑밥을 줄 새도 없이 찌가 스멀스멀 가라앉았다. 수면까지 떠오른 벵에돔이 상층에서 미끼를 먹고 옆으로 도주할 때 나타나는 입질이었다. 가볍게 대를 세우자 드랙이 약간 풀리며 원줄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32cm 정도 되는 씨알! 마음속으로 나는 ‘도대체 겨울 초입에, 그것도 배 타고 10분 거리 남해도 본섬 포인트에서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오전 7시부터 10시 무렵까지 우리가 올린 벵에돔은 60여 마리. 25cm 이하급은 낚는 즉시 방류하자 살림통에 30마리가 넘는 굵은 벵에돔이 헤엄치고 있었다.
근해 갯바위에서 초겨울에 30cm급 벵에돔이 낚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대마도나 남녀군도 같은 곳만 다녔던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씨알이겠지만 남해안 근해 포인트에서 30cm 벵에돔은 정말 귀한 씨알이다. 벵에돔낚시 천국이라는 제주도에서도 대낮에 30cm급 벵에돔이 낚이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마릿수 조과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12시경까지 설렁설렁 낚시하던 우리는 낚은 벵에돔 중 가장 큰 5마리를 골라 갯바위에서 즉석 회를 만들어 먹었다. 남해안 벵에돔이라 제주 벵에돔과는 맛이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먹던 벵에돔 회맛 그대로 쫄깃하고 고소한 식감이 입 안에서 진동했다. 회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선 이런 귀한 횟감을 손쉽게 낚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히나 더 기뻤다.
남해 근해 겨울 벵에돔 시즌 개막의 신호탄?
이번 미조 근해 초겨울 벵에돔 호황은 많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남해권 벵에돔이라고 하면 주로 초여름에 시즌이 열려 가을이 되면 막을 내리는 것이 상례였다. 물론 가을에도 낚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름보다 씨알이 월등히 크거나 마릿수가 좋아지진 않는다. 게다가 늦가을이 되면 낚시인들의 관심이 으레 감성돔에 집중되다보니 벵에돔은 더 이상 흥행의 대상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초겨울에 미조 갯바위에서 낚이고 있는 벵에돔은 씨알과 마릿수 재미가 그 어느 때보다 탁월하다. 10마리를 낚으면 30cm 넘는 씨알이 2~3마리 섞일 정도로 씨알이 굵고 나머지도 평소처럼 잘지 않은 25~29cm급이 주류다.
보통 낚시인들은 벵에돔 씨알을 말할 때 약간씩 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말로는 30cm라고 하지만 막상 재보면 25~28cm가 대부분이고 25cm라는 놈들도 실제로는 20cm 초반인 경우가 흔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2월 초 현재 미조 갯바위에서 낚이고 있는 27~30cm급은 분명 눈길을 끌만하고, 이 씨알들이 완전히 정착한다면 감성돔 못지않은 인기 대상어로 자리 잡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미조 근해 벵에돔은 과연 언제까지 시즌이 이어질 것인가? 그렉스 필드스탭 장정규 씨는 “올해는 12월 초순 현재까지도 수온이 여전히 높다. 이 정도 활성도라면 1월 초까지도 왕성한 입질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12월 10일 현재 미조 앞바다 수온은 12.5도를 보이고 있다) 취재를 마친 촬영팀은 12월 중순에 또 한 번 미조 갯바위를 찾아 상황 변화의 추이를 살필 예정이다.
취재 협조 미조 남항 풍성호 010-8543-6227
취재에 동행한 곽명진 씨가 손아귀에 꽉 차는 30cm급 벵에돔을 자랑하고 있다.
장정규 씨가 뜰채를 대지 않고 벵에돔을 들어뽕 하는 장면.
곽명진 씨가 사용한 밑밥과 미끼. 취재일에는 잡어 성화가 거의 없어 크릴만으로 낚시가 가능했다.
수면까지 떠오른 벵에돔이 만들어낸 파문.
미조 남항에서 벵에돔낚시를 출조하는 풍성호.
갯바위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먹은 벵에돔 회.
미조 남항 주차장 부근에 있는 풍성호 사무실.
취재에 동행한 장정규(왼쪽) 씨와 곽명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