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EDITION | WORLD FISHING PROJECT
GT in
SANDSTORM
중동 사막의 모래폭풍을 뚫고 GT를 품에 안다
조홍식 理學博士, 루어낚시 첫걸음, 루어낚시 100문 1000답 저자
사진 조홍식, 스즈키 후미오鈴木 文雄, 닉 보울Nick Bowles, 데이먼 비티Damon Beattie
오만 쿠리야무리아제도 톱아랜드에서 43kg 대형 GT를 품에 안은 필자
작년에 한 차례 방문했던 아라비아 반도 동남쪽, 중동 오만(Oman) 남부의 포인트를 금년에도 같은 시기에 다시 찾는 기회를 맞았다. 실은 별로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는, 조금 그런 장소였지만 쇼크리더가 끊어지는 내 자신의 미숙함을 느낀 장소이자 바늘이 빠져버리는 불운이 겹친 장소라는 사실, 그리고 GT의 크기가 크다는 사실이 매력으로나마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런 곳이었다. 실은 2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장소를 급히 바꿔 다시 같은 장소를 찾아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THE FISHERMAN, GT의 그랜드 마스터인 스즈키 후미오씨의 부름이 있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 낚시방송과 유사한 ‘츠리비젼(釣りビジョン)’이란 낚시방송이 있는데, 촬영에 동행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화면에 나올까마는 한일 투톱의 낚시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의 주목적은 오만 남부 쿠리야무리야제도(Khuriya Muriya Islands)의 GT로 하되 일정 전후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퀸피시낚시도 겸하기로 했다.
오만
알 할라니아섬의 자이언트 트레발리
오만에는 GT낚시로 이름이 알려진 장소가 크게 두 곳이 있다. 북부의 무산담(Musandam)과 남부의 이곳, 쿠리야 무리야제도이다. 무산담은 이란과 마주하는 호르무즈해협(Strait of Hormuz)의 복잡한 암초대가 포인트이고 쿠리야무리야제도는 각 섬 주변의 암초대와 리프가 포인트가 된다. 양쪽 모두 현지 어부들의 어장이자 이미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낚시터이기도 하다. 사막과 헐벗은 돌산을 배경으로 하는 낚시터로 아주 먼 옛날 신드바드가 모험을 한 바로 거기와 다를 바 없는 장소이다. 이렇게 말하면 신비하고 가기만 하면 잘 낚이는 새로운 낚시터라는 느낌을 줄 수 있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유수의 낚시인들의 손이 탄 낚시터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안전한 장소도 못된다. 북부 무산담은 페르시아만의 출입구로 서방세계가 이란과 대립각을 세울 때는 이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기도 했다. 남부는 한참 전쟁으로 시끄러운 예멘이 바로 옆인 것도 신경 쓰인다. 또한 오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살랄라(Sallalah)는 아덴만에서 작전 중인 우리나라 해군 군함이 자주 입항하는 곳이기도 하다. 즉 소말리아 해적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불안 요소이기도 했다.
지난 4월 6일 오만에 도착했다. 오만 입국은 우리나라 여권 소지자는 간단해서 누구보다도 빨리 입국심사를 마치
고 짐을 찾으러 나올 수 있다. 인접한 아랍의 국가들 이외에 유일하게 비자 없이 프리패스가 되는 나라가 우리나라
뿐이라고 한다. 작년과 달리 오만의 수도인 무스카트를 경유하지 않고 살랄라로 직접 날아가 입국하는 것도 일정이
편해져서 좋았고 마침 새 건물로 이사한 살랄라 국제공항도 좋았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일본의 일행들이
나오지를 않는다. 비자 구입은 다 마쳤지만 대형 촬영장비가 세관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해외 원정에
서 트러블은 다반사로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촬영팀이 문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날은 어두워지고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와 스즈키씨만 우선 이동을 결정했다. 살랄라에서의 1박은 아주 호화스런 호텔에서 이뤄졌다. 이런 장소를 즐길 새도 없이 오밤중에 잠만 자고 떠나야 함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새벽 4시부터 시속150km로 4시간을 달려 이름도 없는 작은 방파제까지 가보니 이미 우리를 마중 나온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에 알게 된 ‘사울’과 무산담에서 친해진 ‘데이먼’이다. 사울은 오만 사람으로 이번 일정 중에 스키퍼
(선장)를 맡기로 했다. 데이먼은 28세의 남아공 출신 청년으로서 무산담에서는 선장을 담당했지만 이번에는 데크
핸드(조수)로 선장과 우리를 보조해주는 역할이었다.
