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아마존 피라루쿠 보고서
물고기와 사람, 그 경계에서
엄일석 세계낚시탐험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정치학 박사과정
필자 엄일석 씨는 세계낚시탐험가이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오지낚시여행 전문가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조행기는 지난 1월에 다녀온, 에콰도트, 페루 국경의 나포강에서의 피라루크낚시 조행기입니다. 국내에서 ‘피라루쿠’ 또는 ‘아라파이마’로 더 알려진 파이체는 현지에서 파이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10년 넘게 꿈꿔온 파이체를 낚아 올린 필자의 기쁨. 길이가 1m 80cm나 돼 동행했던 존이 함께 물에 뛰어들어 사진을 찍었다.
투카노인들의 삶과 함께 한 파이체
에콰도르령 안데스산맥의 자욱한 안개 속에서 발현한 나포강. 바위 비탈을 타 넘으며 몸집을 불려가다 마침내 1541년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가 이끄는 유럽인 최초의 아마존 탐사대가 닻을 내린 도시 코카에 이르러 폭 1km에 달하는 광활한 황토빛 강으로 변모한다. 이곳부터는 단 한 뼘의 공터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식생이 서로 뒤엉키고 덮치는,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시작된다.
이 지역에 투카노(Tucano)인들이 언제부터 정착했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17~18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영혼 구제’라는 명목 아래 원주민 공동체를 해체하고 ‘레둑시온(Reducción)’이라 불리는 통제된 마을로 강제 이주시켜 일상 전반을 감시했다. 20세기에는 세계적인 고무 붐으로 인해 토착민들이 고무나무 농장에서 착취당했고, 최근에는 석유, 금, 구리, 목재를 노리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투카노인의 삶과 열대우림 생태계가 또다시 교란되고 있다.
하지만 투카노인들은 식민 자본주의의 확산 앞에서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2012년에는 페루 정부로부터 2,500만 헥타르의 열대우림을 공동체 보호구역으로 지정받았고, 에콰도르 측에서도 2023년 법원의 명령을 통해 4만 헥타르의 땅이 공동체 관할로 반환되었다. 이로써 세계에서 가장 생물 다양성이 높은 지역을 그들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권한 또한 회복하게 되었다.
인류학자 진 잭슨(Jean Jackson)에 따르면, 투카노인들은 자신들을 ‘물고기 사람들’이라 부른다. 이는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조상들이 아나콘다로부터 태어나 배를 타고 아마존 강 곳곳에 정착함으로써 서로 다른 방언을 쓰는 여러 부족들이 생겨났다는 신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삶은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그들에게 강과 숲의 생명체들은 서구 합리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인격이 결여된 수동적 사물이나 기계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국내에서는 ‘피라루쿠(pirarucu)’나 ‘아라파이마(arapaima)’로 더 알려진 파이체(paiche)는 투카노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다. 성체는 3m를 넘고, 건기에는 귀중한 식량 자원이 되며, 피라냐의 이빨도 뚫지 못하는 단단한 비늘은 전통 장신구의 재료로 쓰인다. 신화에 따르면 파이체는 ‘오코메(Okóme)’라는 신령스러운 존재의 보호를 받으며, 사냥감이 부족할 때 무당이 의식을 통해 그와 상의하면 마을 주변에 파이체가 풍부해진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투카노인들이 사는 나포강 지류에는 유독 파이체가 많다. 이 상징적인 물고기는 오늘날 전 세계 수족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원산지인 아마존에서는 수백 년간의 어업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했다. 현재 야생 개체는 에콰도르 아마존 상류나 가이아나의 에세퀴보강 상류 등 일부 지역에서만 낚시로 만나볼 수 있다.
이미 1850년대, 영국의 박물학자 헨리 월터 베이츠(Henry Walter Bates)의 탐험 기록에는, 건기에 유속이 느려진 석호에 숨어든 파이체를 작살로 잡아 염장하는 상업적 어업이 활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브라질에서는 남획으로 인해 피라루쿠 낚시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며, 2022년에는 영국 언론인 돔 필립스(Dom Phillips)와 원주민 인권운동가 브루노 페레이라(Bruno Pereira)가 피라루쿠 밀렵꾼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내가 투카노 공동체를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스웨덴 출신 낚시꾼 존 덕분이었다. 칠레인 어머니를 둔 그는 스페인어에 능통했고, 몇 년 전 이곳을 홀로 탐사 낚시하다 카이만 악어에게 식량을 모두 빼앗기는 고생을 겪으며 투카노인들과 가까워졌다. 마침 어업과 농업 외의 부수입원을 찾고 있던 투카노인들은 존과 뜻이 맞아, 그가 조직한 단체를 매년 한두 차례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 역시 SNS를 통해 그의 제안을 받고 즉시 합류를 결심했으며, 마침 프랑스의 유명 낚시 프로그램 촬영 일정과 맞물려 여정에 오를 수 있었다.
