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25회)
영국 하디(Hardy)의 흥망성쇠
조홍식 편집위원, 이학박사. 「루어낚시 첫걸음」, 「루어낚시 100문 1000답」 저자. 유튜브 조박사의 피생랩 진행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낚시책을 썼다. 중학교 시절 서울릴 출조를 따라나서며 루어낚시에 깊이 빠져들었다.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지깅 보급과 바다루어낚시 개척에 앞장섰다. 지금은 미지의 물고기를 찾아 세계 각국을 동분서주하고 있다.
플라이피싱 태클 전문 브랜드 중에서 전통 있는 브랜드라고 하면 영국의 ‘하디(Hardy)’를 손꼽을 수 있다. 이 의견에 반대할 앵글러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하디가 처음 창업했을 당시에는 플라이피싱 태클 전문이 아니라 종합조구업체였다. 낚싯대 제조는 물론이거니와 릴 제조에서는 플라이릴, 센터핀릴, 스피닝릴, 베이트캐스팅릴, 트롤링릴 등 모든 종류를 망라했다. 특히 릴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고성능 스피닝릴을 개발하는 등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에 발매한 하디의 야심작 스피닝릴, ‘이그잘타(Exalta)’.
1872년, 영국 노섬버랜드(Northemberland)주 애닉(Alnwik)에서 ‘윌리엄 하디(William Hardy)’와 ‘존 하디(John Hardy)’ 형제에 의해 ‘하디 브라더스(Hardy Bros. Ltd. 현 Hardy의 전신)’가 탄생했다. 초창기에는 총포상으로 운영하였지만 10년 정도 지난 후에는 낚시전문업체로 변신하였다. ‘팔라코나(Palakona)’라는 이름의 낚싯대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왕실에 납품하는 최고의 낚시도구를 생산하는 업체로 성장하였다.
그때를 즈음해서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에 의해 스피닝릴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가 만든 최초의 스피닝릴은 특허등록을 통해 20년간 다른 업체가 공식적으로 스피닝릴을 제조할 수 없게 하였다.
그 특허가 소멸하고 1930년대 초에 하디는 획기적인 스피닝릴인 ‘알텍스(Altex mk1.)’를 선보이면서 현대적 스피닝릴의 형태를 결정지었다. 이 스피닝릴은 현대의 스피닝릴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을 결정지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알텍스 릴을 통해 ‘풀베일암(full bail arm)’의 특허권을 획득한 하디는 195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스피닝릴 중 최고봉의 자리에 올라있었다.
1930년대에 현대적인 스피닝릴을 만든 하디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하디의 앞날이 어두워졌다. 최고급 낚시도구를 생산하던 공장은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군수공장으로 전환되었고, 독일의 공습으로 영국이 초토화되는 지경에 이르자 낚시도구 생산이나 유통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난 이후, 피해가 덜했던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스위스의 조구업체들이 낚시도구 공장을 다시 가동한 것과 달리 피해복구에 시간이 걸린 영국의 하디는 1950년대에 들어서야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었다.
더욱이 하디가 갖고 있던 풀베일암에 대한 특허권이 1954년에 만료되면서 다른 메이커의 스피닝릴도 하디의 스피닝릴처럼 모두 풀베일암을 설치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일반 앵글러가 보기에 스피닝릴은 고급제품이나 중저가제품이나 특별히 다를 게 없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당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으로 다시금 진출을 꾀한 유럽의 낚시도구는, 이제 유럽의 귀족이나 부자들의 도락을 위한 낚시도구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사정에 적합한 생활용품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두주자는 프랑스의 미첼(Mitchell). 미국인들에게 미첼 릴은 유럽에서 온 성능 좋고 고급스러운데 가격도 괜찮은 스피닝릴이었다.
1948년부터 미국에 수출된 미첼 스피닝릴은 2001년까지 동일한 모델로 50년 넘게 수출되어 수천만 대의 판매고를 올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두를 빼앗긴 하디
시대가 바뀌고 낚시를 즐기는 환경도 바뀐 상황에서 스피닝릴 시장으로 돌아온 하디는 1960년에 최고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그잘타(Exalta)’라는 이름의 스피닝릴을 발표하였다. 하디가 노하우를 모아 제작한 야심작 스피닝릴로서 다른 브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만든 고성능, 고기능 스피닝릴로 이었다.
대형 드라이브 기어가 설치된 웜기어 시스템은 미첼의 덜덜거리는 베벨기어에 비할 수 없이 매끄럽고 조력도 강했다. 정밀한 드랙은 현대 스피닝릴과 다름이 없을 정도인 데다가 당시 스피닝릴에는 드문 핸들 좌우 교환방식이었다. 하디 이그잘타와 경쟁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의 다른 스피닝릴은 한 수 아래의 성능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요즘의 스피닝릴로 비교하자면, ‘울테그라’나 ‘스트라딕’ 경쟁 속에 갑자기 ‘스텔라’가 나타난 형상이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하디의 스피닝릴이 선두자리를 탈환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장의 선택은 하디의 기대와 달랐다. 경쟁에 밀리면서 하디는 1966년에 릴 제조중지 결정을 내렸고 회사도 다른 기업에 매각되었다. 이때부터 하디는 플라이피싱 전문 브랜드로 탈바꿈 하였다.
1960년대는 서유럽, 동유럽의 릴은 물론 미국 자국의 릴, 여기에 슬슬 일본제 릴도 가세하면서 전 세계의 모든 스피닝릴이 미국 시장에서 과열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주문생산 제품의 성격이 남아있던 수제품과 같은 영국 하디의 스피닝릴과 대량생산 제품인 프랑스 미첼의 스피닝릴은 서로 성격이 아주 다른 제품이었고, 미국 시장의 선택은 미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라진 낚시계 판도에 결국 하디는 자신을 스스로 바꾸고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현재 하디가 플라이피싱 전문업체였던 줄로만 알고 있는 앵글러가 대다수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유럽, 낚시가 귀족들의 도락이었던 시기에 하디는 각종 고성능 릴을 만들었고, 특히 스피닝릴에서는 오늘날의 스피닝릴이 있게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티지 릴 수집가들 사이에서 하디의 스피닝릴과 베이트캐스팅릴은 조용하게 인기가 높다.
‘하디브라더스(Hardy Bros. Ltd.)’는 1985년에 ‘하우스오브하디(House of Hardy)’로, 2000년대 들어서 ‘하디앤드그레이(Hardy & Grey Ltd.)’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현재는 미국의 퓨어피싱 산하의 브랜드 ‘하디(Hardy)’로 남아있다.
이그잘타(Exalta)의 내부는 웜기어 시스템으로 다른 경쟁 스피닝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조력이 강했다.
1930년대에 등장한 하디의 ‘알텍스(Altex)’. 현대 스피닝릴의 기본이 된 모델로
풀 베일 암(full bail arm)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당대 최고급 스피닝릴이었다.
20세기 초, 왕실 납품업체만이 입점할 수 있는 팔맬(Pall mall) 거리에 있던 하디의 매장 전경.
193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쳐 만들어진 하디의 ‘족 스코트(Jock Scott)’ 베이트캐스팅릴 풀세트.
1940년대 하디의 다이렉트 베이트캐스팅릴 ‘엘라렉스(Elarex)’.
발매 당시의 국왕인 ‘조지 5세’와 ‘웨일스 황태자’의 왕실 마크가 새겨져 있다.
1930년대 하디의 트롤링릴, ‘제인 그레이(Zane Grey)’ 7인치 모델.
하디의 로고, 초창기 ‘하디 브라더스’ – 1990년대 ‘하우스 오브 하디’ – 현재의 ‘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