이들의 첫 한마디, 금년은 몬순 시즌이 빠른 것 같다고. 아주 강한 남서풍이 불어 파도가 높아서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거리를 2시간 걸려 섬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5월 초부터 강한 남서풍으로, 섬에는 사람이 살 형편이 못되는 상황이 되는데 이런 강풍과 파도는 9월 말까지 지속된다. 10월이 돼야 다시금 섬으로 사람이 들어 오고 새로 어장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4월이 막바지 시즌인 것은 맞지만 한 달가량 빨리 바람이 터져 일정 내내 높은 파도에 고생을 할 것은 뻔했다. 파도를 뒤집어쓰며 도착한 섬에는 그 구성원 그대로, 우리들의 짐을 숙소로 날라 줄 현지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섬의 피싱 로지(fishing lodge)는 창고를 개조해 놓은 건물로 1층과 2층에 숙소가 마련되어 있고 2층 발코니를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작년과 하나 도 바뀐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당에 뒹굴고 있는 폐차가 더욱 삭아있다는 정도였다.
중동의 사막. 살랄라를 새벽에 출발해 누런 사막을 달리고 또 달렸다.
오만 남부 살랄라의 리조트호텔
52kg GT가 낚였던 톱아일랜드로 출조
자, 낚시이야기를 해보자. 첫날도 원래는 하루 종일 낚시를 하는 계획이었으나, 험한 파도에 점심 이후 한나절만 낚시하기로 결정했다. 민물도 바다도 물고기가 입질을 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 바다의 경우, 물때와 시간이 변수이다. 물론, 조류가 흐르는 장소를 찾아다니면 하루 종일 낚시를 할 수도 있지만 대물낚시에 있어서 체력을 아낀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무모한 강행군은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첫날은 높은 파도 속에서 섬 주변과 건너편 섬과 사이의 리프를 철저하게 공략했지만 단 한 번의 입질도 받을 수 없었다. 사울 선장은 해가 진 이후에도 암초 하나하나를 다 공략해보라며 배를 대주었지만 물고기들의 반응은 없었다. 첫날부터 체력을 너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캐스팅 횟수가 많았다. 하지만, 나와 스즈키씨의 마음은 GT가 낚일 것인가 아닌가보다 촬영팀이 무사히 올 수 있을 것인가에 가있었다. 섬에서 휴대전화는 로밍이 되어 연락을 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도 저녁 늦게, 촬영 장비를 찾았고 다음날 섬으로 올 수 있겠다는 연락을 받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둘째 날은 일단 배가 촬영팀을 마중가서 오전 중에는 오프 상태. 결국 첫 이틀 동안 한나절씩 낚시를 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전체 일정에서 하루가 날아가 버린 상황이 되었다. 오후에 촬영 팀도 완전하게 준비를 마치고 합류하였으나 수확은 내가 올린 점다랑어 한 마리가 조과의 전부였다. 그리고 현장 도착 3일째가 돼서야 정상적인 낚시와 촬영이 시작되었다. 일단 알 할라니야 섬 주변은 썩 좋지 못하다는 판단으로 처음부터 목적으로 하고 있던 ‘톱아일랜드’로 방향을 잡았다.
