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34회)
냉전 시대, 공산권 국가의 릴
조홍식
편집위원, 이학박사. 「루어낚시 첫걸음」, 「루어낚시 100문1000답」 저자. 유튜브 조박사의 피싱랩 진행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낚시책을 썼다. 중학교 시절 서울릴 출조를 따라나서며 루어낚시에 깊이 빠져들었다.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지깅 보급과 바다루어낚시 개척에 앞장섰다. 지금은 미지의 물고기를 찾아 세계 각국을 동분서주하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릴, 특히 스피닝릴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서유럽 제품이 많았고 아주 드물게 동유럽 제품이 있었다. 더구나 러시아제국이 볼셰비키 혁명으로 막을 내리고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나타나면서 동유럽의 릴은 성능을 떠나 매우 드문 희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40년대 종반에 만들어진 체코슬로바키아제 TAP 스피닝릴.
Adolf Tlustos - Praha Kbely, Rybarsky Privlacny Navijak(번역 : 아돌프 트루스토스 - 프라하 크벨리, 낚시용 멋진 릴)
낚시가 일반 서민이 즐기는 여가생활이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의 낚시를 생각해 보면, 여가활동으로서의 낚시는 일부 귀족이나 부자들만 영위하는 도락의 일부였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서민이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식자재를 얻기 위한 행위일 뿐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더욱이 낚시도구, 특히 릴은 기호품에 속했고 가격이 일반 셀러리맨의 수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고 하니 손쉽게 구해 사용할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스피닝릴을 발명한 영국 일링워스(Illingworth) 씨의 스피닝릴 특허가 만료된 1930년대부터는 영국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속속 스피닝릴이 등장했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주로 서유럽의 나라를 중심으로 철강공업이 발달하고 공작기계 개발이 우수했던 나라들이었다. 당시 동유럽에서도 당연히 공업 선진국은 있었으나 낚시용 릴을 생산, 판매했다는 정보가 거의 없다. 현재 실물이 남아 있는 것은 체코슬로바키아(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생산된 TAP 스피닝릴 정도다.
1940년대 TAP 스피닝릴은 가죽 케이스에 예비스풀과 함께 릴풋과 핸들을 접어 넣을 수 있었다.
동독제 Emté Delphin(엠테 델핀) 스피닝릴. 1958년 제품으로 아웃스풀과 리어드랙이 설치되어 있었다.
1959년 독일 잡지에 실린 Emté Delphin 스피닝릴의 광고
체코슬로바키아와 동독(GDR)의 고성능 스피닝릴
체코슬로바키아는 당시부터 우수한 기술을 이용한 각종 전쟁용 무기제조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역시 스피닝릴도 독특한 제품을 만들었다. TAP이란 회사의 스피닝릴은 릴을 감을 때 특이하게도 스풀이 오르내리는 오실레이션(oscillation) 기능 대신에 스풀의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1930년대 말에 생산된 영국의 ‘펠턴 크로스와인드(Allcocks Felton Crosswind)’ 스피닝릴의 기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스피닝릴의 역사상 스풀의 기울기를 변화시키며 줄을 감는 구조의 스피닝릴은 영국의 펠턴 크로스와인드와 체코슬로바키아의 TAP 스피닝릴 모델, 이 2가지 제품밖에 없다.
TAP이라는 제조사의 스피닝릴은 이렇게 스풀의 기울기를 바꾸는 구조 외에도 특이하게 리어드랙을 설치하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외장에 접이식 릴풋, 더욱이 풀베일이 장치된 형태로 보아 1940년대가 거의 끝날 무렵, 체코슬로바키아가 사회주의 국가로 막 변신하던 시기에 생산된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제 릴은 퀵(Quick)의 제품이 유명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 드레스덴에서 생산된 엠테(Emté)의 델핀(Delphin) 스피닝릴도 빼놓을 수 없다. 1950년대에 등장한 이 모델은 릴
링이 부드러운 웜기어 구동 방식에 리어드랙을 설치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웃스풀을 장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웃스풀 형식의 스피닝릴은 독일에서 처음 나왔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외에도 195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진실은 어떤지 잘 모르고 있다. 만일 독일이 먼저라면 이 회사의 릴이 최초일지도 모르겠다.
소련 시대의 스피닝릴 제품은 드물지 않다
소련이 등장한 것은 1922년, 이후 동유럽 국가들도 하나둘 씩 그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게 되고 사회주의 국가로 재탄생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동서로 나뉜 냉전시대가 시작되었다. 동쪽 진영 그곳에서는 고가의 기호품이자 부르주아의 도락용 도구인 낚시용 릴을 공공연히 사용할 수는 없었을 테니 당연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릴이 대중화되고 생활용품이 된 1960년대 이후, 공산권에서도 릴이 다시 등장했는데 주로 동유럽보다는 소련제품이었다. 가장 흔한 것은 단순한 실감개 모양을 한 센터핀(center-pin) 릴 형태 제품으로 이런 릴은 과거에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가이드와 현지인들이 사용하던 모습을 자주 목격했었다. 요즘도 많이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이하게도 현재 이베이와 같은 국제 중고품 경매 사이트에서는 소련 시대인 1970~1990년대의 중고품 스피닝릴이 많은데, USSR 제품이나 C.C.C.P 제품이라고 표시하면서도 제조지역은 우크라이나인 것도 많아 격세지감, 한창 전쟁 중인 두 나라를 떠오르게 한다.
소련 시대 릴 자체를 동시대의 서유럽 제품이나 일본 제품과 비교한다면, 솔직히 디자인이나 성능 면으로 보아 한 20년 정도 뒤처진 느낌을 받는다.
소련제 릴 중 가장 흔한 네브스카야(Nebskaya) 릴. 러시아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릴 형태이다.
소련 시대의 스피닝릴, 돌핀8 모델.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제품으로 제조국은 우크라이나이다.
소련 시대의 스피닝릴, KBS67 모델. 1970년대 제품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제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