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항, 울산, 거제도 등 일부 지역 대형 방파제가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으로 인해 낚시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는 사례가 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방파제는 전국에 총 8개로 경남 사천 화력발전소방파제, 울산 동방파제, 포항 신항만방파제, 거제 느태방파제 등이다. 이 중 포항 신항만방파제, 사천 진널방파제 등은 이미 낚시관리 및 육성법이나 항만법(일명 테트라포드 방파제 출입금지법)에 의해 출입이 금지된 곳이며, 동해의 대형 방파제는 해경이 수시로 단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낚시인들은 그동안 즐겨 찾던 낚시터를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인근 지역에서 낚시점과 식당, 낚싯배 등을 운영하던 소상공인들도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낚시인의 출입을 막은 사천 화력발전소방파제.
한해 1만명이넘는 낚시인이 드나드는 대형 방파제의 출입을 금지함으로써
낚시인뿐 아니라 주변 지역소상공인의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중처법 적용 방파제에서 사고 시 관련 지자체장 처벌
‘중처법’이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ㆍ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2017년 제20대 국회에서 정의당 故노회찬 의원이 처음으로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다가 2021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관한 볍률 개정과 함께 추진,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었다.
중처법의 본질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해당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처벌할 수 있다. 이 법은 단순히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 사고를 방지하고 예방을 위한 안전 틀을 만드는 것인데, 의도와 달리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바닷가 방파제가 낚시금지로 묶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낚시인들이 ‘중처법’이라고 하면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관련 사업주를 처벌하는 정도로 알고 있겠지만 법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매우 광범위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중처법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뿐 아니라 공중이용시설에 관한 규정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중이용시설’이란 중처법 시행령 대통령령 제33023호에서 지정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시설로서 ‘시설물의 안전 및 유기관리’에 관한 특별법(법률 제20044호)에서 명시하는 교량, 터널, 항만, 댐, 건축물 등 구조물과 그 부대시설들도 중처법의 적용을 받는다.
세부 조항을 살펴보면 ‘제7조 시설물의 종류’ 중 제1종시설물(공중의 이용편의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거나 구조상 안전 및 유지관리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대규모 시설물로)에 ‘갑문시설 및 연장 1000m 이상의 방파제’가 포함되며, 제2종시설물(제1종시설물 외에 사회기반시설 등 재난이 발생할 위험이 높거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시설물)에는 연장 500m 이상의 방파제가 명시되어 있다. 연장 500m 이상 방파제는 모두 포함되므로 1종시설물과 2종시설물 모두 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지자체장은 처벌을 받게 된다.
도지사, 시장, 군수 등이 처벌 대상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3조는 ‘①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②관리주체는 시설물의 안전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이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모든 국민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관리주체가 수행하는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활동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은 시설물이 안전하게 유지관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5년마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기본계획에는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기본목표 및 추진방향, 개발,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사항, 정보체계의 구축ㆍ운영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해야 하며 만약 이를 어기거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당 관계자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중처법에서 처벌을 받는 당사자다. 시설물의 경우 관할 특별자치시장ㆍ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 등이 관리하도록 하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방파제에서 사고가 나면 시장이나 도지사, 군수 등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시설물에서 사고가 발생, 관련자의 책임이 중대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업무상과실이 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뿐 아니라 다양한 조항에 벌칙을 정하고 있어서 해당 시설물이 있는 관할 지역 공무원들이 골머리를 앓는 상황이다.
방파제 주변 낚시점, 식당, 낚싯배 등 소상공인 피해 심각
중처법이 시설물을 관리하는 관계자들을 옥죄임에 따라 각 지자체가 선택한 안전사고 예방책은 출입금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로 낚시인의 출입이 금지된 방파제가 급속히 늘었다. 포항 신항만방파제, 울산 동방파제, 부산 오륙도일자방파제, 사천 화력발전소방파제, 거제 느태방파제 등이 대표적이며, 동해안은 곳곳에서 현장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
원래 각 시도 지자체장은 ‘낚시관리 및 육성법’에 의해 위험 요소가 있는 방파제 등의 시설물 출입을 금지할 권한이 있는데, 중처법이 추가로 시행되자 낚시인이 자주 드나들거나 사고 위험성 있는 방파제를 완전히 막아 버린 것이다. 이는 낚시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므로 관련 방파제에는 어느 누구도 출입할 수 없게 됐다.
낚시인의 반발도 거세지만 누구보다 피해를 보고 있는 대상은 해당 방파제 주변에서 영업해온 낚시점과 낚싯배들이다. 포항 신항만피싱 김흥수 대표는 “20년 전 방파제가 생긴 후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낚시점을 영업해왔는데, 엉뚱한 법률 하나가 생계를 위협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지역 경제까지 침체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포항 신항만방파제처럼 하나의 거대한 상권이 형성된 곳이라면, 안전사고에 대한 관리와 책임을 해당 지역 낚시점 대표나 낚싯배 운영자에게 넘기는 식으로 법규를 수정 또는 처벌이나 관리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와 전화 인터뷰한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중처법이 시행된 지 이미 2년이 지났고 오송 참사나 다른 산업재해로 인해 관련자가 처벌 받은 사례가 있다. 관련법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헌법소원 등의 절차를 거치거나 새로운 입법을 추진해야 하는데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처법 시설물 관련법 중 방파제 500m의 기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방파제 외에도 다른 많은 시설물 역시 중처법의 처벌 대상이 되느냐에 대한 논란이 많다. 중처법 시행 이후 많은 언론에서 부작용을 논하고 있지만 아직 뚜렸한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으므로 당분간 낚시인 여러분은 관련법을 준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출입금지 사항 등을 위반할 경우 낚시관리 및 육성법이나 항만법 또는 해당 지자체 법률에 따라 벌금이나 과태로 처분을 받을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중처법으로 인해 낚시금지 조치가 내려진 방파제는 전국에 8개소 정도다. 그 외에도 이미 낚시관리 및 육성법이나 항만법(일명 테트라포드 방파제 출입금지법)으로 출입이 금지된 곳도 있다.
낚시인은 울며 겨자먹기로 낚시를 안 가면 되지만 더욱 큰 문제는 현지에 장기간 터를 잡고 살아온 낚시점, 식당 등을 운영해 온 소상공인들이다. 해당 지역 소상공인들은 “정부는 방파제 낚시금지에 따른 피해 실태를 하루 빨리 조사해 피혜 당사자들과의 보상 협의 등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겨울 시즌 학꽁치를 낚기 위해 포항 신항만방파제로 출조한 낚시인들. 현재 ‘중처법’으
로 출입이 금지되어 낚시인은 물론 인근 낚시점의 경제적 피해가 막심한 실정이다.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포항 신항만방파제. 예전부터 안전관리를 꾸준하게 해왔지
만 ‘중처법’의 처벌 수위가 높아 지자체가 사전에 낚시인의 출입을 차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