톱아일랜드는 쿠리야무리야제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외딴 무인도이다. 실제 섬의 명칭은 따로 있지만, 보통 톱아일랜드라고 부르고 있었다. 작년 스즈키씨가 52kg의 대형 GT를 낚은 장소도 톱아일랜드의 동쪽 리프였고 톱아일랜드 바로 앞 얕은 암초대에서는 내가 두 번이나 GT를 놓쳤다. 한 번은 쇼크리더가 끊어졌고 한 번은 바늘에 쇼크리더가 끼어 바늘이 빠져버렸던 장소다. 출발은 아침 6시. 5시에 기상하여 아침을 간단히 먹고 ‘풀데이 강행군’을 하기로 했다. 이동시간은 1시간30분 정도이지 만 쉬지 않고 부는 남서풍이 강해서 2시간 이상 소요되고말았다.
“빅 샤워 개런티!”
선장 사울은 물벼락은 당연하다며 이동하는 동안 비옷을 입을 것을 권했다. 그나마 바람 방향과 조류의 방향이 같은 시간대라 보트는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었고 물벼락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아스라이 보이던 톱 아일랜드가 어느 사이 확실히 보였고 여기를 지나쳐 한바다로 뻗어나가 있는 리프 안으로 들어갔다. 광활한 리프에는 중간 중간 암초가 발달해 있고 그 주변은 GT의 산란장으로이용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산란기를 맞은 GT들이 깊은 수심에서 이곳 리프 안으로 들어와있는 것이다. 산란기 GT의 행동은 보통 40~50kg급의 초대형 암컷 한 마리에 20~30kg급의 중형 수컷이 서너 마리씩 모여 있곤 한다. 성숙한 빅마마 주변에 젊은 영맨들이 모여 있는 묘한 형상이다.
톱아일랜드에서 GT와 맞서고 있다.
30kg급 GT를 상대하고 있는 스즈키 후미오씨
알라신의 미소
뱃머리에서 캐스팅을 계속하던 스즈키씨의 루어에 물기둥이 솟았다. 바로 이어지는 드랙 역회전음과 스즈키씨의 순간적인 챔질이 이어졌다. 드랙 소음으로 미루어 그렇게 큰 씨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로운 파이팅에 이어 순식간에 갑판으로 랜딩된 GT는 30kg에 미치지 못하는 크기였고 기념 촬영 후 바로 릴리즈되었다. 촬영팀들도 일사분란하게 모든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폽퍼인가? 그런 건가?’ 나름대로 이틀간 느낀 루어 패턴은, 본섬 주변은 파도가 높아 폽퍼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 바람 방향과 조류가 역방향일 때는 파도가 더욱 심해서 수면이 어지러워져 폽퍼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경우라면 수면 아래를 버블링으로 어필하는 스위머나 펜슬베이트 중에서 좌우 진동이 커서 파동을 일으키기 쉬운 것 정도이다. 물고기가 시각이나 청각보다는 측선으로 루어를 감지하도 록 하는 것이다. 다만, 이곳 톱아일랜드는 파도가 높긴 해 도 거칠거나 수면이 시끄러운 정도는 아니다. 폽퍼에 나왔으니 일단은 폽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전혀 무소식이었고 바다 전체에서 생명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 형태의 루어로 바꿔가며 넓은 포인트를 훑어나갔지만, GT
의 반응은 없었다. 결국, 리프를 빠져나와 톱아일랜드 섬 바로 옆의 암초를 공략하기로 했다. 수심은 돌출된 암초가 있으므로 0에서 시작해 주변이 깊어야 8~9m. 바닥지형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이다. 작년에 이곳에서 두 번이나 쓴맛을 보았다. 똑같은 GT라고 해도 깊은 수심에서 여유롭게 낚는 것과 10m도 안 되는 얕은 수심에서 낚는 GT는 그 ‘가치’가 완
전히 다르다. 얕은 수심에서의 최고의 문제는 역시 초기 드랙 조절이라고 할 수 있다. 적정한 드랙이란 어느 정도인가? 정답은 없다. 그저 경험치로 그 자리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 나갈 뿐. 더 얕은 수심에서도 GT를 낚아봤지
만 그때는 운이 좋았다. 초기 드랙 설정이 헐거우면 입질 후 차고 나가는 GT를 제어하지 못해 산호에 처박혀 결국 놓치고 말 것이다. 처음에 드랙을 너무 조여 두면 스풀에 라인이 파고들어 끊어지기 쉽다. 스풀에서 문제가 없더라도 파이팅 도중 낚싯바늘이 뻗어버린다. 물론 낚싯대를 쥐고 있는 사람이 견뎌내지를 못할 수도 있다. 원줄 PE 8호,
쇼크리더 200파운드가 내 채비이다.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드랙을 조이고 스풀을 잡고 돌려 보았다. 힘들게 돌아갔다. 아마도 8kg 정도에 맞춰졌으리라. 혹여 초대형이 걸려 드랙이 과하게 역회전하면 손으로 스풀의 회전을 조정
하면 될 것 같았다.
