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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괴작-현대 스피닝릴의 시조 Hardy Altex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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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명작과 괴작

 

 

Hardy Altex

 

현대 스피닝릴의 시조

 

 

 

조홍식 理學博士, 루어낚시 첫걸음, 루어낚시 100문 1000답 저자


 

 

 

세대를 넘어 사랑을 받으며 낚시인 누구에게서나 그 성능이 회자되는 릴을 명작(名作)이라 부른다면, 남다른 특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몰라줬거나 혹은 무시당해버린 모델, 때로는 아예 실패작이었던 릴이 있으니 이들을 나는 괴작(怪作)이라 부르고 싶다.

오늘은 여기에 진정한 명작 스피닝릴을 소개한다. 자동차 중에서 최고의 명작이라고 한다면 영국의 ‘롤스로이스’라고 누구나 말할 것이다. 여기 롤스로이스에 견줄만한 ‘알텍스(Altex)’가 있다. 플라이의 명가로 알려진 하디(Hardy)가 만들었던 스피닝릴이다. 알텍스가 롤스로이스라면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은 푸조쯤 될 것 같고 스웨덴의 카디날(Cardinal)은 볼보쯤 될 것이다.

 

 


 

   가죽 케이스에서 꺼낸 하디 알텍스 NO.1 MK2  구성품

 

 

 

 

하디의 창업은 1872년, 총포 대장간을 운영하던 윌리엄 하디와 존 하디 형제(William Hardy, John Hardy)는 영국의 노섬버랜드(Northemberland)주 애닉(Arnik)에 ‘하디 브라더스(Hardy Bros. 현 House of Hardy의 전신)’를 설립하면서 이루어졌다. 엽총을 만들었는데 동생인 존이 낚시를 좋아하는 관계로, 창업으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후에는 유명한 낚싯대인 ‘팔라코나(Palakona)’를 발표하면서 총포상을 낚시점으로 변화시켰다. 더욱이 1900년에는 런던의 왕실 납품으로 유명한 팔맬(Pall Mall)가에 입점하게 되어 왕족과 귀족을 위한 최고의 낚시도구 생산업체로 인정받았다. 하디 하면 플라이피싱, 견고한 플라이릴의 브랜드로 유명하지만, 실은 스피닝릴의 개발로 낚시계에 한 획을 긋고 있다.

 

 

스피닝릴의 롤스로이스, Hardy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당시 유럽에서 낚시는 ‘취미의 낚시’의 경우 귀족의 여가활동 성격이 강했다. 특히 릴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낚시는 평민이 넘보지 못할 범주에 속해 있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진보한 기술로 정교한 낚시도구가 귀족을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릴은 플라이릴이나 양축릴과 같은 형태의 릴이 개발되다가 영국에서 최초로 스피닝릴이 나타난다. 고정식 스풀을 장치한 진정한 스피닝릴은, 1905년에 특허를 획득한 ‘일링워스(Illingworth)’ 릴을 그 시초로 한다. 몇 번 모델이 바뀌면서 일링워스는 근대적인 형태의 스피닝릴의 모습을 갖춰갔다. 일링워스의 특허권이 소멸된 것은 1932년으로, 이때 하디는 획기적인 스피닝릴 ‘알텍스(Altex)’를 발표했다.
하디가 개발한 알텍스야말로 근대적인 스피닝릴의 모든 것을 갖춘 그런 릴로서 현대 스피닝릴의 방향성을 제시한 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링워스와 비교한다면 탁월한 원투 성능, 강한 조력, 내구성, 간단한 사용법, 사용자에 대한 안전성 등이 두루 갖추어져 있었다. 릴링하면 덜덜거리는 느낌이 강한 베벨기어 대신에 최신 웜기어를 사용해 매끄러운 릴링감촉을 가능하게 했고 몸체를 두랄루민으로 감싸 튼튼하고 고급스런 이미지를 나타내었다.

