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런 브라운송어(sea run brown trout)란 이름이 생소한 낚시인들이 많을 것이다. 시 런 브라운송어는 브라운 송어(갈색송어)가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온 것을 말한다. 송어낚시 마니아들은 이 두 고기를 분명하게 구분하는데, 시 런 브라운 송어는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면 체색이 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체색과 체형이 비슷한 연어와 시 런 브라운송어를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시 런 브라운 송어의 매력은 박진감 넘치는 점프에 있다. 몸무게 15kg, 1m가 넘는 거구를 비틀며 수면 위로 점프해 먹이를 사냥하고 낚시로 걸면 그 손맛이 대단해 전 세계에 플라이낚시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다. 북유럽이 원산지지만 미국과 우리나라에도 이식되어 유해어종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예전부터 브라운송어가 자생한 지역에서는 플라이낚시 어종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나도 오지 플라이낚시인의 한 사람으로써 항상 시 런 브라운송어를 만나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가 찾아왔다.
척박해 보이는 리오그란데 강에서 플라이낚싯대를 휘두르고 있는 필자.
매일 남극의 차가운 강풍이 불어와 나무가 살지 않는 사막과 같은 지역이다.
22,303km 비행시간만 48시간…
브라운송어는 유럽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지만 아르헨티나 남쪽에도 많이 살고 있다. 내가 찾아간 리오그란데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Tiera-del-Puego) 주에 있는 지역으로 남극과 불과 250km 떨어져 있다. 이곳에는 바다에서 생활하다 산란을 위해 리오그란데 강으로 소상하는 시 런 브라운송어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해외 오지낚시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리오그란데는 2018년 러시아 캄차카반도 낚시 여행 때 미국 친구들로부터 소개를 받은 곳이었다.
지난 2월 22일, 김포 국제공항을 출발해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 다시 도쿄 나리타 공항으로 이동해 미국 댈러스 공항까지 비행하니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아침에 댈러스 공항을 출발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호르휴배리 공항에 도착하니 또 하루가 지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다음 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시내에서 하루 머물렀다.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1시간 30분 동안 본 시내 모습은 1990년대 성장기에서 딱 멈춘 느낌이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쳤고 차량은 대부분 1990년대 생산한 것이었다. 건물은 오랜 흔적이 역력했다. 한때 세계 4위 부호국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였다. 호텔에서 7시간 머물다 다시 리오그란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호르휴배리 공항 국내선으로 향했다.
소형 태풍급 강풍에 아찔
국내선에 도착해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비행기 연착 방송이 흘러나왔다. 국내선인데도 2254km나 떨어져 있어 비행시간이 3시간 30분 걸린다고 했는데, 연착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게 늦은 출발로 인해 새벽 4시30분에 리오그란데 공항에 도착하니 낚시 가이드 고마(Mr.Goma) 씨가 초면임에도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었다.
공항에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이상한(?) 동물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남극여우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차량이 오면 숨고 노란램프를 달고 있는 택시를 보면 차문 옆에 앉아 운전사를 쳐다봤다. 그러면 운전사는 내려서 남극여우에게 먹이를 주었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어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안쓰러워 보였다.
고마 씨의 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 수속을 끝내고 잠시 눈을 붙였다. 오후 1시에 다시 만나 일정과 계획을 들었다. 내가 묵은 호텔은 플라이낚시인을 전문적으로 응대하는 곳이라 전 세계 플라이낚시인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였고 바지장화, 낚싯대, 웨이딩 재킷, 계류화 등을 따로 보관할 수 있는 방이 있을 정도로 플라이낚시에 최적화한 곳이었다.
1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후 도착한 일본 하네다 공항. 이곳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이동해 미국 댈러스행 비행기를 탄다.
2 미국 댈러스 공항. 이곳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아이레스행 비행기를 탄다.
3 리오그란데에서 필자가 머문 버드나무 호텔. 전세계 플라이낚시인들이 방문해 곳곳에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4 호텔 조식
고마 씨의 설명을 들은 후 리오그란데 날씨를 보니 강풍 예보에 걱정이 앞섰다. 남극과 가까워 항상 강풍이 부는데 호텔이 있는 곳은 평균 시속 40km며 강으로 나가면 평균 시속이 70km라고 했다. 보통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소형 태풍의 풍속이 시속 60~90km(초속 17~25m)인데 강으로 나가면 항상 소형 태풍급 바람이 분다는 의미였다.