보트는 뱃머리를 왼쪽으로 하고 암초의 오른쪽 후방 수심이 깊은 곳에서부터 수평으로 바람에 밀려 조금씩 대각선
방향으로 암초를 향해 전진하는 상황이었다. 조류도 바람 방향과 동일한 상황. 스즈키씨가 뱃머리, 나는 뒤쪽 엔진
앞에서 캐스팅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앞에 있는 스즈키씨가 유리한 상황이다. 뱃머리 쪽이 포인트에 먼저 들어가고 먼저 좋은 포인트에 캐스팅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이 포인트의 경우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훨씬 유리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트 뒤편이 유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곳 지형을 참고로 깊은 수심에 있는 GT가 암초 주변 얕은 장소로 올라와 먹이를 먹고 다시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는 가정 하에 GT의 동선을 상상해 보면 답이 나왔다. GT가 회유를 한다면 이곳은 북반구이기에 분명히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GT는 나의 오른쪽에서 나타나 루어를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태양의 각도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정오가 다 되는 시간으로 햇빛은 직각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뱃머리에서 캐스팅 방향을 마음 내키는 대로 좌우 마음대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사실을 모를 스즈키씨가 아니지만, 신사적으로 전방을 향해서만 캐스팅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촬영이 우선이고 스즈키씨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기에 조금이라고 평등한 기회를 서로 맞았으면 했다. 그래서 스즈키씨가 먼저 캐스팅을 하고 루어 착수 후 세 번의 액션을 가한 다음에 내가 캐스팅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착한 마음을 먹어서이었을까? 알라신은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여주었다.
톱아일랜드에서 사용한 GT용 루어
스즈키 후미오씨가 올린 중형의 GT
굉음을 내지르며 풀려나가는 드랙
상상한 그대로 보트에서 가까운 거리, 역시 오른쪽에서 GT가 나타나 내 루어를 공격했다. 루어는 델타4-110. 피셔맨 제품으로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펜슬베이트(다이빙 저크베이트)이다. 조금 강하게 조여 놓은 드랙이 굉음을 내지르며 풀려나갔다. 침착하게 대를 세우고 낚싯대를 로드 벨트에 고정한 후 챔질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드랙 설정이 생각보다는 잘 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보트는 시동을 걸고 뒷걸음질을 시작했다. 한참 풀려나가던 드랙이 멈췄다. GT의 첫 번째 달리기가 끝난 것이다. 산호를 감지 않고 다행히 그 위에 선 것 같았다. 이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줄을 감아야 했다. 파이팅 위치를 바꿔 뱃머리로 이동했다. 낚싯대가 반월 모양으로 휘어진 상태를 유지하면서 당겨 올렸다가 감는 펌핑을 해야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파도가 높아 타이밍을 맞추기도 힘겨웠다.
파도를 타고 보트가 올라갈 때 힘껏 버티고 보트가 내려가면 약간이나마 릴의 핸들을 돌리려 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마침 행운인 것은 보트가 조금 깊은 수심까지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계속 프레셔를 주지 않는다면 기운을 차린 GT가 언제 다시 차고 나갈지 모른다. 30cm씩이라도 감아야 했다. 반쯤 올렸을까 다시 드랙이 역전되면서 GT가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은신처를 찾아 산호초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세컨드 런이다. 다시 차고 나가 아까 그 위치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데 그곳에 도달하기 전에 일단 멈췄다. 다시 힘겨운 릴링. 아마 수면에 가까이 오면 한 번 더 끌고 나갈 것이다.