1월 7일, 파이체와의 첫 대결에서 바늘 끝 부러져
자정 무렵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도착한 나는 시내 호텔에서 일행과 합류한 뒤, 대절한 중형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밤새 안데스 산맥의 가파른 비탈을 달려 내려갔고, 아침이 밝아올 무렵 나포강변의 도시 코카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는 겉옷이 필요할 만큼 쌀쌀했지만, 코카에서는 어느새 열대우림 특유의 후덥지근함이 엄습했다.
나포강변에서 현지 조력자 호르헤를 만나자마자, 그의 20인승 보트에 일행 10명의 짐가방, 맥주와 생수 박스, 육류와 과일을 포함한 식량, 냉장고, 비상 구급함, 2인승 접이식 카누까지 실었다. 시기상으로는 우기에 해당해 수위가 높아 항해가 쉬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물에 잠긴 나무들과 소용돌이로 가득해 항해가 매우 어려웠다.
갑작스레 나타난 모래 둔덕에 배가 막혀 일행 모두가 허리까지 물에 잠긴 채 배를 밀어야 했고, 잠시 용변을 보려 강가에 내렸을 때는 깨알만 한 모기떼가 자욱한 연기처럼 몰려와 아수라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호르헤와 존은 익숙한 듯 웃통을 벗고 선수에 드러누운 채 병맥주를 마셨고, 나도 체력을 아끼기 위해 억지로 선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9시쯤, 배는 국경 검문소에 들러 군인에게 인적사항을 제출했다. 이 지점부터 강은 좁아지고 급선회하면서, 어느 순간 검고 투명한 물이 나포강의 황토빛 물과 만나 띠를 이루는 협류에 다다랐다. 숲은 더욱 울창해졌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강돌고래가 내쉬는 “푸푸” 소리가 배 주변에서 들려왔고, 초록빛 앵무새와 잿빛 독수리가 이따금씩 배를 스칠 듯 가까이 날아갔다. 존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곳이 투카노인들의 영토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통발에 들어온 카이만 악어 새끼를 들어 보이는 휴고. 다 자라면 4m에 이른다고 한다.
파이체가 머무는 석호. 투카노인들만이 찾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피라냐가 사는 뱃터에서 소년용 작은 카누를 타고 노는 7세 리델과 8세 딜런. 투카노인의 삶은 뱃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로 같은 수로. 배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에서는 사진처럼 배를 들어 옮겨야 했다.
우리를 위해 식용 열매 ‘까무까무’를 따는 마을 장로 세군도. ‘세군도(segundo)’는 스페인어로 ‘둘째’라는 뜻이다.
파이체의 강력한 입질 한 번에 부러져 버린 바늘.
이물감을 느끼자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강하게 저항하는 파이체.
그 힘이 워낙 세 작년에 고기의 머리에 맞아 앞니가 부러진 사람이 둘, 팔이 부러진 사람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오후 1시쯤 도착한 베이스캠프는 우기에도 침수되지 않는 언덕 지대를 골라 숲을 개간해 만든 공터 위에 자리 잡은 두 동의 오두막이었다. 하나는 식탁과 주방기구들을 갖춰 부엌 겸 응접실로 사용했고, 다른 하나에는 인원수만큼의 1인용 텐트를 설치해 막사로 꾸몄다. 짐을 푸는 사이, 현지 가이드이자 뱃사공인 윌프레드의 아들 리델과 딜런이 다가와 내 장갑과 버프에 눈독을 들였다. 나는 7일간의 낚시가 끝나면 선물로 주는 조건으로, 내 장비 일체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혹시 바늘을 만지다 다칠까 봐서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7~8살인 이들은 이미 피라냐 낚시의 고수였다.
점심으로 삶은 면과 토마토 케첩으로 급조한 스파게티를 먹으며 낚시 계획을 세웠다. 존은 수위가 평년보다 높아 루어낚시가 어렵겠다며, 며칠간 수위가 내려가기를 기다리면서 미끼낚시로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나, 존, 그리고 그가 스웨덴에서 데려온 토비아스가 첫 조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는 캠프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강이 넓어지며 유속이 느려지는 구간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바다낚시용 9/0호 초강력 바늘에 손바닥만 한 시클리드 생선을 꿰고, 3온스 봉돌을 유동식으로 달았다. 부시리용 파핑대를 이용해 유속이 멈춘 기슭에 미끼를 던져놓고 기다렸다.