 

 

   하디 알텍스 NO.1 MK2의 뒷모습

 

 

 

풀 베일 시스템을 장착한 최초의 릴

 

 

초기 모델은 외형이 마치 오리의 다리 형태 같다고 해서 덕풋(Ducks foot)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으나 곧바로 출시한 알텍스 마크1 모델에는 더욱 개량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획기적인 풀 베일 암(full bail arm)이 장치되어 현대의 스피닝릴과 다름이 없는 모습이 되었다. 그때까지의 스피닝릴은 베일이 없거나 하프 베일이 장치되어 있는 구조였는데 알텍스 마크1에 의해 스피닝릴 탄생 후 30년도 안 되어 완벽한 모습의 스피닝릴이 탄생한 것이다.
이 풀 베일 구조는 당연히 특허등록을 출원하고 있었고 알텍스의 탄생을 알게 된 당시의 유럽의 공업 선진국(프랑스, 이
탈리아, 스위스)에서는 경쟁적으로 비슷한 스피닝릴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풀 베일만은 장치를 할 수 없었기에 알텍스를 능가하는 스피닝릴은 나타나지 못했다.
알텍스는 크기에 따라 No.1, No.2, No.3로 나뉘는데 No1.은 소형이고 No2.는 중소형이며 No3.는 대서양 연어용으로
개발된 중형이다. 계속해서 성능을 개량해 마크2, 마크3, 마크4, 마크5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렇게 최고급 스피닝릴의 대명사가 될 것으로 여겨지던 하디의 알텍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불운을 맞이하
게 되고 만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은 기나긴 전시체제에 돌입하게 되고 하디의 공장은 군수물자
를 공급하는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독일의 로켓 공습으로 남아 남는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전쟁이 끝이 나고도 시간이 지난 1950년에야 다시 낚시도구 생산을 재개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앗아간 명성

 

 

문제는 특허권이었다. 일반적인 공업 특허권은 보통 20년간 독점사용권을 인정하기에 알텍스의 그 획기적인 풀 베일 시
스템에 대한 특허가 전쟁이 끝나면서 거의 동시에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하디 알텍스의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의 메이커들은 곧바로 풀 베일이 장치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더욱이 이들은 영국에 비해 국토가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하디의 대응은 더 느릴 수밖에 없었다.
1954년 실제로 하디가 갖고 있던 풀 베일에 대한 특허권이 소멸되면서 하디 알텍스는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생각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영국은 폐허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였지만 영국보다
는 피해가 덜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중립국으로 피해가 없었던 스위스와 스웨덴. 이들의 메이커가 낚시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디 알텍스의 존재가 희미해진 스피닝릴은 미국의 낚시 시장에 돌입한 프랑스의
미첼, 스웨덴의 ABU 카디날 등이 존재를 확고히 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세계적인 낚시도구 수집가인 구니요시 마사히데씨

                 

 

 

 

구니요시 마사히데 소장품 특별출현

 

 

 

사진의 알텍스(Altex No1. Mk2)는 본인 소유가 아닌 빌려온 것을 앵글러 편집부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이다. 빌려준 분은 ‘베일 암은 세계를 돈다(ベールアームは世界を回る, 釣り人社, 2008)’의 저자이자 스피닝릴을 비롯한 낚시도구의 수집가로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구니요시 마사히데(國吉 昌秀)씨이다. 알텍스는 가끔 이베이(ebay)에 경매로 나오기도 하지만 케이스와 설명서, 부품까지 완벽한 경우는 거의 없어서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는 최상급이라고 생각한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만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다른 차원의 평행세계가 존재한다 치고 거기에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학생시절 용돈을 모아 사려고한 릴이 ‘미첼408’이 아니고 ‘알텍스 No1.’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귀족용으로 너무 고급품이라서 살 엄두도 못 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계류낚시할 때 ‘카디날3’이 아니라 ‘알텍스 마크5 No1.’을 사용하고 있으려나? 상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건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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