반월로 휘어진 낚싯대는 해외원정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진 3피스의 GT 전용대로 역시 피셔맨 제품이다. MONSTER-CC69GTT. 카탈로그에 나와 있지 않은 이 제품은 77GTT를 피셔맨에 억지로 우기다시피 요구해 개조한 특별한 모델로 가이드를 작게 그립을 짧게 해놓은 것이다. 전체 길이는 6.9피트가 되었지만 그 실력은 7.7피트와 같다. 다절의 낚싯대는 잘 부러진다는 그 동안의 상식을 뒤엎은 이 낚싯대는 3피스임에도 조인트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스무스하게 휘어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로드빌딩을 하던 내가 GT낚싯대는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된 것은, 실은 피셔맨에서 이 3피스의 GT낚싯대가 나온 이후이다. 3피스의 블랭크는 시쳇말로 ‘넘사벽’이었다.
‘투둑’하는 느낌이 왔다. 이건 오래전부터 몇 번이나 느껴본 바로 그 느낌이었다. 대형의 GT가 걸렸을 때 루어의 두 바늘 중 하나가 빠지는 그 느낌이었다. 아마도 GT의 입 바깥에 걸려있던 바늘이 피부가 찢어지면서 빠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아, 보인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고 마침 비미니트위스트 매듭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스즈키씨와 데이먼이 몸을 수면으로 기울이며 랜딩에 들어갔다. 스즈키씨가 쇼크리더를 잡고 데이먼이 가프로 GT의 입을 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끌어올린 GT는 역시 산란을 준비하는 암컷이었다. 확실히 30kg은 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울이 체중계를 꺼내오더니 무게를 달아보자고 했다. 별로 실측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달아보니 40kg이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실측 43kg. 무릎 위에 올려놓은 GT가 기쁘기도 했지만 하나 더 더욱 큰 기쁨이 있었다.
알 할라니야, 물속의 사막
원래 대물낚시꾼인 나에게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대물낚시에 대한 미묘한 공포심이 있었다. 큰 게 걸리면 힘들겠지 하는 이상한 불안도 있었다. 더듬어 생각해보면 체중이 불어 흔들리는 배위에서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파이팅에 있어서 냉정한 판단과 흥분하지 않고 시종일관 침착한 내가 있었다. 막연한 공포심이랄까 불안감이 없어졌는데 체중을 줄인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여겨졌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시니어 앵글러가 되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4일째는 전날의 기억도 있어서 다시 톱아일랜드 주변을 공략했지만 단 한차례의 입질도 받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5일째 마지막 날은 오전 중에 톱아일랜드를 뒤졌지만 무언가 스위치가 꺼진 듯한 느낌으로 역시 아무런 입질을 받지 못했다. 오후에는 거친 파도를 뚫고 해수 샤워로 속옷까지 젖어가면서 다시 본섬 주변으로 이동하여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루어를 캐스팅했다. 스즈키씨에게 한 번 GT의 공격이 있었지만 바늘에 걸리지 않은 상황,
선장 사울이 마음이 급했었을까 너무 빨리 엔진을 걸었고 수면은 잠잠해지고 말았다. GT가 엔진 소리에 놀랐을 게 분명했다. 해가 뉘엿하게 저물어가는 시간, 강풍과 높은 파도로 고생이 시작되었다.
조류와 바람이 역방향으로 보트 이동도 어려운 형편에 수중 암초 지대에 캐스팅하라는 선장의 지시가 나왔다. 폽퍼가 좋다는 조언이었다. 그것도 검정색. 선장 사울이 왜 검은 폽퍼를 고집하는지 의문이었다. 아마도 이 장소에서 그동안의 실적이 검은색 폽퍼였을지도 모르지만 상황을 무시한 그의 조언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틀 전에 느꼈던 바대로 이런 상황에서 폽퍼는 무용지물이 아닌가? 거기다 해질녘에 검정색이라니? 태양의 각도가 낮은 경우에는 주황·노랑이나 빨강·금색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결과는 뻔했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캐스
팅을 이어갔다.