약 5분 뒤, 수면 위로 파이체가 숨을 쉬며 기척을 냈고, 이윽고 내 줄이 조금씩 풀려나가면서 드랙이 띠리링 울렸다. 서서히 드랙을 조이자 녀석은 금세 이물감을 느끼고 세차게 달아났다. 바늘이 잘 박혔다고 생각하며 챔질을 하려는데 줄이 좌우로 출렁이더니 이내 휑해졌다. 녀석이 몸을 한 번 비트는 순간 바늘이 빠져버린 것이다. 출렁이는 힘으로 미루어 볼 때 어마어마하게 큰 녀석이었다. 채비를 회수해보니 바늘 끝이 부러져 있었다. 자신이 추천한 제품이 그렇게 힘없이 부러지자 존도 당황하며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 후 한 시간 동안 파이체가 수면에서 숨을 쉬며 일으키는 파장을 스무 번도 넘게 목격했지만, 입질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아쉽진 않았다. 그곳에는 분명 고기가 많았고, 미끼낚시가 처음인 내게는 어차피 실수를 통해 배울 기회가 필요했다. 존은 파이체의 입 안이 전부 단단한 뼈로 되어 있고, 혀조차도 먹이를 으깨기 위한 강판처럼 생겨 챔질에 실패하기 쉬운 물고기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해가 저물고 캠프로 돌아오니, 윌프레드를 따라 상류로 간 프랑스팀의 최고령자 장클로드가 2m에 가까운 준수한 크기의 녀석을 낚았다고 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낚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일행과 금세 친해졌다.
1월 8일, 거구의 성인보다 더 큰 파이체
새벽 5시에 일어나 식빵 두어 점을 우겨넣고, 현지 마을의 장로 세군도의 배에 프랑스팀의 막내 멀린과 함께 올랐다.
한 시간쯤 상류로 올라간 후, 세군도가 정글도로 숲을 열어 젖히자 간신히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법한 수로가 나타났다. 그 사이를 2인승 접이식 카누로 비집고 들어갔다. 정글도로 길을 내며 한 시간쯤 나아가니 아늑한 석호가 눈 앞에 펼쳐졌다.
나는 멀린과 함께 석호 이곳저곳을 누비며 온갖 루어를 던져봤지만, 입질은커녕 수면 위로 파이체 특유의 숨결조차 보이지 않았다. 존이 있는 방향으로 카누를 저어가 고기가 없다고 하자, 그는 수위가 너무 높아 고기들이 수몰된 수풀 속에 숨어 있다고 했다. 다 자란 파이체가 거구의 성인보다도 더 큰데, 빽빽한 갈대숲 안에 들어가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때때로 먹이를 쫓는 파이체가 수풀을 헤집으며, 마치 큰 나무가 나자빠지는 듯한 소리를 냈고, 우리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는 윌프레드의 배를 타고 세바스찬과 미끼낚시를 하던 중, 그의 줄이 자꾸 풀리는 것을 본 내가 졸고 있던 그를 깨웠다. 하지만 릴을 감아도 감아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동안 고기는 유유히 우리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인데, 그가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파이체는 이물감을 느끼자 곧장 배 그림자 밑으로 파고들었고, 쇼크리더도 없이 도래에 직결된 10호 합사줄은 그 힘에 뚝 끊어졌다. 세바스찬의 한 차례 탄식이 남긴 고요함이 그날 저녁 내내 베이스캠프에 감돌았다.
직접 만든 장신구를 판매하는 투카노 여인들. 사진 아래쪽 밤톨 모양의 열매는 투카노인들이 ‘파이체의 눈(ojo de paiche)’이라 부른다.
이번 여행의 주력 채비였던 10인치 소프트 플라스틱 베이트. 피라냐 때문에 손실이 많았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미끼 낚시에 집중하는 필립과 장클로드. 이번 일정에서 미끼 낚시로 가장 많은 파이체를 낚았다.
일행이 머문 오두막 전경. 투카노인은 집터를 고를 때 우기에도 범람하지 않는 강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파이체용 대형 루어에 관심을 보이는 버터플라이 피콕배스(Cichla monoculus)를 보여주는 필자.
잘게 썬 닭고기로 반찬용 피라냐를 낚는 딜런과 리델. 낚시는 투카노인 남녀노소 모두의 일상이자 놀이다.