160km 강줄기에서도 32개의 소(pool)가 송어 포인트
다음날 아침, 시 런 브라운송어를 만나기 위해 드디어 리오그란데강에 도착했다. 리오그란데강은 상류에서 하류 남극해 입구까지 160km를 흘려내려 간다. 그런데 우리가 낚시한 곳은 마리아 베헤티(Maria Behety)라고 하는 개인 농장 사유지를 관통하기 때문에 농장주의 사전 허락이 필요하여 개인 낚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고마 씨에게 리오그란데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바다에서 소상하는 송어는 최하류에 있는 소(pool, 강에서도 깊은 웅덩이)에서부터 최상류까지 이어지는 총 32개 소에 머문다고 했다. 32개의 소는 구간별로 나누어 3개 낚시 가이드 회사가 운영, 관리한다고 했다. 나는 중간 지점인 8번부터 13번 소까지 운영하는 고마 씨와 6일간 낚시를 하기로 했다.
낚시터에 도착하니 강 수면에 백파가 일렁일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물에 뜨는 드라이 플라이를 사용해 캐스팅 또 캐스팅. 강풍으로 인해 서 있기 힘들었지만 고마 씨는 계속 던지라고 재촉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번갈아 가면서 투핸드 플라이낚싯대를 휘둘렀다.
흐르는 물과 강풍 속에서 라인 텐션을 유지하면 ‘툭툭’거리다 ‘쭉’ 끌고 가는 강한 입질이 들어왔다. 그러면 낚싯대가 휘어지고 송어가 점프하며 힘찬 파이팅이 시작된다. 첫날에만 20~25마리를 낚았지만 내가 원하는 미터급은 만날 수 없었다.
70cm 송어를 하루 20~30마리씩 히트
이튿날에는 다른 소에서 낚시했다. 어제는 시 런 브라운송어가 낚였는데 이번에는 브라운송어가 많이 낚였다. 각 소마다 어종이 달랐기에 하루 이틀 낚시해서는 모든 소를 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낚시할 곳이 많았다.
셋째 날에는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낚시했다. 이곳은 남극점과 불과 250km 떨어진 곳이라고 했는데, 강풍으로 인해 나무가 살 수 없는 지역이라고 했다. 낮은 구릉 지역의 정상에 풍화 작용으로 깎인 사암(沙巖)들이 마치 성처럼 보였다.
나는 리오그란데로 출발하기 전 나름대로 많은 자료를 확인하고 현지 가이드와 연락도 자주해서 가장 피크 시즌에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낚시인지 내가 출조한 날에 갑작스런 남극의 한랭전선이 형성되어 강풍과 저온으로 송어들이 높은 활성을 보이지 않았다. 송어의 활성이 좋으면 얕은 곳으로 나와 점프를 하면서 먹이 사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일주일 내내 점프하는 송어를 볼 수 없었다. 물론 하루에 보통 20~30마리를 낚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 70cm급이며 몸무게 15kg이 넘는 미터급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마지막 날에는 아침 출조를 끝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운이 따랐는지 마지막에 75cm 시 런 브라운 송어를 만났고 그후 새벽 1시에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택시를 기다리는 남극여우를 만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후에는 폭염에 시달렸다. 리오그란데에서는 1~3도로 추웠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낮 기온은 40도에 육박해 같은 나라가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록 계획했던 빅 원을 못했지만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리오그란데를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들께도 한번은 들러볼 낚시 여행지로 추천하며 평생 간직할 추억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리오그란데 강과 평원.
브라운송어를 낚은 필자.
작은 송어를 낚았다.
리오그란데 강 전도(아래). 32개의 소를 3개의 낚시 가이드 회사가 관리, 운영하고 있다.
출조 셋째 날에 방문한 리오그란데 강. 모래 바위가 바람에 깎여 마치 성처럼 보인다.
2 리오그란데 강에서 낚이는 송어와 연어 도감.
3 출조 마지막 날에 75cm 시 런 브라운 송어를 낚은 필자.
4 방목하는 양떼.
5 낚시하며 종종 만나는 야생 와나코(라마).
1 리오그란데 공항에서 만난 남극여우. 택시 기사가 주는 먹이를 얻어 먹는다. 8
2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3 필자 모자에 꽂은 플라이.
4 리오그란데를 알리는 입간판.
브라운 송어를 낚은 후 토티 가이드와 함께 기념 촬영했다.
1982년 포크랜드 전쟁 기념공원에서 미스터 고마 씨와.
송어 동상 앞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마트에서 본 과일 코너. 신기하게도 과일에서 향기가 나지 않았다.
귀국하기 전에 식당에서 먹은 스테이크.
리오그란데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송어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