5일간의 낚시를 마치고 다시 한 번 그 먼 오만까지와서 새삼 느낀 것은 역시 4월의 알 할라니야섬 주변은 ‘물속도 사막’이구나 하는 사실이었다. 암초 주변 포말지역이나 얕은 리프에 작은 물고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GT도 왜 그런지 작은 사이즈가 낚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지 않게 생각되었다. 이 지역이 GT낚시터로서의 생명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또다시 오만의 남부까지 방문할 일이 있으랴마는….
아랍에리미트
두바이의 퀸피시
온 길을 되짚어 살랄라를 경유해 두바이로 일단 돌아왔다. 두바이에서는 퀸피시낚시를 기획해 놓은 상태로, 대자연을 벗하는 낚시가 아니라 마천루를 배경으로 세계의 셀레브러티들이 모이는 두바이에서 낚시라는 이색적인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바이하면 명품 쇼핑, 세계 최고의 마천루 부르즈칼리파, 초호화 7성급 호텔, 사막의 스키장등 초고층 빌딩숲에 럭셔리한 생활이 떠오르지 않는가?
출발항구도 인공섬 ‘팜 쥬메이라(Palm Jumeirah)’에 있었다. 오만의 사막 살풍경에서 단 하루 만에 현대문명이 가
득 찬 가장 인공적인 장소로 이동을 하였다. 낚시 포인트도 항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로 팜쥬메이라 바깥쪽이다. 안쪽도 물고기는 많지만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낚시가 금지되고 있다고 한다. 두바이 앞바다는 페르시아만 안쪽에 위치하는 지형적인 여건상 바다는 거의 파도가 없는 호수 상태라고 하지만 봄철 모래폭풍이 불 때면 파도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 바람만 불면 해안경비대가 바다로 나가는 모든 선박을 통제하기도 한다.
하루만 낚시하기로 했지만 있는 시간을 전부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한나절씩 이틀간의 퀸피시낚시. 보트의 키는 오
션액티브의 사장인 닉(Nick)이 직접 잡기로 했다. 오만의 바다와 달리 수면에 득시글거리는 물고기 떼, 여기저기 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인공섬 근처는 어업이 금지가 되어 있는지 물속은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 뭐든 던지면 바로
물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닉은 말하길, 두바이의 퀸피시는 너무나 쉽게 낚이기 때문에 보통은 플라이피싱을 한다고 했다. 스피닝 장비로 바늘 없는 루어를 던지고 따라 오는 퀸피시를 확인한 다음 근거리에 대형 스트리머 플라이를 캐스팅하는, 루어를 티저로 사용하는 그런 방법이다.
두바이의 신도시인 팜 쥬메이라 해안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스즈키 후미오씨가 캐스팅을 준비하고 있다.
퀸피시와 맞서고 있는 필자
두바이 빌딩숲 앞이 낚시터
퀸피시용 장비는 농어용 장비보다는 좀 강하게, 부시리용보다는 약한 것이 적당할 듯 했다. 만새기용 장비가 있다면 적절할 것 같았다. 내가 준비한 것은 2세트로 농어용 낚싯대와 부시리용 낚싯대다. 하나는 너무 약하고 하나는 너무 강했다. 일단 부시리용 장비는 넣어두고 농어대를 들었다. 원줄은 PE 1호, 쇼크리더는 18파운드. 쇼크리더가 너무 약할 것 같아 30cm 정도 30파운드 쇼크리더를 덧달았다.