1월 9일, 드디어 낚아낸 1m 80cm 파이체
며칠간 조과가 저조하자 존도 초조해졌는지, 나와 토비아스를 콕 집어 첫날 고기가 많이 보였던 자리로 다시 가보자고 했다. 과연, 미끼를 던진 지 5분 만에 토비아스의 릴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나 초보인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존과 내가 시키는 대로 어설프게나마 펌핑 동작을 시도해봤지만, 그 사이 고기는 물속의 잠긴 나무 아래로 숨어들었고, 한참을 기다려 보다가 결국 줄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나 토비아스에게 또 한 번 입질이 왔지만, 이번에는 고기가 미리 계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수초 숲으로 곧장 돌진하여 몸을 파묻었다. 존이 낚싯대를 넘겨받아 당겨보다가 헛일임을 깨닫고 혀를 내둘렀다. 도저히 초보자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나는 이를 기회 삼아 파이체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며 마인드 트레이닝을 마쳤다.
정오를 알리려는 듯 드랙이 다시 쩌렁쩌렁 울렸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나는 침착하게 드랙을 서서히 조였고, 대 끝은 무겁기만 할 뿐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순순히 통나무처럼 떠오른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밤톨 같은 눈에는 흰자위가 전혀 없어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존은 고기의 힘을 완전히 빼야 바늘을 뺄 때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며 노로 수면을 내리쳤다.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파이체는 여러 번 물 위로 솟구치며 해일을 일으켰다. 존은 숨가쁘게 노질을 해 배를 수초에서 멀리 떼놓았고, 결국 녀석이 숨을 꺽 내쉬며 배를 뒤집었다. 나는 존과 함께 물에 뛰어들어 1m 80cm의 녀석을 둘러메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캠프로 돌아와 희보를 전하자 부엌을 맡은 키추아족 요리사 추리는 냉장고 한 켠에 아껴둔 얼음을 꺼내 마가리타를 만들어주었다.
1월 10일, 용오름 연상시킨 2m짜리 피아체의 괴력
이미 손맛을 본 나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이제부터는 루어낚시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직 입질조차 받지 못한 프랑스 팀원들은 하나둘 미끼낚시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다행히 멀린과는 호흡이 잘 맞아 캠프 인근의 여러 석호를 함께 카누로 누비며 캐스팅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멀린은 미끼낚시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가지고 온 낚싯대 중 하나에 미끼를 꿰어 던져놓았다. 그 바람에 루어를 던지다 줄이 얽히는 일이 잦아 시간이 꽤나 허비되었다.
4일째 되던 날 결국 모두가 미끼낚시를 택했고, 루어낚시에 남은 건 나 혼자였다. 나는 노를 자청한 세군도와 함께 카누에 올라, 며칠 전 빈손으로 돌아왔던 그 호수를 다시 찾아갔다. 며칠 사이 수위가 낮아졌고, 파이체들은 갈대를 벗어나 얕은 연안으로 나와 느릿느릿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우리는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캐스팅하며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10인치짜리 소프트 플라스틱 베이트를 썼지만, 피라냐의 공격에 금세 뜯기고 말았다. 이후에는 2온스 트위치베이트를 사용해 수면 아래에서 느리게 갈지자로 유영하도록 조작했다.
호수의 절반쯤을 돌았을 때, 멀리서 파이체 한 마리가 숨을 들이쉴 때 생긴 파장을 세군도가 먼저 발견해 알려주었다.