루어는 작은 펜슬베이트와 폽퍼. 그런데 영 입질이 시원치 않았다. ‘이야기가 다른데?’, ‘뭐가 너무 쉬워서 플라이피싱을 한다는 것이냐?’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수면에는 퀸피시의 보일이 보이는데 정확히 루어를 던져 넣어도 입질이 없었다. 닉도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전날의 모래폭풍 영향으로 물이 흐린 것이라나? 아무튼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클박스에서 8g짜리 소형 스푼을 꺼내 던져보자 이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연속으로 6마리를 히트. 그러나 무사히 랜딩한 것은 2마리에 불과했다. 농어대가 퀸피시에게는 너무 약해 파이팅 시간이 길어
졌는데, 소형 스푼에 달린 싱글훅은 작은 물고기용이지 퀸피시를 낚아내기에는 너무 약했다. 오랜 시간 밀고 당기는 공방전 끝에 바늘이 전부 펴져 버리고 말았다. 결국 바늘이 없어서 낚시를 포기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첫날은이렇게 철수했다. 이날 밤 스즈키씨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스푼을 2개 드리고 스즈키씨가 가지고 있는 대형 바늘을 소형 스푼에 이식시키면서 다음날 준비를 했다.
두 번째 날은 진짜로 바다가 고요하고 거울처럼 맑게 비추는 그런 바다가 되어 있었다. 보트 아래로 엄청난 수의 작은 베이트피시들이 통과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퀸피시와 삼치 무리들. 첫 캐스팅에 스즈키씨가 스푼으로 퀸피시를 올렸다. 나는 이를 보고는 오늘도 스푼이 위력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웬걸? 스푼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베이트 무리가 한 곳에 뭉쳐 있지 않고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베이트가 뭉쳐서 소위 말하는 베이트볼 형상이 어제는 여기저기 일어났는데 오늘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퀸피시들이 서로 모여서 사냥을 하는것이 아니라 전부 뿔뿔이 흩어져서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두바이 퀸피시 낚시법으로 어제 말한, 너무 쉽게 낚인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두바이 앞바다에서 낚은 퀸피시를 들고
팝 쥬메이라, 자연을 개발한 것인가 훼손한 것인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싸구려로 보이는 펜슬베이트를 던지고 수면을 활주시키듯 고속으로 감아 들이면 여지없이 퀸피시가 달려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루어의 뒤에 부착된 바늘이 특이했다. 한 5~10cm의 굵은 어시스트 라인으로 묶인 바늘은 지깅용 바늘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 바늘에 비닐과 반짝이는 술이 묶여 있었다. 지깅용 어시스트 훅에도 분명히 그런 것이 있어서 그대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원리는 이렇다. 수면을 활주하는 그 플라스틱 펜슬베이트가 만드는 물보라는 퀸피시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다른 퀸피시가 포식을 하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펜슬베이트 뒤에 조금 떨어져서 부착한 술 달린 바늘이 베이트피시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퀸피시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처럼 수면을 시끄럽게 하면 흩어져 있던 퀸피시는 경쟁심이 발동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그런 이치였다.
이날 농어대만 달랑 들고 나온 나로서는 그 플라스틱 펜슬베이트가 너무 무거워 버겁기는 했지만 진짜로 던지면 무는 두바이의 퀸피시를 즐기는 데 모자람은 없었다. 한 마리당 시간이 너무 걸려 스즈키씨가 5마리를 올리는 동
안 1~2마리에 그치고 말았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에 잠시 숨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면 대자연이 아니라 기기묘묘한 형상의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을 개발한 것인지 훼손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이곳 팜 쥬메이라 인공섬과 건너편에는 세계적인 부호들이 묶어간다는 부르즈 알 아랍호텔, 그리고 저 멀리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부르즈칼리파가 보였다. 갑자기 건너편 해안에서 수상 비행기가 한 대 날아오르더니 까마득한 곳에서 3개의 점을 던져 놓았다. 한참 지켜보니 그 점은 낙하산이 되었다. 스카이다이빙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낚시를 해도 되나 싶었다. 낚시는 대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뭐 그런 말이 그 동안은 어울렸는데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언젠가 다시 찾아올 확률이 높은 장소이다. 유럽이나 아프리카로 가는 경우에 대부분 두바이에서 환승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때도 여기에서 퀸피시를 다시 낚아볼까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될 것 같다.