조심스레 그 방향으로 다가가 루어를 던져 회수하던 중, 약 10m 앞에서 수면이 순간적으로 일렁이더니 내 쪽으로 작은 파도가 밀려왔다. 동시에 루어가 바위틈에 박힌 듯 멈췄고, 이내 수면 위로 수컷 파이체의 붉게 물든 꼬리가 정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녀석이 이미 루어를 뱉은 것인지, 줄 끝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쉬움이 컸지만, 그 순간을 통해 패턴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약 30분 뒤, 호수 반대편에서 다시 한 마리를 걸었다. 이번에도 2m에 달하는 성어였다. 녀석은 십여 분 동안 카누를 질질 끌고 다니며 이따금씩 호수 전체를 뒤흔드는 용오름을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나와 세군도는 물보라를 뒤집어쓰며 탄성을 터뜨렸다. 도가의 고전인 『외자』에는 선인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용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용을 타는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그날 밤, 존과 프랑스 친구들은 루어낚시로도 파이체를 잡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1월 11~13일, 사람처럼 가족 단위로 사는 파이체 무리
남은 3일 동안 일행 모두가 미끼낚시로 한 마리 이상의 파이체를 낚는 데 성공했다. 나는 윌프레드의 안내로 또 다른 숨겨진 석호를 찾아 루어낚시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치어 무리를 동반한 어미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두 시간 가까이 쫓아다니며 결국 한 번의 입질을 받았지만, 단단한 턱을 바늘이 뚫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는 수위가 너무 낮아져 카누조차 호수에 진입할 수 없게 되었고,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본류권에서 미끼낚시를 하는 일행들과 합류해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윌프레드, 세군도, 호르헤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우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윌프레드는 나의 서툰 스페인어로도 투카노 문화와 우주관에 대해 묻는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었고, 세군도는 마을의 장로답게 이 지역 생태계에 대해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 그는 강가에 자라는 식용 열매를 여럿 알려주었고, 카이만 악어 어미가 새끼를 부를 때 내는 ‘응응응’ 소리를 내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실제로 그가 소리를 낼 때 풀숲 어딘가에 숨어 있던 카이만이 응답하기도 했다. 또 그는 파이체도 사람처럼 가족 단위로 물속에서 함께 살며, 때로는 부채처럼 생긴 꼬리지느러미를 수면 위로 치켜들어 힘껏 내리침으로써 주변의 작은 물고기들을 충격으로 기절시켜 잡아먹는다는,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한편, 겉보기엔 에콰도르의 주류 사회에 완전히 동화된 듯 했던 호르헤는 사실 키추아 원주민 출신이었다. 그는 어릴적 부족으로부터 떨어져 선교원에서 자랐고, 14살에 지금의 아내가 임신하면서 갑작스레 소년가장이 되었다. 생계를 위해 유조선의 주방장으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여행사를 차렸고, 그렇게 존과 협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외국 관광객을 태우고 정글을 누비다 외부와 접촉을 거부하는 부족에게 습격을 당해 가까스로 살아난 적도 있었고, 지난해에는 파이체의 입에서 바늘을 빼다가, 날뛰는 고기의 머리에 맞아 팔이 부러졌던 적도 있었다. 그가 며칠 전 나를 도와 고기를 놓아줄 때 유난히 몸을 사렸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되었고, 그를 향한 얄팍한 원망은 말끔히 사라졌다.
마지막 날 아침, 나는 낚시 대신 리델과 딜런을 데리고 뱃터로 나가 잘게 썬 닭고기로 피라냐를 낚아보려 했지만, 피라냐의 잽싼 입놀림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간의 여정을 곱씹다가 약속한 대로 장갑과 버프를 나눠주었다.
파이체 낚는 건 성년의 통과의례로 여겨져
투카노인에게 낚시는 생업인 동시에 문화이자 놀이다. 그러나 파이체를 낚는 일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미국 인류학자 윌리엄 비커스에 따르면, 투카노 사회에서 처음으로 큰 고기를 낚는 경험은 성년의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어린 소년들이 팔에 새기는 네 개의 띠처럼 둘러진 문신은 언젠가 물고기를 능숙하게 낚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직 일곱, 여덟 살인 리델과 딜런이 언젠가 첫 파이체를 낚을 수 있을까. 그날이 오려면 외부인의 무분별한 개입은 줄고, 그들의 삶과 권리가 지속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생태와 전통의 보전은 단지 어류 개체수 유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다국적 자본의 진출을 견제하고, 토착 공동체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아마존은 단지 그들의 터전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미래와도 직결된 곳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육상 탄소 흡수의 약 20%가 이 숲에서 일어난다. 파이체와 이 아이들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다.
피라냐의 이빨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하게 진화한 파이체의 비늘. 전통 장신구 재료로 사용된다.
유속이 느린 소에서 미끼 낚시로 파이체를 노리는 세바스찬.
배터에서 미끼로 쓸 피라냐를 낚는 필립. 영화나 소설 속 이미지와 달리, 피라냐는 성인이 맨발로 물에 들어가도 물어뜯지 않는다.
오랜 여정 끝에 투카노 부족의 자치구에 도착한 일행.
1541년,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가 유럽인 최초로 아마존 탐사를 시작한 도시 코카(Coca)의 나포강변 일대.
강에는 수몰된 나무와 소용돌이가 많고 수심 변화가 심해 항해가 쉽지 않았다.
투카노 부족 자치구의 숲은 울창했고 동식물이 풍부했다. 이제 막 배에서 내리는 일행.
미로 같은 수로를 마주한 낚시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